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세 걸음 (무선) 문학동네 세계문학전집 100
모옌 지음, 임홍빈 옮김 / 문학동네 / 2012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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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상적인 리얼리즘 문학의 정수 모옌의 <열세걸음>의  첫장을 펼쳤을때는 마누엘 푸익의  <거미여인의 키스>가 연상되었다. 라틴아메리카 문학의 가장 최고의 문제작으로 꼽혔던 마누엘 푸익의 <거미여인의 키스>을 읽을 때의 느낌도 이와 비슷한 느낌이었던 것 같다. 수 많은 이야기들이 두서없이 혼몽처럼 피어나 읽는내내 몽환 속을 거니는 착각이 드는 그런 느낌. 모옌의 판도라 상자를 열자마자 튀어나오는 이야기들은 인간의 온갖 부조리와 모순으로 가득 차 있는데 인류 문명의 역사가 이야기와 함께 삶을 만들어왔듯이 모옌은 <열세걸음>에서 이야기와 역사가 융합된 스토리텔링 형식의 하이브리드 문학을 선보이고 있다.  러시아 민담중에  참새가 한 발 한 발 걸어가는 것을 보면 하늘에서 행운이 뚝 떨어지는데 그 걸음을 볼 때마다 인간이 욕망하는 모든 행운이 주어진다고 한다. 건강, 명성,아름다운 외모등 열 두가지 행운을 안겨주지만  열 세 번 째 걸음을 보게 되는 순간 앞서의 모든 행운이  곱절의 '악운'으로 바뀐다는 열세걸음의 민담을 바탕으로 분필을 씹어먹는 화자가 이야기를 들려주는 것이 한 걸음의 시작이다. 

 

리교사 팡푸구이가 수업중에 교단에서 쓰러진다. 팡푸구이는 죽은 것이 아니라 잠시 기절하였지만  교장은 팡푸구이를 과로사로 처리한다. 열악했던 물리교사들의 인권을 위해  한 개인의 죽음을 인도주의로 승화시킨 것이다. 팡푸구이는 평범한 교사에서  인민의 영웅이 되고 사회에 중년 교사들의 건강기금설립을 위한 운동을 불러일으키게 되는 선구자가 된다. 살았지만 죽은 자로 장례식장 아름다운 세상시체 냉동실에 놓이게 된 그는 정신이 돌아오자 살아있는 자로 세상에  돌아가지만 그곳에서 그는 다시 죽어야만 하는 자가 된다.

 

너는 몹시 슬펐다.

너는 아름다운 세상으로 돌아가고 싶었다.

너는 아름다운 세상으로 돌아갈 수 없었다.

너는 동료 교사의 집 문을 두드렸다. 

 

팡푸구이와 벽 하나 사이의 이웃이자 같은 학교의 물리교사 장츠추에게는 시의 모범노동자이며 장의사의 특급 장례미용사로 일하는 아내 리위찬이 있다. 그러나, 늘 그녀에게서 나는 죽음의 냄새는 그를 견딜 수 없게 한다. 좁디좁은 집에 한 시대를 풍미했던 아름다운 장모가 부엌의 반을 차지하고 누워있고 아이 둘은 벽장에서 지내고 좁은 침대에 살며 늘 자신의 무능력을 탓하는 아버지로서도 남편으로서도 무능한 가장의 모습을 하고 있다. 너무도 아름다워 한 시대를 풍미했던 장모가 늙어서는 대소변을 가리지 못하는 모습은 장츠추에게 어떤 인생의 무상함 같은 것이라, 장츠추는 언제나 장모를 풍류미인이라고 부른다. 그런 장모를 보며 장츠추도 대변이 새는 병을 앓고 있는데 아마도 장츠추의 이런 병은 아내를 거부하는 좋은 방어막이 되어준다. 어쩌면 모든 것에서 장츠추는 이미 삶의 모든 부분을 상실한 잉여인간이다. (1980년대 중국에서 교사는 사회적으로 반동분자의 기질로 분류되어 사회에서 '아홉번째 계급'이라는 취급을 받았다. 그런 시대적 상황에 장츠추는 당시 지식인 계층을 상징한다)

 

  그런 장츠추에게 아내이자 모범노동자이며 장의사의 특급 장례미용사 리위찬은 장츠추에게는 벅찬 아내이다. 아내는 불의와 타협하는 일이 능했으며, 시체를 성형하여 돈을 버는 일이라면 무슨 일이든 마다하지 않는다. 전애인이였던 왕시장의 입안에서 금니를 빼서 팔고, 지방을 빼내 맹수의 먹이로 사육사에게 판다. 리위찬은 자신에게서 죽음의 냄새가 난다고 멀리하는 장츠추를 대신해 자신에게서 냄새가 아닌 여성으로서의 요구를 하는 모든 남자들을 품는다. 소도시의 모든 사람들이 죽고 나면 '아름다운 세상'에 잠들길 소원하지만 그곳은 '인민의 영웅'만이 들어갈 수 있는 장례식장이다. 그곳에서는 리위찬이 최고의 권력자이며 혁명의 상징이자 공산주의 정신의 꽃이다. '아름다운 세상'은  혁명의 간부들에게만 주어지는 죽음의 특권이기에  살아서도 지난한 삶을 면치못하는 인민들에게는 죽음도 녹록치가 않다.  

 

 다시 살아 돌아온 팡푸구이에게 리위찬은 장츠추로 성형하여 예전의 물리교사로 만들고 자신의 남편 장츠추에게는 장사로 돈을 벌어오라고 한다. 인민의 계급과 신임이 두터웠던 리위찬은 사회의 요구를 대변하여 이들을 개조시키는데 이들의 모든 비극의 시작을 알리는 첫 걸음이다. 

 

팡푸구이의 아내 투샤오잉은 러시아인의 피가 절반은 흐르는 혼열2세이다. 러시아와 중국이 사이가 좋았을 때는 이런 혼열이 좋은 대접을 받았지만, 러시아와 중국이 서로 다른 노선으로 등을 돌리자 투샤오잉의 출신은 철저하게 비밀에 부치게 된다. 사범대학의 우등생으로 러시아어를 전공한 그녀는 중국에서 토끼 가죽 벗기기 담당 일을 하고 있다. 죽은 줄 알았던 남편 팡푸구이가 장츠추의 얼굴을 하고 나타나자 투샤오잉은 옛날 속담처럼 자신을 시험하러 온 귀신이라 생각하고 쫓아 보낸다. 아내를 위해 장츠추의 얼굴을 하였던 팡푸구이는 자신의 선택을 후회하고 리위찬에게 예전의 얼굴로 돌려놓길 바라지만 , 되돌리기에는 너무 늦은 상태였다. 러시아인의 피가 흐른다는 것이 들킬까봐 늘 불안하였던 투샤오잉은 살아남기 위해 인민간부와 긴밀한 관계를 맺음으로 예정된 비극의 수순을 밟아 간다.

 

이렇듯 이들이  한 발 한 발 디 딛는 발걸음은 러시아의 민담처럼 차근차근 예정된 비극적 파국으로 치닫는다. 중국의 지식층들의 불우한 삶을 여실히 보여주고 있는 소설의 배경은 중국에서 민주화운동이 일어나기 바로 전이다. 마오쪄둥 시대에 지식인들을 반동계급이라 칭하여 변방으로 내몰았던 것처럼 한 칸짜리 방에서 다섯 식구가 살아가기에도 빠듯한 물리교사의 삶은 바로 중국 지식인들의 실제 모습이다. 서술자를 통해 보여주는 마오쩌둥에 대한 체제에 반발심과 학생들이 공부하는 시험지에 4인방의 이름을 쓰는 시험지, 계급사회에서 살아서도 대우받지 못하는 인민들은 죽어서도 '아름다운 세상'이라는 장례식에 들어가지 못하는 사회에서 소외된 계층으로서 중국의 이원적 체제인 사회주의와 자본주의의 두 체제가 혼합된 사회속에서 개인의 정체성의 불안은 어느 쪽으로도 갈피를 잡지 못하여 기형적인 삶의 형태로 변형되어 간다.  

 

 이들의 이야기 중간 중간 삽입된 이야기들은 비현실적이고 엽기적인 이야기들인데 바로 이런 중국 사회의 복잡한 문제를 보여주는 데에 탁월한 연상 작용을 한다.  이야기는 현실보다 더 리얼하게 삶의 본질에 파고들어 현실의 삶을 여실히 보여주고 있다. 기기묘묘한 이야기처럼 등장인물들 모두가 이상세계와 현실세계의 경계선이 없이 몽환적인 시간의 흐름을 보여주고 있고 그 속에서 주인공들의 과거와 현실이 교차하며 진행되는 서사는 복잡한 미로를 헤매는 기분을 느끼게 한다. 이런 몽환의 느낌은 사회주의와 자본주의가 공존하고 있는 중국 현실속에서 인민으로 살아가며 느끼는 지난한 삶의 맛이다. 개인은 사라지고 인민의 존재만이 사회에서 가치가 있으며 자본주의의 유입으로 돈을 버는 일(상업)이 더 중시되자 개인은 사라지고 사회체제에 따라 움직이게 되면서 이들은 서서히 '개인'이라는 독립성과 주체성을 상실해간다. 사회의 요구에 따라 '나'의 모습이 아닌 타인의 페르소나를 쓰게 된 이들은 이야기를 들려주는 서술자의 복잡한 시점처럼 '나'가 사라지고 모두  '너'나 '우리'라는 호칭으로 불리우게 된다. 팡푸구이가 자신이 아닌 장츠추의 삶을 살아야 하고  장츠추가 도시의 떠돌이로 내몰리고  혁명의 꽃인 리위찬이 돈에 의해 타락해가는 모습이나  투샤오잉이 몸속에 흐르는 러시아의 피를 부정하고 중국 인민으로 살아가기 위한 몸부림들은 하나같이 '나'라는 '자아'를  잃어버린 후 겪게 되는 비극의 몸부림들이다.자신의 모습이 아닌 타인의 페르소나를 쓴 뒤의 삶은 모두 예정된 수순처럼 비극적 파국을 맞는다. 자아를 상실한 이들의 삶은 비단 중국에만 국한된 것이 아니라 우리의 모든 삶에서 '나'를 잃어가고 있는 현대인들의 비극을 보여주는 묘파이다.<열 세 걸음>은  기존에 접해 본 적이 없는 색다르고 독특한 느낌의 문학이었고 첫장을 열자마자 펼쳐지는 모옌의 판타스틱한 이야기들은 마치 인간에게 금지된 판도라 상자를 열어본 기분이다.  희망이 빠져 나오지 못한 채 닫혀 버린 판도라상자 안의 온갖 불행들이 우리의 삶을 향하여 한 걸음 내딛고 있음을 본다.

 

혁명의 시대에는 선혈이 흐르다 못해 강물을 이루었기 때문에 눈물 따위는 아무 가치도 없었다.-p3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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