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평과 이데올로기 - 마르크스 문학 이론의 한 연구
테리 이글튼 지음, 윤희기 옮김 / 인간사랑 / 2012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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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존하는 최고의 마르크스주의 비평가로 평가받는 테리 이글턴의 《비평과 이데올로기》는 마르크스의 비평과 이데올로기에 관한 마르크스주의를 다시 불러내고 있다. 베를린 장벽이 무너지면서 마르크스 주의가 몰락한 것으로 보고 있지만, 테리 이글턴은 ‘마르크스주의’야 말로 완벽한 사상이었음을 말하고 있다. <코뮤니스트>에서는 소련의 공산주의가 마르크스주의적 실천들이 폭력과 독재로 귀결되어 변질되는 과정이 그려져 있다. 그러나, 테리 이글턴은 자본주의를 지지하는 입장이야말로 폭력적 억압을 지지하는 행위와 다르지 않음을 상기시키고 있다.

 

 

테리 이글턴은 헤겔의 말을 인용하여 인간 주체의 자기 이해와 실제 사회적‧ 역사적 위치 사이의 괴리가 역사를 움직이는 동력이었음을 말하며 이 괴리는 달리 말하면 인간의 의도와 그 의도가 실행되는 과정, 불가치하게 우리가 앞서 알 수 없는 그 과정 사이의 간극 혹은 생산적 소외라 할 수 있다고 한다. 자기 이해가 역사적 진실을 어느 정도는 파악할 수 있다. 그러나 궁극적으로는 인간의 자기 이해가 역사적 진실보다 늘 뒤처지게 마련이다. 우리의 삶을 앞을 향하고 있지만 이해는 늘 뒤를 돌아다보는 구조다. 신자유주의의 풍미로 마르크스주의는 쇠퇴하는 것으로 보이지만 이것은 자기 이해가 역사적 진실보다 뒤처진다는 헤겔의 이론으로 설명되어 진다. 이것은 현세계가 세계 자본주의에 대한 ‘문화적’비판의 성격이 농후한 것으로 국가, 계급투쟁, 세계적인 규모의 노동 분화, 혁명적 민족주의 등에 대한 고려보다는 정체성이나 인종문제 등에 대한 문제에 더 관심을 두고 있는 것을 통해 증명되어진다.

 

 

 

사회주의자들의 투쟁은 계속되었고, 그들의 지적 작업 역시 꾸준히 이어졌다. 1970년대 초의 전체적인 감성의 구조, 즉 그 시기만의 독특한 분위기와 감수성은 시간이 흐를수록 점점 더 희미한 기억이 되고 말았다. 분명한 것은 마르크스주의의 문화비평인 <비평과이데올로기>라는 책이 출현할 즈음에는 이미 그 시대의 감수성이 시들해지고 사회주의 문화의 쇠퇴가 시작되는 지점이었다. 마르크스주의 비평 일반 이론의 요소들이 흩어져 있는 것들을 한데 모아 어느 정도 일관된 모양으로 만들 필요로 탄생하게 된 것이 바로 <비평과이데올로기>이다.

 

 

비평은 순수한 분야가 아니며, 결코 그랬던 적도 없다. 비평사자체를 탐구하는 것, 즉 어떤 상황에서 어떤 목적을 위하여 하나의 문학비평이 발생하였는가 하는 문제를 제기하는 것이 마르크스주의 비평의 한 부문이다. 왜냐하면 비평도 역사를 갖고 있고, 또 그 역사란 비평행위들을 되는 대로 배열해 놓은 것 이상의 것이기 때문이다. 비록 문학이 비평의 대상이긴 하지만 비평의 유일한 발생점은 아니다.

 

우리의 사유는 우리가 살고 있는 곳에서 시작된다. -레이먼드 윌리엄스-

 

 

엄격히 말해서 텍스트는 문학 이론의 ‘구성 요소’가 아니다. 오히려 문학 이론의 대상이다. 그러나. 텍스트는 위에서 열거한 다른 요소들과 관련지어 검토되어야 한다는 관점에서 보면 방법론적으로는 어느 특정 ‘단계’로서 간주될 수 있다. 비평의 임무는 텍스트를 생산해내는 이러한 구조들의 역사적으로 복잡한 연관관계를 분석하는 것이다.

 

 

모든 작품은 작가만의 창작품이 아니다.              -발레리

 

 

문학 텍스트는 개인 소유물처럼 자신의 생산과정의 결정요소들을 거부하는 ‘자연적인’객체로서 나타나는 것이다. 따라서 비평의 기능은 문학작품의 자연발생적인 현존 모습을 거절하는 일, 즉 문학작품의 진정한 결정요소들이 나타나도록 하기 위해 그 ‘자연성’을 거부하는 일이라 할 수 있다.   지난 세기의 영국 문학 전반에 있어서 점차 빈한해져 가는 부르주아적 자유주의가 더욱 야심만만한, 그리고 영향력 있는 이데올로기적 기초가 적나라하게 노출되고 말았다. 그러는 가운데 그 유기적 형식의 이데올로기는 미학적 형식과도 심한 마찰을 빚기 시작했다. 정치 영역에서는 조합적, 유기론적 이데올로기의 파괴가 혁명가들의 변함없는 중심 과제였다. 미학의 분야에 있어서도 그러한 이데롤로기의 파괴는 다만 문학적 과거에 대한 과학적 인식을 위해서 필요할 뿐만 아니라, 유물론적 미학과 미래의 예술적 실천이 성립될 수 있는 기초를 마련하는 데도 필수적이었다.

 

 

 

문학적 가치의 ‘도덕주의’를 거부하고 작품의 가치 문제를 가능성의 조건 문제와 재결합할 필요가 있다. 인간은 문화만으로 살지 못하며, 결코 그럴 수도 없다. 그러나 실제로는 문화만으로도 살 수 있다는 것이 역사유물론의 주장이다. 물질적 결핍으로부터 해방되고 노동으로부터 자유로워지기만 한다면 인간은 상호 의미작용 속에 살 것이며, 끊임없는 자유를 만끽하면서 행동할 것이라는 것이다. 그런 과정 속에서 이전의 사회들이 분명 상관있는 것이 될 것이다.

 

비평의 목적은 텍스트 자체의 자연스러움을 이끌어내는 힘으로 그 스스로가 매끄럽지 못한 자신의 '인위성'을 자연스럽게 만들면서 텍스트 앞에서 스스로가 소멸되는 것이다. 이데올로기의 정치적.사법적 영역에서는 용이하지 않은 방식으로 자신을 자연스럽게 하며 자신을 이데올로기덕으로 결백한 것으로 내세울 수 있는 것이다. 이러한 비평과 이데올로기의 역사를 거치며 마르크스주의의 영향을 받은 사상가들의 나열과 번복되는 비평과 이데올로기 중심에는 마르크스 주의의 '도덕'과 '미학'이 존재한다. 그러나, 이 책은 문학 이론에 관한 전문적인 지식을 요구하고 있고, 마르크스 주의에 대한 기본적인 바탕이 있어야 읽을 수 있는 책이다. 테리 이글턴에 대해서는 현존하는 최고의 마르크스 비평가로 들어만 왔지 그의 저서를 읽은 것은 처음이다. 내게는 개인적으로 난해함의 지존이요,  독서에 난감함을 준 저자 테리 이글턴으로 기억될 것 같다. (서평은 거의 책을 인용하였고 참고자료로서 읽을 수 있도록 정리해놓는 것으로 마무리를 해 놓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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