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야기를 따라가는 한옥 여행 - 닮은 듯 다른 한옥에서 발견하는 즐거움
이상현 지음 / 시공아트 / 2012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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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홍준 교수는 나의 문화유산 답사기에서 한 시대, 한 민족의 문화는' 건축'이라는 나무에 미술이라는 꽃으로 남게 된다고 한다. 그 시대의 경제, 정치 군사, 인물, 사상, 문학은 모두 땅속에 묻혀 있는 뿌리이며, 보이지 않는 무성한 잎이 그 시대 사람이 살던 민속이다. 따라서 한 건축물을 보고 느끼는 여행은 곧 시대를 읽어내는 일이다. 이 책이야기를 따라가는 한옥여행의 저자 이상현은 현재 한옥 연구가로 활동하고, 한옥 연구소를 운영하고 있다. 저자는 한옥의 아름다움을 더 많은 사람들에게 알리기 위하기 위해 책을 집필하였는데 한옥은 자신에게 관심을 주는 사람에게만 아름다움을 드러낸다는 저자의 말에서 한옥의 깊은 애정이 느껴진다. 책에는 저자가 2년간 소중한 인연을 맺은 24곳의 전통 건축이 모두 들어있다. 24곳 중 17곳은 각자의 색깔을 가지고 있는 살림집으로서의 한옥이다. 모두 12일의 코스로 여행 가기 좋은 곳으로 선정하였다. 한옥에 관심이 많은 사람들은 아마도 이 책 한권으로 여행을 떠나도 좋을 것 같다.

 

 

 

 

 

또한 유홍준 교수는 우리나라의 건축의 미를 자연석과 인공석의 조화라고 하였다. 이 책의 저자 또한 한옥의 아름다움은 자연과 문화의 조화라고 한다. 자연에서 구한 막돌과 사람이 구운 기와로 장식되어 19세기를 살아 낸 사람들의 생활을 엿보는 즐거움은 이 책의 색다른 즐거움이다 집은 사회의 변화를 담아낸다. 한옥처럼 실용을 중시하는 집은 그 변화에 매우 민감하다. 화성 정용채가옥은 1800년대 중반 해안가의 시대 상황을 잘 반영하고 있으며  달 모양의 특이한 건물 배치에서 당시 시대정신을 들여다보는 재미가 있다. 전혀 다른 정서를 반영하고 있는 정용채가옥과 정용래가옥의 서로 대비되는 이야기로 한옥의 이야기는 시작된다.   뿐만아니라 한옥으로 지은 성당도 있다. 성공회강화성당과 강화온수리성당인데 성공회성당은 사찰 같은 겉모습을 가지고 있으나 내부는 바실리카식 성당을 잘 소화해 내 독특한 자신만의 아름다움을 가지고 있다. 강화온수리성당은 규모는 매우 작아 소박하지만 전통 건축에 신앙을 무리 없이 담아내 아늑한 건축 공간을 성취해 내었다. 저자는 강화도가 유독 다른 지역보다  역사적 지층이 두터워 역사의 흐름을 하루에 짚어볼 수 있는 장점이 있다고 한다. 강화도지역은 역사기행으로도 손색이 없는 곳이라고 한다.

 

 

 

한 시대를 풍미했지만 비극으로 점철된 운명의 주인공 명성황후와 흥선대원군의 숨결을 느낄 수 있는 사적 제257호인 운현궁에서는 흥선대원군의 운명을 그대로 담아 내고 있는 한옥을 만날 수 있다. 운현궁의 매표소에 들어서면 정면으로 보이는 솟을대문의 문이 안과밖이 바뀐 채 달려 있는데   문이 거꾸로 달린 이유가 대원군을 감시하던 일본이 대원군의 출입을 봉쇄하기 위해 빗장을 밖으로 둔 것이라고 한다.  왕의 아버지로서 적지 않은 세월을 운현궁에서 보낸 흥선대원군의 운명이 운현궁 곳곳에서 보인다. 이어 국가 문화재로 지정된 김기현가옥에서 한옥이 담고 있는 여성상과 역사의 숨은 흔적을 따라가고 추사 김정희의 고택에서 살펴보는 김정희의 삶과 예술을 볼 수 있다. 

 

집은 그 시대의 생활과 문화를 담아내는 그릇이다

 

 

한옥의 가장 원초적인 디자인으로서 비대칭은  민초들의 생활속에서 태어나고 자란 심미안으로 우리 모두가 쉽게 다가갈 수 있는 전통미다. 중요민속문화재 제159호로 지정된 보성 이용욱가옥은 부재의 사용에서 사유 방식에 이르기까지 비대칭 디자인이 가질 수 있는 모든 미덕과 함께한다. 근대의 숨결이 남은 강골마을과 하나가 된 이용욱가옥과 풍수만으로도 이름이 높은 운조루는 영호남의 경계에 위치하여 영호남의 건축의 장점이 모두 살아 있고, 집 안 곳곳 운조루를 지은 건축가의 재능을 느낄 수 있다. 최근 세계문화유산에 등재된 양동마을의 향단은 다른 한옥과는 다른 모습을 지니고 있다. 향단은 이언적이 지어 유명하지만 향단이 가지고 있는 독특한 형태 때문에 더 유명하다고 한다. 저자는 아마도 향단의 건축 배경이 자연과의 조화보다는 사회적인 가치이기 때문이라고 하는데 향단에 얽혀있는 이야기를 통해 시대를 어렴풋이나마 느낄 수 있었던 것 같다.  

 

 

 

 

 

 

책에는 내가 사는 곳의 문화재도 있다. 중요민속문화재 제205호 정온선생가옥인데 정온과 정희량의 집안의 후손들이 추모하는 마음으로 지은 집이다. 광해군의 노여움을 사 벼슬길이 평탄하지 못했지만 절개가 드높았던 정온과 무신난의 주역으로 역모를 꾀한 정온의 손자 정희량은 충신 정온의 제사로 다시 후손들에게 받들어지게 된다. 이런 역사를 담고 있는 정온선생가옥 곳곳에 충신과 역적을 오가며 함께 했을 영광과 좌절이 가옥안에 고스란히 배여있다. 얼핏 차를 타고 지나가면서 본 정온선생가옥에 이런 시대적 아픔과 비밀이 담겨 있는지 몰랐다. 한편으로는 건축을 보면서 시대를 읽는다는 것이 불가한 일이라고 생각하였던 것 같다. 전통 한옥을 보고도 아무 감흥이 없던 전과는 달리 전통 가옥과 함께한 시대를 읽어나가는 기분은 내게 색다른 경험이었다. 한편으로는 기와를 얹은 모양을 보며 한국의 아름다움을 말해주는 누군가가 있다는 것에 감사하다. 책을 통해 새로운 세상을 접하는 기분은 늘 신비롭다. 더군다나 점점 우리 고유의 문화가 사라지고 있는 시대에 땅속에 묻혀 있던 뿌리를 찾아 캐내어 우리에게 이런 보물이 있다는 것을 나열해주는 작가의 한옥이야기는 잊고 있었던 문화유산의 가치를 느끼게 한다. 이야기를 따라가는 한옥여행은 곧 우리 역사를 찾아 떠나는 여행이다. 한옥과 함께한 우리문화의 기행은 무척 의미깊은 일이 아닐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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