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에 예쁜 것 - 그리운 작가의 마지막 산문집
박완서 지음 / 마음산책 / 2012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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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완서작가의 글은 늘 어머니를 떠올리게 한다. 그리운 향수처럼 아련해진다.

작년 박완서작가의 타계소식을 듣고 가장 먼저 한 일은 그의 작품을 다시 읽는 것이었다. 그게 내가 할 수 있는 유일한 행위였는지도 모른다. <오래된 농담>,<그여자네집>,<너무도 쓸쓸한 당신>,<그 많던 싱아는 누가 먹었을까>,<미망>,<나의 가장 나아종 지니인 것> 등 수많은 작품들이 있지만, 나는 그 중에서도 <너무도 쓸쓸한 당신>을 가장 좋아한다. 그 이유는 박완서 작가의 글 전체에 흐르는 주체적인 여성성 때문이다. 물론 페미니즘의 대표적인 작가로 박완서 작가를 꼽고 있지만, 나는 박완서 작가의 글에 담긴 여성으로서의 어머니의 냄새가 좋다. 박완서 작가의 책은 모두 읽어보았지만 어느 한 곳에서도 어머니의 흔적이 없는 곳이 없다. 그래서 박완서 작가하면 어머니가 가장 먼저 연상되곤 한다. 《세상에 가장 예쁜 것》이 책은 전쟁으로 인한 비극을 직접 체험하며 그 안에서 삶의 혜안을 얻어 써내려간 글들이다. 이 글들을 읽다보면 작가의 내면 깊은 곳에 자리한 여성성이 세상에서 어떤 존재인지를, 모성이야말로 여성이 가진 원초적인 본성임을 자각하게 해주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된다. 그래서 박완서 작가의 글은 어머니이다.

 

 시골 깡촌 에서 살면서 무지로 남편을 떠나보낸 후 자식들에게는 무지를 벗어나게 하기 위해 도시에서 삯바느질을 하며 공부를 시켰던 어머니처럼 내 어머니도 배움에 악착 같으셨는데 안그래도 없던 집안 형편이 자식 넷이 대학에 들어가자 더욱 빈궁해졌다. 대학등록금이 감당할 수 없었음에도 어머니는 김밥장사를 하시고 급식소에 빵을 대주기도 하시고 어떤 날은 떡 장사에, 돈이 되는 일이라면 마다하지 않으셨다. 끼니를 굶으시면 서도 학교는 절대 그만두면 안 된다고 하셨던 어머니의 모습이 늘 가슴 한켠에 머물러 가슴을 아리게 한다. 세상의 어머니들의 마음이란 자식을 향한 영원한 짝사랑처럼 홀로 내리는 사랑이다.

 

 

어머니는 말씀도 무척 잘하신다. 달변가이시고 재미있으신 분이다. 나는 어머니의 그런 재치와 지혜 가득한 이야기 듣기를 좋아했는데 박완서 작가는 <이야기의 힘>에서 80세가 되어도 젊다고 생각한 이유를 ‘ 좋은 것을 좋다고 느낄 수 있는 감수성과 옳고 그름을 분별할 줄 알고 옳지 못한 일에 분노하고 부조리에 고뇌할 수 있는 비결’이라고 한다. 이제 70이 다되어가는 어머니가 한번도 늙었다고 생각한 적이 없었던 이유가 아마도 이런 이야기의 힘이었는지도 모르겠다. 그런데 이번 추석에 만난 어머니는 더이상 이야기를 해주지 않으셨다. 지금 생각해보건데 아마도 이야기가 사라지는 것과 같이하여 젊음도 사라지신 것이 아닐까 하는 의구심이 든다. 어쩌면 나도  어머니가 항상 젊다고 생각했던 것이 이야기의 힘때문이었는지 모르겠다. 다음에 만나면 어머니에게 다시 이야기를 해달라고 졸라봐야겠다.

 

이 책에는 박완서 작가의 젊은 날의 고뇌와 고통이 고스란히 배여 있다. 전쟁으로 스무 살 꽃다운 나이의 시작과 동시에 끝이 난 젊음을 ‘막 베틀에 올라앉아 나만의 무늬를 짜기 시작하려는데 어떤 날카롭고도 잔인한 칼이 내 인생의 피륙을 싹둑 잘라버렸다면 어떻게 그 사실을 승복할 수 있겠는가’ 라며 전쟁의 비극을 말하고 사별의 고통을 시간으로 치유되는 순간을 경험하며 시간이야말로 신의 다른 이름이라고 말하는 부분이 가장 박완서 작가다운 삶의 연륜에서 묻어나는 관록의 문체가 아닐까한다.

 

책의 제목《세상에 예쁜 것》을 본 순간 아기를 떠올렸다. 세상에 예쁜 것! 이라는 찬사와 감탄은 아이를 본순간 터져나오는 함성이다. 세상에 예쁜 것은 바로 세상의 모든 아이를 향한 어머니의 찬사이다. 박완서 작가의 글을 읽다보면 하나의 공통된 느낌이 있다. 위에 말한 대로 어머니라는 상(像)이다. 작품 전체에 흐르는 어머니라는 오브제는 시간이 지남에 따라 선명해지며 여성의 권리로, 양성 평등으로 그리고 생명을 잉태하는 모성을 가진 여성상 즉, 어머니로서 부각되어 다가온다. 그래서 박완서 작가의 글을 읽을 때마다 어미젖을 찾는  새끼의 그리움처럼 아련하게 느껴지는지도 모르겠다.

 

수명을 다하고 쓰러지려는 고목나무가 자신의 뿌리 근처에서 몽실몽실 돋는 새싹을 바라볼 수 있다면 그 고목나무는 쓰러지면서도 얼마나 행복할까. 아기의 생명력은 임종의 자리에도 희망을 불어넣고 있었다. 찬탄이 절로 나왔다.-p8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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