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호모 이그니스, 불을 찾아서 - 횃불에서 원자로까지, 경이로움과 두려움의 패러독스
오쓰카 노부카즈 지음, 송태욱 옮김 / 사계절 / 2012년 10월
평점 :
절판
작년 이 맘 때 사이언스북스에서 출간 된 랭엄박사의 <요리 본능>을 읽었다. 정확이 1년이 지나 비슷한 주제의 책을 읽으면서 살짝 미소 지어본다. 책의 중간중간 랭엄박사의 요리 본능의 예문을 보니 더 반가운 마음이 든다. 랭엄 박사는 요리 본능에서 “화식은 동물과 인간의 차이를 확립하며 인간이 화식을 한다는 것은 자연으로부터 문화로의 이행을 나타낼 뿐만 아니라, 인간 상태의 모든 속성은 화식을 통해서, 수단으로 해서 규정할 수 있다.” 라고 하였다. 불을 사용한다는 것이 바로 인간의 가장 큰 특징이라는 뜻이다. 불로 인하여 문화가 형성되었기 때문이다. 랭엄박사는 인류가 불로 음식을 조리한 행위 , 즉 요리한 시점을 약 200만년 전이라는 주장을 했던 것이 인상적으로 기억된다.
‘호모 이그니스'는 사람속(屬)을 뜻하는 라틴어 호모(Homo)와 불을 뜻하는 라틴어 이그니스(Ignis)를 조합한 단어로, 인류가 불과 함께 진화했고, 불이 인류 문화의 원천이 되어 왔음을 상징한다.
같은 맥락으로서 불의 역사를 살펴보는 이 책은 저자가 일본인이다. 원자력 폭발이라는 거대한 불의 재앙을 눈앞에서 보았던 저자는 일본인들에게 ‘불’에 대한 경각심을 일깨워주기 위해 이 책을 저술하였다고 서문에 밝히고 있는데 이 책은 학술적이진 않지만, 인간과 불의 밀접함을 말하기 위해 일본의 신화나, 전설, 문학,예술 등 다채로운 시각으로 불을 탐구하고 있어 흥미롭기도 하지만 한편으로는 좀 이질감이 느껴지는 이야기들이다. 그러나, 이런 낯섦은 비단 이 책만이 아니다. 일본인이 쓴 책들의 장점이라면 독창적이라는 것이고 단점이라고 한다면 지나치게 이질적이라는 것이다.
최초의 불은 우주 자체의 시작과 함께 있었다.
팽창과 수축을 반복하면서 탄생하게 된 불덩어리가 곧 태양이다. 지구의 중심에 핵이 불덩어리인 것처럼 태양은 문자 그대로 불덩이이다. 인류가 출현하기 전부터 있었던 이런 불덩이들을 처음 만난 것은 자연적으로 경험하게 되는 ‘화재’(책에서는 화재로 표현되고 있는데 아마 자연발생적인 화재를 말하고 있는 것 같다.)로 당시 인류에게 화재는 ‘자연스럽게 일어난 사건, 자신들로서는 억제할 수 없는사건, 좋든 나쁘든 자신들이 적응하지 않으면 안 되는 사건’으로 경험했을 것이라고 한다. 이런 화재가 지나간 자리에는 동물이 타 죽었을 지도 모르고 , 그 동물을 먹으려 했을지도 모르지만, 가장 중요한 것은 화재가 지난 뒤에 생명의 시작이다. 이런 과정을 보며 불을 처음 만난 인간에게 처음에 두려움이었던 불은 또 다른 시작을 알려주는 것으로 느껴지게 되면서 불을 사용하기 시작했다는 것이 1장 불과 인류의 진화에서 다루는 내용이다.
토지의 개간과 요리와 불이 가져다주는 안전성과 쾌적성, 이 세 요소는 인류가 불을 독점하게 한 계기가 되었다고 볼 수 있다. 그리고 이 세 요소야말로 불이 인간의 보편적 속성이라는 것의 의미를 가장 잘 말해 준다.-p38
불의 생산성을 배우고 나자 인류는 불을 만들기 시작하는데 발화법에는 마찰법,타격법,압축법,광학적 방법등이 있다. 발화법으로 보존하기 위해 부싯깃으로 작은 불씨를 받아 불을 크게 일으키게 하기 위해 대나무나 얇은 판자 끝에 유황 용액을 바른 불쏘시개로 진화한 후 1875년 일본산 성냥이 만들어지기까지 불의 기원을 설명하는 것이 2장이다.
3장은 불의 신 가구쓰치의 탄생과 살육으로 시작하여 일본 신화속의 불이 가진 상징성을 조명하고 있는데 대부분의 신화에서 불이 여성의 신체, 특히 성기에서 생겼다는 이야기나 ‘여자가 남자보다 먼저 불을 가지고 있었다.“는 이야기가 많다. 인간에게 불을 가져다 준 신화 속의 프로메테우스의 이야기도 있다.
불을 가져온 자는 빛을, 은유적인 의미가 밝음인 정신의 빛을, 즉 의식을 가져온 것 이다.프로메테우스가 인간들에게 주기 위해 신들로부터 훔친 것은 의식인 것이다. 불-빛-의식의 선물은 인간에게 새로운 운명의 길을 연다. 이 의식이라는 숙명, 정신이라는 숙명 안에서 자신을 유지하는 것은 얼마나 괴로운 의무인가.-p106
3장에서 불은 여성의 태내라는 신성한 존재로 신화에서 그려지고 있는데 4장 종교에서 불은 신의 신성함을 나타낸다. 그러나 불은 신과 동일시하여 사용된 동시에 신의 분노를 나타내기 위해서도 불이 사용되었다. 7장에서는 인간의 정념을 불로 대신하여 표현한 문학적 표현과 예술에서 사용되어진 불의 형상화를 볼 수 있다. 특히 6장에서 저자는 불의 3대 기능 취사,난방,조명이 생활의 기능이 되면서 시작된 ‘근대’를 불빛이 여는 근대라는 표현을 하고 있다.(횃불‣촛불‣램프‣전구‣조명) 이처럼 빛은 곧 근대의 상징이 된다.
불과 인간의 관계는 이처럼 다양하다. 신화와 민담, 그리고 인간이 있는 곳에 불은 뗄레야 뗄 수 없는 관계이다. 랭엄박사가 요리본능에서도 불로 조리하여 음식을 먹는 행위로 인간은 자연의 존재에서 문화의 존재로 이행되었다고 하였듯이 불은 인간에게 ‘문화적 행위’를 가져오는 수단이 되었다. 그러나, 불이 인간에게 엄청난 혜택을 선사했지만, 소멸의 모습 또한 가지고 있다는 것을 명시한다. 저자는 신의 신성함을 위해 불을 사용하였지만 신이 소돔과 고모라를 멸한 것 또한 불이었다는 사실을 상기시키며 불의 이런 패러독스는 바로 불의 본성임을 말한다. 이는 불의 본성이 한편으로는 문화를 형성하는 것이고 다른 한편으로는 자연 그 자체라는 것을 보여주는 것이다. 이 책은 일본인 저자 특유의 주체적인 사유가 돋보이는 책이다. 일본 신화는 일본이라는 나라만큼이나 이질감 있게 다가오는 이야기들이 많았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저자가 말한 불이 혜택과 동시에 소멸을 주는 존재라는 것은 기억하고 싶다.
“불을 잊지 말라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