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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지막 한 걸음은 혼자서 가야 한다 - 정진홍의 900킬로미터
정진홍 지음 / 문학동네 / 2012년 11월
평점 :
마음이 이상하게 허허로왔다. 드문드문 찾아오던 허허로움은 드문드문 찾아오더니 나이 불혹이 가까워지니 시도때도 없이 찾아오곤 한다. 그러다보니 이제는 마음이 허허로울 때가 다가오면 그냥 그 느낌을 즐기게 된다. 허허로움에 너무 빠지면 우울함을 동반하기 때문에 그냥 가만히 있다보면 아무 일 없이 지나가는 것을 알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다보니 슬픈 일도 그렇게 견디고 아픈 일도 아무 일 없듯 견디게 된다. 그런 허허로움이 다시 나를 괴롭히던 중이었다. 그냥 마음 한 구석이 텅 빈 느낌이었다. 낙엽들이 뒹군다는 이유로, 바람이 차가워졌다는 이유로, 마음을 달래기에는 너무 촌스러운 변명들이다. 그렇게 다시 찾아온 허허로움을 주체할 수 없던 차에 마음에 살뜰하게 다가온 <마지막 한 걸음은 혼자서 가야 한다>는 읽는 내내 가슴 깊은 곳에 있던 이 공허함의 정체를 깨닫게 해주었다. 그것이 삶의 뿌리 깊은 근원적인 이유라는 것을.....
문득 어디론가 떠나고 싶어질 때 과감히 산티아고의 길로 떠난 저자는 50여일의 일정속에 느끼고 깨달았던 삶의 궤적들을 고스란히 이 책 한권에 쏟아놓았다. 지금 하지 않으면 평생 하지 못할 두려움에 시작된 이 여정은 인생의 무게만한 배낭을 짊어지고 순례자의 길에 오르면서 시작된다. 저자는 피레네 산중에서 길을 잃고 눈보라를 맞으면서도 멈추지 않은 채 절대 고독속을 걸으며 살아 있음의 경이로움을 느끼며, 동틀 무렵 페르돈 고개 위의 철동상 순례자들을 찍기 위해 극한의 어둠을 보내고 온몸이 얼어붙어 여명을 맞이하며 드디어 순례자들의 모습을 찍게 되었을 때 발견하게 순례자들의 모습속에서 아픔과 고통 그리고 번민과 고뇌의 모습에서 우리네 삶의 모습을 순례자들의 얼굴에서 발견해낸다. 아픔으로 일그러진 얼굴은 다름아닌 바로 우리들 삶의 본모습이었기에..
나 역시도 무조건 걷는 것을 좋아한다. 산이던 들이던 걸으면서 느껴지는 자연과의 속삭임의 순간들이 너무 좋다. 그러다가 가슴이 두근거릴 정도로 숨이 차오를 때면 알수 없는 성취감에 빠져 가슴 그득해지는 순간이 올때가 가장 행복할 때이다. 가끔은 걷는 행위가 삶에서 발견하는 무수한 의미들을 동반하여주기도 한다는 것을 깨달을 때도 있다. 산티아고 900킬로미터를 저자와 함께하면서 그 느낌들이 오롯이 느껴지는 기분이 들었다. 묘지를 걸을 때, 죽음이 주는 삶의 의미들, 눈보라 치는 피레네산맥을 걸으며, 가장 안전하다고 생각했을 때 엄습하는 위험들, 템플기사단의 역사가 살아숨쉬는 곳, 아베르게에서도 저자는 눈으로 보는 것과 긴밀하게 삶을 연결하여 가는 길마다 지혜의 자양분을 뿌려놓았다.
자기만의 페이스를 유지한다는 것은 인생 레이스에서 가장 중요한 덕목이다.
레이스 제1원칙은 “자기 페이스를 잃지 말라”
레이스 제2원칙은 “구간기록을 체크하라”
레이스 제3원칙은 “이미 지난 레이스에 집착하지 말라”
레이스 제4원칙은 “길가의 시선을 의식하지 말라”
레이스 제5원칙은 “가장 소중한 것을 위해 레이스를 펼치라”
레이스 제6원칙은 “상대를 보지 말고 목표를 보고 나아가라”
레이스 제7원칙은 “포기하지 말고 끝까지 달려라”
저자는 산티아고 가는 길이 인생 레이스와 닮았다고 한다. 나는 이 레이스의 원칙을 기억하고 싶어졌다. 많은 순간 멈추고 싶은 순간들이 시시때때로 찾아온다. 무엇이든지... 도망치고 싶을 때도 있고 벗어나고 싶은 유혹도 있고, 때론 그렇게 흔들리지만, 그 흔들림이 삶을 송두리째 흔들어놓는 것이 아니라 풀잎이 바람에 흔들리면서 균형을 잡아가듯이, 바람을 사랑하는 풀의 흔들림처럼 살아가고 싶다.
삶을 썩게 만드는 것은 아픔이나 시련이 아니라
성공의 이력과 주변의 찬사다.
그것을 흘려버릴 수 있어야 진정한 삶의 고수다.-62p
허허로움이 가득한 가을날 만난『마지막 한 걸음은 혼자서 가야 한다』 는 가슴을 가득 채우고도 긴 여운이 남아 몇 자 끄적거려 놓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