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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기
대리언 리더 지음, 배성민 옮김 / 까치 / 2012년 9월
평점 :
품절
현대에 광기는 곧 정신병으로 간주된다. 수많은 범죄자들의 원초적인 문제를 이 ‘광기’의 문제로 보고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이 ‘광기’를 치료하기 위해 수 많은 병명이 탄생했고 수 많은 약물들이 범람하고 있다. 그럼 여기서 하나의 문제에 직면하게 되는데 인류가 오랫동안 정신병을 연구하고 치료되고 있다고 믿는 이 정신병이 근래에 들어서 더욱 기하학적으로 급증하고 있는 이유는 무엇일까? 하는 문제이다.
<뻐꾸기 둥지위로 날아간 새>에는 가짜 환자 맥머피가 등장한다. 노동자였던 그는 편한 생활을 하기 위해 정신병원을 택하여 들어갔지만, 거기서 그는 의사와 간호사들에 의해 자행되는 전기충격과 뇌 전두엽 절제술로 망가져간다. <광기>의 저자 대니언 리더는 이것이 비단 문학에서 존재하는 상황이 아닌 현실의 정신의학의 치료법이라는 사실과 다양한 실험사례와 연구를 통해 광기(정신병)에 대한 새로운 접근을 시도하고 있다. 저자는 이런 현대의 정신치료법이 의료기관이 믿는 질병과 건강에 대한 개념이 아무리 타당하더라도 각 개인의 내면과 신념을 진지하게 여겨야 하며 일반적인 세계관을 환자에게 주입하는 식의 치료는 오히려 인권을 침해하는 행위라는 것이 이 책의 골자이다. 환자를 치료하기 위해서는 환자의 사는 세상의 이해로부터 시작하여 그것이 어떤 영향을 끼치는지 살펴보아야 한다.
![](http://image.aladin.co.kr/Community/paper/2012/1115/pimg_732707167799452.jpg)
고대 그리스 이래로 광기는 창조성과의 관계에 중요시되어 왔다. 플라톤은 “신에 의해서 주어진 것 중에서 광기는 좋은 것 중에서도 가장 좋은 것”이라고 말하였다. 그러나 근대에 ‘개인’의 특성과 가치가 한 가지의 통일된 행동규범의 교육을 주입하게 되면서 정상적인 규범을 벗어난 행위들에 대해서 무조건적인 탈개인화로 인지되어 평범하지 않은 (규범에서 벗어난) 사람들을 정신병으로 내몰고 있게 된 것이다. 개인이 사라지게 된 현상은 정신영역에 큰 영향을 주어 정신의학계가 내놓은 치료법이란 미리 결정된 결과와 겉보기 행동, 소위 ‘정상화(normalizaion) 에 집착하며 환자들이 가진 개개인의 가치관과 규범을 침범하고 환자가 속한 문화와 역사를 깡그리 무시한 채 진행되는 치료법이 정착한 것이다.
정신의학 초기의 치료법은 대체로 뇌의 ‘상위 기능(higher function)’을 파괴하거나 심각하게 손상하는 치료법이었는데 이것은 ‘뇌를 때려 눕히고, 기억을 망가뜨리는 것’이 당시 치료의 목표였다. 이런 약물 치료법은 초기에 의사들에 의해 효과가 있다고 입증되었으나, 아이러니 한 것은 오늘날 정신병치료를 받게 되는 환자들은 5배나 늘고 있다는 것이다.
책에는 이에 대해 데이비드 로젠한의 연구를 살펴보고 있는데 가짜 환자 8명이 정신병으로 입원을 요청하여 의사들로부터 ‘정신분열증’진단을 받고 일주일을 입원한 후 ‘분열병 완화’판정을 받은 뒤 퇴원하였다. 이들에게 처방된 알약은 무려 2,100개.
이것은 정상과 비정상을 구분하는 기준과 정신병과 정상인의 기준자체가 얼마나 모호한 것인지를 잘 보여주는 실험이다.
책에서 다룬 여러 가지 실험을 통해 저자는 미친 사람을 진단하려면 겉보기나 정상화된 행동으로 진단해서는 안 되고 그가 가진 생활사를 들여다 보는 것만이 유일한 진단방법이라고 한다.
라캉에 따르면 몸, 언어, 시각적 이미지는 세 가지 차원으로서 함께 삶에 안정감을 주고 현실감을 만들어낸다. 세 가지 차원이 제대로 작동하지 않으며 , 각 차원이 삶에 간섭하고 삶을 파괴할 수 있다. 라캉은 이 영역들을 “상징계”,“상상계”,“실재계”라고 불렀다. 상징계는 언어와 법의 세계이며, 상상계는 몸 이미지의 세계이고, 실재계는 몸의 리비도 흐름으로서 소름끼치는 흥분과 자극으로 우리를 공격한다. 그러면 세 가지 차원이 어떻게 연결될까? 세 가지 차원과 정신병은 어떻게 연결되어 있을까? -43p
저자는 라캉의 세 가지 차원의 개념(상징,상상,실재)의 균형이 깨지게 되면서 나타나는 종류 -편집증, 분열증,우울-의 원인과 증상을 살펴보는데 리비도의 흐름에 따라 병의 종류가 나누어진다. 이것은 생물학적인 증상 신경증과도 구별되는데, 저자는 책에서 신경증과 정신병을 구분하여 치료하는 방법이 가장 시급하다고 한다.
책을 읽으면서 최근에 본 공포영화가 떠올랐다. 외국공포영화에 가장 많이 등장하는 단골배경은 정신병원이다. 수많은 의사들이 흰 가운을 입고 수술대를 둘러싸고 뇌수술을 당한 후 충격으로 살인마가 된다는 설정 또한 공포영화의 흔한 소재이다. 이 책에 나온 실험사례들이나, 정신병자를 면담하면서 나눈 대화들이 바로 이런 정신병원에서 받은 인권 침해로 인해 정신병이 더 심화된 것을 보여주고 있었고 또한 대부분이 심리적인 요인이 발단이 되어 정신병이 표출되는 경우가 대다수이다. 심리적 요인의 정신병을 뇌수술로 치료한다는 것 자체가 잘못 끼워진 단추인지 모르겠다. 이렇듯 정신의학에서는 소위 '광기'를 정신병과 동일하게 받아들이기 시작하게 되면서부터 광기는 곧 정신병이라는 공식이 성립되어 온 것이다. 이 부분은 정신과학부분에서 인류가 처음부터 발을 잘못 들여놓았음을 말하고 있는 것이다. 과거 우생학을 내세우며 자행된 나치의 폭력성과 잔인함을 떠올려보면 현재 정신병자들에게 자행되는 치료 또한 이와 다르지 않다. 저자는 광기는 인간의 창조성과 개인이라는 특별한 존엄성에서 출발한다는 믿음으로 출발하며 광기가 우리와 다르다는 이유로 정신병의 잣대로 무조건 부정적으로 그려지고 있는 것은 근본적으로는 인간존엄성을 침해하는 행위나 마찬가지임을 명시하고 있다. 나 역시도 정신병하면 사회의 범죄자를 떠올리곤 하였는데 이 책의 다양한 실험을 통해 누구에게나 조용한 광기라는 것이 자리잡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단지 그 광기가 어떤 식으로 표출되고 다스리느냐에 따라서 정신병과 신경증으로 나누어지며 그에 따른 치료법도 달라져야 한다. 대니얼 리더는 이런 정신병에 대한 탐구가 없이 하나의 '병病'으로만 치부되어 천편일률적으로 치료되는 것을 하나의 인권침해로 보고 있다. 이 책으로 인해 정신병에 대한 사회적 태도와 치료가 처방이 아닌 인간 내면의 고유성과 감수성에 호소하는 치료로서 정신의학의 새로운 지평을 열어주기를 염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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