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력에 맞선 이성 - 지식인은 왜 이성이라는 무기로 싸우지 않는가
노엄 촘스키 & 장 브릭몽 지음, 강주헌 옮김 / 청림출판 / 2012년 10월
평점 :
절판


촘스키. 언제부턴가 친숙해진 이름이다. 며칠 전에는 MIT대학생이 찍은 강남스타일 동영상에 등장하여 화제가 될 정도로 일반인들에게도 주목을 받게 된 촘스키 스타일도 있었다. ‘생존하는 가장 중요한 지식인이자 인류 역사상 자주 인용되는 여덟 번째 인물이기 때문인지 촘스키의 저서를 읽어보지 않았어도 너무나 많이 들었던 이름이다. 이 책은 물리학 교수 장 브릭몽과 촘스키의 인터뷰로 장 브릭몽이 질문을 하고 촘스키가 답을 하는 형식으로 이루어졌는데 장 브릭몽의 질문이 무척 예리하고 날카롭다. 질문은 세 가지 장으로 나누어 권력인간 본성과 이성’, ‘과학과 철학에 대한 촘스키의 사상을 엿볼 수 있다.

 

전 세계에 불어 닥친 금융위기에 대한 시선들은 불안하다. 자본주의의 종말이라든지, 사회 변혁의 문제가 대두되고 있고 , 세계적인 지성인들-석학들은 여러 시스템의 대안을 제시하고 있다. 그러나 이들과는 전혀 다른 대안을 촘스키에게서 볼 수 있었다. 바로 사회주의이다. 우리에게 희망이 남아있다면 지금의 혼란을 바로 잡을 주역은 국민밖에 없다.

 

서구 세계의 프로파간다 시스템은 사회주의를 헐뜯을 목적에서 사회주의라는 용어를 사용했고, 동유럽의 프로파간다 시스템은 진정한 사회주의의 매력을 이용해 민중의 지원을 끌어낼 목적에서 사회주의라는 용어를 사용했습니다. 이런 암묵적인 협조가 빚어낸 족쇄에서 아직도 많은 이들이 벗어나지 못하고 있습니다. -p53

 

최근에 <코뮤니스트>를 읽고 나서부터 사회주의에 대해 무척 비관적으로 생각하고 있었다 공산주의는 어쩌면 매우 혁신적이고 매혹적인 사회 변혁의 이상을 반영한 사회주의의 형태를 띠고 있었을지 모르나 , 결국은 실패라는 이름을 남겨준 체제이다. 하지만, 촘스키는 그런 사회주의가 진정한 사회주의가 아니었음을 지적한다. 사회주의라는 이름에 덧붙여진 프로파간다인 것이다. 사회주의에 대하여 촘스키는 생산을 비롯해 삶의 여러 부분을 민주적으로 통제하는 제도가 사회주의라고 한다. 이런 사회주의는 이제껏 시도되지 않은 사회주의이다. 미래는 노동자와 일반 시민이 이끌어 가는 사회가 되어야 희망이 있다. 이제껏 모든 체제의 실패는 인간본성에 대해 제대로 아는 것이 없었기 때문에 제대로 된 정치체제 역시 없었다는 것이 촘스키의 설명이다.

 

 “역사의 어떤 시기에 발달한 특정한 사회제도가 인간 본성의 필연적인 반영이라고 단정할 만한 증거는 역사와 과학, 어디에도 없기 때문입니다. 오히려 특별한 형태로 나타난 심각한 병리적 현상이라고 주장하는 편이 훨씬 합리적입니다.”  

 

 책의 제목 권력에 맞선 이성》 처럼 세 장의 짧다면 짧은 인터뷰를 통해 촘스키의 사상을 요약하여 보여주는 대담들은 무척이나 무척이나 수준높은 지적인 사유들이다. 그리고 그런 지적인 이성의 바탕은 노학자의 겸허함에서 비롯되고 있다. 노벨상을 수상한 모든 이들이 하나같이 "노벨상은 사실 아무것도 아니다."라는 겸허함에서 출발하는 것처럼 촘스키 또한 세상의 모든 이치들을 '아무것도 아닌' 것에서 시작하고 있었다. 유한한 존재인 인간이 무한성을 가지고 있는 세계의 역사와 문명을 짧은 학문에서 말하고자 한다는 것자체가 어쩌면 인류 최고의 아이러니인지도 모른다. 그렇기에 역사를 살펴보고 더 나은 대안으로서의 미래에 촘스키는 어떤 프로파간다에도 휘둘리지 않고 현실을 똑바로 직시할 수 있는 이성을 갖추고 있어야 함을 역설하고 있는 것이다. 인류 역사에서 인권과 자유가 꾸준히 확대되어 왔고, 고통과 억압은 꾸준히 감소해왔듯이 우리가 현재 겪고 있는 위기라는 길목은 유토피아로 가는  길목에서 마주한 장애물일 뿐이다. 우리가 미래를 섣불리 낙관하거나 비관할 필요없이 희망을 잃지 않고 희망을 실현하기 위해 노력하면 상황은 개선(5p)될 수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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