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아야 하는 이유 - 불안과 좌절을 넘어서는 생각의 힘
강상중 지음, 송태욱 옮김 / 사계절 / 2012년 11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이 책을 구입한 건 순전히 제목 때문이다. 살아가는 이유.. 가끔은 살아가야 하는 이유가 내게도 절실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누군가를 진심으로 사랑한다면 사랑하는 이유따위는 사실 필요없다. 그리고 내가 행복하다면 행복해야 하는 이유따위는 정녕 필요없다. 살아가는 이유또한 마찬가지다. 삶이란  그냥 저절로 살아지는 것이기에 이유를 갖다 붙일 필요는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살아야 하는 이유를 굳이 대라고 한다면? 

 

나는 가끔 부모님께 감사한다. 내가 풍족하지 않게 태어난 것을. 지금도 부모님은 명절날 새뱃돈을 만원 주신다. 꼬마때는 천원이었는데 그나마 많이 오른 것이다. 지금 아이들 과자값으로 만원은 부족한 값이지만, 부모님은 그 만원을 벌기위해 지금도 일을 하신다. 그리고 늘 부족했던 용돈 때문에 나는 늘 일을 했다.  부모님의 뒷모습을 따라 가난을 숙명처럼 여기며 그렇게 젊은 시절을 보내고 나니  나이가 들어가면서 그 가난이 값진 열매가 되어 있을때 비로소 나는 안도했다.  내게 젊은 날은 정말 가난했기 때문에 일을 했다. 그 사이 세상이 많이 편해졌고 많이 변했다. 정신을 차리고 보니 세상은 유비쿼터스 시대가 되어 있던 것이다. 처음에는 생활의 편리를 주도하였던  유비쿼터스가 이제는 일상에 깊이 스며들게 되면서부터 살아야 하는 이유조차도 컴퓨터에 물어보아야 하는 세대들을 낳았다는 것은 우리시대 불행을 알려주는 서막이다. 이제까지 우리는 자본주의가 주는 달콤한 환상에 젖어 저 언덕만 넘어가면 행복이 있을 거라는  맹목적인 믿음으로 달려왔다. 그런데 언덕에 다다르자  '돈'이 있는 사람만이 입장 가능하다고 말하는 현실과 마주하게 된 것이다. 이미 언덕에 올라서 자본주의의 실체를 만난 사람들은 언덕을 오르는 사람들에게 자본주의의 속임수였다는 것을 설파하는 전도사가 되고 아직도 자본주의의 실체를 모르는 사람들은 부지런히 언덕을 올라가고 있는 형국이다.

 

이 책의 저자 강상중은 우리시대에 닥친 현실을 직시하라고 충고한다. 이제껏 인류를 행복론과 긍정론으로 이끌어왔다면 이제는 인생이 주는 진정한 의미를 생각할 때이기 때문이다. 저자는 재일교포 2세로  한국에 방문한 후 자신의 정체성을 찾았다며 자신의 일본 이름을 버리고 한국 이름인 강상중으로 글을 쓰기 시작했다. 저자는  일본에서 일어난 미증유의 후쿠시마 원전 대참사와 자신의 아들의 죽음, 그리고 이어진 일본의 대지진을 보며 이런 말을 한다. 결국 '행복'을 통해서가 아니라 '불행'이 가진 힘을 통해 살아가는 힘을 얻는 것이 인생이라고.....

 

사는 게 참 녹록치가 않다. 작년 한 해 내 주변에도  슬프고 아픈 일들이 이웃들에게 많이 일어났다. 낙천적이고 긍정적이있던 이웃들은 슬픈 일을 겪자마자 비관주의자로 급변하였다. 세상을 향해 자신만만하고 위풍당당하던 이들은 순식간에 닥친 불행에 세상을 등지며 슬픔에서 빠져나오질 못했다. 나는 그런 모습을 보며  때로는 불행에 대비할 자세를 연습해야 겠다고 생각을 하기도 했다. 어쩌면  세상은 긍정적이거나 비관적이라는  이분법으로 절대 나누어지지 않는 움직이는 물체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므로  우리는 너무 슬퍼해서도 안 되고 너무 즐거워해서도 안 되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그런 생각을 하고 있을 즈음 내 생각에 방점을 찍어 준 사람이 바로 지그문트 바우만이었다. 바우만은 기존 근대사회의 견고한 작동 원리였던 구조, 제도, 풍속, 도덕이 모두 해체되면서 유동성과 불확실성이 증가하는 국면을 일컬어  인류가 고체처럼 견고한 사회를 지나 '유동하는 근대'를 지나고 있다고 표현하였다.

 

저자는 이런 유동하는 근대에서는  슬픔과 불행이란 언제 든 찾아오지만 불확실성을 띠고 있기에 더욱 현실을 직시할 필요가 있다고 한다. 기존에 팽배했던 행복론이나 긍정론은 한계점에 다다랐고 이제 더이상 이 유동하는 근대에는 행복론과 긍정론으로는 미래를 대비할 수 없게 되었다. 언덕에 올라 자본주의의 실체를 만난 사람으로서 저자는 나쓰메 소세키와 막스 베버에 주목한다.  동시대를 살았지만 접점은 없었음에도 동서양에서 자본주의의 실체를 통찰하였던 두 거인은  누구보다 더  날카롭게 자본주의의 한계를 간파했기 때문이다. 두 거인들은 무려 백 년 이라는 시대 차이가 있음에도 현대인들을 마주한 듯 생생하게 작품에 표현하였다.  나쓰메 소세키 문학에 등장하는 주인공들은 현재의 시장만능주의의 사고방식을 가지고 있는 대부분의 젊은이들을 그렸고 베버는 고난의 변신론과 행복의 변신론을 통해  현시대의 한계점을 적확히  지적하였다. 이미 백 년 전에 이들은 근대라는 시대의 세례를 받은 이후에는 행복을 찾을 수 없다고 확신하였던 것이다. 그리고 그들의 예견대로 행복이 쏙 빠져버린 세계가 바로 지금 우리 눈앞에 펼쳐진 세계이다. 

 

 

"인간이 덧없이 죽을 운명에 있다는 것을 염두에 두고 어디까지나 겸허히 인간적인 것을 긍정한다." - 테리 이글턴-

 

언덕 저너머에 행복은 없다. 미안하지만 이것이 현실이다. 그러나, 우리에게는 살아가는 이유가 있다. 이제까지 내가 걸어 온 길에는 흙길도 있었고 아스팔트길도 있었다. 가끔 웅덩이가 깊이 패인 길도 만났다. 그 길을 건널 때마다 인생이 남겨 준 물음이 있다. 왜 살아가야 하는지, 왜 우리는 이토록 고독한 것인지, 진짜 자기를 찾는다는 것은  무엇인지, 하는.... 그런 질문들에 답이 하나둘씩 채워져 내 인생을 만들어왔다. 어쩌면  삶의 부족함을 메워가는 것, 그것이 인생인지도 모르겠다. 삶에 예기지 않게 불쑥불쑥 얼굴을 들이미는 불행과 절망에서 인생의 의미를 건져올리는 것이 바로 인생이라는 길이며 이 전인미답의 길을 채워가는 길목에 서 있는 모습이 현재 우리의 모습이다.  이 책에는 행복은 없지만 인생을 열어주는 길이 있다. 과거 무엇이 되기 위해 인생을 써왔던 우리에게 이제는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를 보여주고 있기에 매우 희망적이다. 불행을 염두에 두고 있는 한 희망이란 불씨는 절대  꺼지지 않기 때문이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