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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노사이드
다카노 가즈아키 지음, 김수영 옮김 / 황금가지 / 2012년 6월
평점 :
콩고 민주 공화국
부시대통령은 2002년 1월 이란과 북한,이라크를 "악의 축(axis of evil)" 에 포함시켰다. 이것은 미국이 반테러리즘을 빙자해 제국주의적 헤게모니를 추구하는 행위와도 같다. 소설에는 부시대통령과 거의 흡사한 인물로 미국의 번즈 대통령이 나온다. 미국이 규정한 악의 축에 대항하여 국제사회는 미국이 전 세계의 전략적 균형을 심각하게 뒤흔들었고 미국의 테러리즘뿐 아니라 미국의 일방주의에도 맞서야 한다고 했던 적이 있다. 이라크에 대량 살상 무기가 있다며 국제사회에 동참을 강요하였던 미국은 이라크전쟁을 일으켜 자신의 경제발판의 도구로 삼았다. 뿐만 아니라 콩고의 막대한 자원(대량의 지하자원, 다이아몬드,컴퓨터에 쓰이는 희귀금속, 그리고 유전)등의 확보를 위해 내전을 지원하면서도 인근 지역의 우간다와 르간다와 벌이는 전쟁에 자금을 지원하는 이중 정책을 쓰고 있었다. 오랜 내전을 겪고 있는 콩고 민주 공화국에 에볼라 바이러스가 출현했으며 에볼라 바이러스는 인류가 조우한 병 중에 가장 위험한 감염증이다. 감염 즉시 바이러스가 뇌를 포함한 모든 세포를 먹어치우는 바이러스의 집단 감염 지역을 말살하기 위해 가디언 작전이 실시된다. 소설은 이렇게 표면상으로는 에볼라 바이러스의 박멸을 가장하여 인류를 구원하는 선善의 이미지를 띠고 있지만, 실제로 콩고의 자원 이권에 대한 탈취와 원주민을 제노사이드하는 과정을 통해 과거 식민주의 정책과는 다른 형태의 신제국주의 형태를 간접적으로 보여주고 있다. 이제까지 자본주의의 역사처럼 말이다.
인류에서 가장 뛰어난 지성인 루벤스
IQ측정이 불가능할 정도로 뛰어난 두뇌를 가진 루벤스는 현인류 중에서 가장 뛰어난 지성인 (인물)이다. 현인류의 천재절차를 밟아 온 루벤스를 매혹시킨 것은 단 하나. 과학이라는 학문이다. 인류가 축적해 온 지식에 대한 모든 것을 거슬러 오는 여행은 루벤스에게 가장 커다란 재미이자 오락이었지만 과학의 지적 진보는 아쉽게도 19세기 이후 멈추어 있다. 루벤스는 과학에서 더 나아가 철학에 심취하며 전쟁 심리학에 까지 지적 호기심이 미치게 되었는데 이는 다른 이들과는 달리 천재 절차를 거치게 되면서 터득한 인간 세계에 적응하는 방법의 귀결이다. 이후 루벤스는 우등한 자로서의 역할 즉, ‘잔혹한 관찰자’의 시선으로 세계를 바라보게 되었는데 지적으로 열등한 생물일수록 열등의식의 표출이 매우 강하다는 것을 깨달았기 때문이다. 뛰어났기 때문에 늘 견제를 받아야했고 자신의 열등감으로 경쟁하려는 인간들로 인해 피로함을 느꼈던 그는 자연적으로 관찰자의 시선을 택하게 된 것. 이미 스무 살에 박사학위까지 수여받았던 루벤스는 이후 인간 본성에 관심을 두게 되고 그 인간 본성에 숨겨져 있는 야만성을 고찰하는 전쟁 심리학에 심취하게 되면서 번즈 대통령을 가까운 곳에서 관찰하게 된다. 번즈 대통령이야말로 눈하나 깜짝하지 않고 수만명을 죽일 수 있는 인간 세상에서 가장 잔혹할 수 있는 위치이기 때문이다. 가장 가까운 곳에서 번즈 대통령을 꿰뚫어보고 있었으며 번즈 대통령을 통해 전쟁심리를 파악하고 있었던 루벤스는 네메시스 (신종 인류출현말살계획)를 총지휘하게 되면서 하이즈먼 리포트에서 예견하였던 진화생물의 출현을 발견하게 되고 인류에서 가장 뛰어났던 루벤스보다 더 뛰어난 두뇌(지성)의 소유자인 초월적인 지성을 의미하는‘누스(Nous)’로 명명되는 신종 인류인 아키리를 마주하게 된다.
일본에 약학 대학원생 겐토
바이러스 학자인 아버지가 갑작스럽게 사망한 후 아들 겐토에게 아버지로부터 메일이 도착한다. 아버지의 메일을 본 순간 아버지가 자신의 죽음을 대비하여 자신에게 자동발송 메일을 써 놓았다는 것을 알게 된 겐토는 불치병 ‘폐포 상피 세포 경화증’을 치료하던 아버지의 연구를 얼떨결에 이어 받게 된다. 연구의 내용이 아버지가 남겨 놓은 노트북 안에 그대로 들어있었고 불치병을 치료하는 약을 개발하면 세계 10만명을 살릴 수 있다는 공명심(公明心)이 강하게 생겼기 때문이다. 그러나, 연구를 시작하게 되면서 미국 정보기관과 일본 경찰에 쫓기는 신세가 되는데 이때 고립무원 상태가 된 겐토를 구원해준 것은 다름아닌 '파피'라 불리는 익명인이다. 그리고 또 한명의 사카이 유리라는 정체불명의 여인과 위기에 처해 있을 때마다 겐토를 도와주는 또하나의 조력자와 같은 대학원에서 제약연구를 하는 한국인 친구 이정훈이 일본에서 일어나고 있는 사건의 한 축을 이룬다.
하이즈먼 리포트(인류멸망보고서)의 마지막에는
현생인류에서 진화한 다음 세대의 인간은 대뇌신피질이 보다 크고 우리를 훨씬 능가하는 압도적인 지성을 가지고 있을 것이다. 그 지적 능력을 올리비에는 이렇게 상상했다. ‘제 4차원의 이해, 전체의 복잡한 상황을 단번에 파악할 수 있는 점, 제 6감의 획득, 무한히 발달한 도덕의식 보유, 특히 우리의 지적 능력으로는 이해할 수 없는 정신적 특질의 소유.’
(이런 특징들을 보여주고 있는 세살짜리 아이 아키리이다.)
제노사이드
이러한 진화생물이 바로 콩고강 깊숙한 곳에 자리한 피그미족으로 구성된 캉가 밴드에 출현하였다. 일반인 기준보다 작은 체구에 약 사십명 정도 되는 이들을 말살하고 미국인 인류학자 피어스를 죽이는 것이 일명 ‘가디언 작전’이다. 이 가디언 작전에 참여하게 된 이들은 마이어스와 개럿, 일본인 믹, 대장 예거이다. 이중 예거의 아들은 겐토가 연구중인 불치병 ‘ 폐포 상피 세포 경화증’을 앓고 있는데 극중의 예거는 이상적인 양심과 도덕성과 이성을 겸비한 리더이다. 작가는 예거라는 인물을 통해 전쟁 가운데에서도 가장 이상적이고도 인간적인 보편적인 선善을 보여주고 있다. 예거의 아들이 앓고 있는 병 ‘폐포 상피 세포 경화증’ 은 신인류종과 전혀 상관없이 진행되지만, 여기서 작가는 이 병으로 인해 또 하나의 연결선을 만들어 놓았다. 같은 유전자를 가지고 있거나 근친간의 교배로 인하여 발생되는 페포 상피 세포 경화증의 치료약은 신인류종인 아키리에게도 꼭 필요한 것이었으며, 이것은 사건의 흐름에 아주 커다란 복선이 된다.
“무서운 것은 지력이 아니고, 하물며 무력도 아닙니다. 이 세상에서 가장 무서운 것은 그것을 사용하는 이의 인격입니다.”
전쟁 한 복판의 콩고에서 목격하게 되는 전쟁들은 그야말로 아비규환의 지옥을 연상하게 하는데 이 전쟁장면들을 통해 <제노사이드>가 말하고자 하는 뜻이 어렴풋이 다가오는 기분이 들었다. 작가는 언어나 화려한 글로 표현하는 대신 오로지 행동과 보여 지는 것만으로 전쟁을 말하고 있는데 제 3자의 시선에 의지하여 전쟁의 한 장면을 보는 기분이다. 예거 일행이 정글에서 처음 마주한 침팬지들의 싸움을 보며 하찮은 종으로 깔보는 시선이라든지 침팬지들을 지성인이 가진 잔인성을 마치 인간들로 표현하는 부분들을 보며 알 수 없는 기시감이 드는 이유도 그것을 바라보는 제 3자의 생각들을 통해 독자와 등장인물간의 유대감과 동질감이 느껴지기 때문이 아닐까 한다. 작가의 그런 의도는 전쟁을 선입견 없이 바라보게 하는 동시에 인간에 대한 근원적인 물음을 이끌어 내고 있다. 이어 민간인 부대가 원주민들에게 가하는 잔인함과 폭력성에서도 철저히 예거의 시선으로 전쟁을 바라보게 되는데 이때 침팬지의 싸움과 바로 연상되어 인간들이 가지고 있던 종족 우월성등을 가감히 깨어버리게 한다. 그것은 마지막 전쟁에서 소년병들의 등장을 통해 철저히 확인되는 부분이다. 소년병들이 총을 들고 전쟁에 참여하게 되는 과정과 소년병의 죽음은 인간 본성에 깃들여 있는 폭력성과 야만성에 방점을 찍어주는 부분이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전쟁중에서도 가장 이성적이고 도덕적인 인간미를 지닌 예거를 통해서 인간이 가지고 있는 최고의 장점, 사랑과 인격에 대한 부분을 부각시키며 선명하게 주제의식을 각인시키고 있다. 바로 인간이 가지고 있는 보편적인 선의 의미를 깨닫게 인도해주고 있는 과정처럼 보여지는데 책의 중간에 한국인을 조센징이라고 깔보는 겐토의 할아버지에게 겐토가 반기를 드는 모습이나 한국인 이정훈을 처음 본 순간 친근함에 사로잡히며 둘이 나누는 우정의 모습들은 작가가 가지고 있는 또 하나의 세계, 인종차별을 넘어서는 '하나'의 공동체라는 시각으로서 인류를 그리고 있다는 점은 가장 인상적으로 다가오는 부분이다..
무력으로 이기는 쪽이 미치고 날뛰며 다른 인종을 도륙하는 모습은
어느 민족이 보다 열등한지 명백히 말해주고 있었다.
이외에도 제노사이드가 시사하고 있는 부분은 여러 가지 각도에서 해석이 가능하다. 진화생물학을 바탕으로 신종 인류의 출현에 대한 경고를 통해서는 그동안에 인간만이 가져왔던 우월감을 버리고 겸허함을 가지라는 충고를 주는 동시에 자본주의가 폭주하고 있는 시대의 대통령을 독재자로 표현하며 미국의 패권주의에 대한 경종을 울린다. 뿐만아니라 전쟁의 이면에 파고들어 전쟁에 깃들여 있는 인간의 심리를 파고 들며 인간의 본성에 심도 깊게 다가가고 있다. 거기에 전쟁에 얽혀 있는 신제국주의에 대한 경고도 잊지 않고 있으며 과학과 철학과 의학을 넘나들며 해박한 지식을 바탕으로 한 퍼펙트한 추리소설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