우리들의 얼룩진 교과서 1
모모세 시노부 지음, 한성례 옮김, 사카모토 유지 극본 / 느낌이있는책 / 2012년 12월
평점 :
품절


 

 

간만에 친구들 가족과 저녁식사를 했다. 친구의 아이들과 우리 아이들 나이가 같아 좋은 친구가 될 것 같아 아이들에게도 좋은 시간들이라 여겼는데 이야기에 바쁜 어른들과는 달리 아이들은 대화 한 마디 없이 서로 어른들 핸드폰 하나씩 들고 앉아서는 오락에 열중하는 모습이다. 순간 우리들은 그 모습을 보면서  명절이나 추석, 가족 모임이 있을 때조차 모두 핸드폰만 들여다보고 있었던 경험을 이야기하면서 앞으로도 큰일이라는 한숨 아닌 한숨을 토해낼 수 밖에 없었다. 대화가 없는 아이들, 얼굴을 보기보다 핸드폰 액정이 더 좋은 아이들이 사회에 나아가 제대로 사람을 사랑할 수나 있을까 하는 걱정이 앞설 수 밖에 없다. 이렇게 된 현실을 어찌 아이들 탓만 할 수 있을까 . 어른들조차 시간 나는 대로 핸드폰을 보고 있기는 매한가지이다. 불통의 시대라며 소통의 매체들은 증가하지만, 정작 사람과 사람사이에 존재하는 믿음이 바탕이 되는 소통은 사라지고 있는 것이 우리가 사는 사회의 진정한 맨얼굴이 아닐까 생각해보게 된다. 

 

우리들의 얼룩진 교과서세상의 중심에서 사랑을 외치다”, “동급생의 극작가 사카모토 유지가 극본한 일본판 도가니라 할 수 있다. 학교의 집단 폭력에 의한 사고가 많이 발생하고 있지만 딱히 대안은 세워지지 않고 있는 교육환경에 대한 비판과 학교를 둘러 싼 선생들과 학생들간의 불통으로 인한 문제들을 직접 조명해주는 이 책은 비단 일본 사회문제 만이 아닌 우리나라 역시도 폭력의 사각지대에 놓여있다는 것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었다.  과거 일본을 떠들썩하게 했던 핫이슈들-교사의 자질문제나 학생들의 폭력과 자살-등이 이제는 우리나라에서도  빈번히 일어나는 사건들이다. 이 사건들로 우리나라에서도 교사의 자질문제와 공교육의 문제가 자주 거론되고 있는 실정이다. 이런 사태로 볼 때 우리나라의 교육환경도 폭력의 사각지대에 놓여있음을 증명하고 있는 것이다

 

정식은 아니지만, 임시담임을 맡으면서 교사라는 직업에 꿈을 가득안고 2학년 3반 교실에 선 가지 고헤이선생. 처음 시작하는 이들에게 볼 수 있는 순수한 열정을 가진 가지 고헤이는 첫 수업에서부터 운동장에 혼자 앉아 있는 아이자와와 면담하게 된다. 처음 만난 선생에게 아이자와라는 학생의 질문

 선생님 , 세상을 바꿀 수 있을까요? 라는 질문은 소설에서 가장 중요한 의미를 가진다.

 

이 질문으로 선생과 학생사이에 존재할 수 있는 하나의 믿음을 느낄 수 있기 때문이다. 이제 막 싹을 피우고 자라나는 학생들에게 세상을 바꿀 수 있는 믿음은 세상을 살아가는 힘이 되어 줄 수 있는 것임에도 소설에 등장하는 학교의 선생들은 이 질문에 모두 부정적인 반응을 보인다. 밤이면 고급 요정에 호스티스로 변신하는 요시코시 선생, 딸이 성추행을 당했는데도 학교에서 짤릴 까봐 전전긍긍하는 구시하라 선생, 집단 폭력 가학생을 찔러 교도소에 간 아들을 둔 교감 아메키, 도박으로 쫓기는 신세가 되자 딸 양육비로 돈이 되는 일에 혈안이 되어 있는 도이타 선생, 학생의 아버지와 불륜을 저질러 타학교에서 쫓겨난 오시로 선생 등 하나 같이 정상이 아닌 , 선생 다운 선생이 없는 이 학교에서는 세상을 바꿀 힘이란 애초부터 존재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이런 가운데 순수한 열정이 가득했던 가지 고헤이는 그나마 자신의 작은 믿음이 세상을 바꿀 수 있다고 믿는 유일한 선생이었다.

 

 

그러나, 자신이 맡은 반에서 아이자와가 학교 창문에서 추락하는 사고가 일어나고, 끝내 사망하자 학교는 각종 언론매체의 질타를 받게 되는데  아이자와가 추락사한 이유를 조사하던 중, 아이자와가 죽기 전 집단 폭력을 당했을 경우에 하는 행동을 했다는 것을 알게 된 가지와  변호사 쓰미키는 집단 폭력의 피해자로서 학교를 상대로 소송을 제기한다. 

 

핏줄 하나 섞이지 않았지만, 젊은 날 사랑하여 결혼한 남자의 아이였던 아이자와. 쓰미키는 칠년 전 홀연히 사라져버린 남편을 원망하며 이혼한 이후 아이자와를 보육원에 버리고 이후 고시 공부에 전념하여 변호사가 되었다. 애정도 없었고 사라진 남편에 대한 원망으로 거의 방치하였던 아이자와를 보육원에 버리는 순간까지도 쓰미키를 원망하기는 커녕 붕어빵 꼬리부터 먹는 모습이 자기와 같다며 행복한 표정을 지었던 아이자와가 학교에서 집단 폭력을 당했다는 증거를 찾게 되면서 쓰미키는 자신을 엄마라고 믿고 있었던 아이자와를 위해 혼신의 힘을 다한다. 그러나, 이 소송으로 쓰미키는 약혼자 세리에게 파혼당하고 로펌에서 쫓겨난다. 쓰미키가  학교를 상대로  낸 소송은  가지의 입장 또한 난처해지는데 학교 선생들은 가지가 쓰미키와 자주 만난다는 이유로 가지를 철저히 따돌린다.

 

여기에서 가지의 변심으로 소설은 또 한번의 갈등의 고조를 이룬다. 소설에서 교사로서의 사명감을 가진 유일한 선생님이었지만 선택의 기로에 서게 된 순간 결국 가지는 세상을 바꿀 수 있는 믿음을 스스로 포기한다. 우리가 살아가면서 삶의 기준이 무엇이 되는 것에만 치우쳐 결국 삶에서 가장 중요한 것을 놓치게 되버리는 순간처럼 가지는 교사가 되기 위해 자신이 지켜왔던 교사로서의 소중한 믿음을 어쩔 수 없이 저버리게 되는 것이다. 그리고 가지는  다른 선생들처럼  세상의 비난으로부터 학교를 지켜야 한다는 명분하에 집단 폭력 사실을 애써 부인하고 은폐하려는 학교 편에서 애써 아이자와의 믿음을 외면하게 되는 것이다. 

 

그러나, 소송이 진행되면서 서서히 학교를 감싸고 있던 비밀의 베일들이 하나 둘씩 벗겨지면서 집단 폭력의 배후자가 드러나고 이것은 또 다른 폭행을 불러일으키는 기폭제 역할을 하게 된다.  이로써 학교는 다시한번 새로운 국면을 맞이하게 된다. 소송진행중  가해학생이 법정에 서서 집단 따돌림을 당하며 느꼈던 공포와 친구들과 암묵적인 동의아래 벌어지게 되는 집단 폭력이 주는 고통은 읽으면서도 무척이나 가슴 아픈 장면이다. 폭행은 또 다른 폭행을 불러일으킨다. 피해학생들에게는 오로지 죽음만이 탈출구였다는 것을 이해할 수 있게 되는 것은 아마도 이런 모든 사건들이 우리 사회의 일그러진 자화상이란 것을 말해주고 있기 때문이다. 햇볕을 잘 받은 풀이 곧게 자랄 수 있고 사랑을 많이 받은 아이가 사랑을 베풀 줄 아는 아이가 되는 것처럼 세상은 변할 수 있다는 믿음이 있어야 아이들은 그 믿음으로 성장하게 된다. 소설의 첫 시작에서 시작된 질문은 마지막에서도 계속된다. 세상을 바꿀 수 있다는 희망과 꿈을 아이들에게 주는 어른들이 되는 것이 일그러진 우리 사회의 얼굴을 활짝 필 수 있게 하는 힘이다. 

 

  세상을 바꿀 수 있을까요? "

   자라는 아이들에게 우리는 어떤 대답을 해 줄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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