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점과 선
마쓰모토 세이초 지음, 김경남 옮김 / 모비딕 / 2012년 10월
평점 :
품절
『점과 선』을 빼고 세이초와 일본 미스터리를 말하는 것은 난센스다.
사회파 미스터리는 쉽게 말해 ‘사회 구조’를 테마로 삼아서 거기서 비롯된 사건을 소설화 한 것으로 사회의 비리와 모순을 고발하는 소설이다. 주로 트릭과 반전 위주의 추리소설장르에서 더 나아가 보통 사람들이 일상적으로 범죄를 일으키는 배경이 되는 사회의 구조적인 문제를 다룬다. 현대 사회는 사이코패스와 같은 범죄인만 있는 것이 아니라 지극히 일반적고도 평범한 사람들이 범죄를 일으키게 되는 사회이다. 사회파 미스터리의 가장 특징은 현대인들의 일상을 지배하는 권력이나 음모에 휘말리게 되는 지극히 평범한 우리 주변에서 쉽게 찾아볼 수 있는 이들의 이야기를 그리고 있다. 이는 다른 추리소설과는 달리 범죄를 저지르는 배경에 주목하게 되며 사회 전체를 덮고 있는 모순이 존재함을 알게 해주는 것이다.
사야마와 오토키는 떨어져 있는 두 개의 점이었습니다. 그런데 그들이 거의 끌어안고 있는 것을 보고, 저희는 잘못된 선을 그어서 둘을 묶은 겁니다.
초등학교 시험지에는 점과 선을 연결하는 문제가 많이 나온다. 우리는 어렸을 때부터 이런 사고에 익숙해져 있다. 같은 것과 묶는 것, 또는 다른 것과 묶는 것만을 배우는 것이다. 그러나, 우리가 살아가는 사회는 그보다 더욱 복잡하게 되어있다. 그 복잡함을 이해할 수 있는 것은 각자 자신이 상상하기에 달려있다.
기차가 교차하는 것은 시간적으로 필연이지만, 타고 있는 사람들이 공간적으로 교차하는 것은 결코 우연이다. 나는 지금 이 순간 여러 고장에서 펼쳐지는 스쳐 지나가는 인생을 한없이 공상할 수 있다. 타인의 상상력이 만든 소설보다도 자신의 공상이 훨씬 흥미롭다. 꿈이 떠다니는 고독한 즐거움이다.
여자와 남자가 밀월여행을 떠났고 둘의 곁에는 청산가리를 탄 오렌지쥬스병이 뒹굴고 있다.
한 여자와 남자가 서로 끌어안은 채 죽어있다. 이것은 두 개의 점이다.
이 두 개의 점으로 연결할 수 있는 선은 ‘동반자살’이라는 선이다. 그러나, 이것은 오답이다.
신원확인을 위해 남자의 몸을 수색하던 형사가 발견한 기차안에서 일인식사 영수증은 노련한 도라카이 주타로 형사의 예민한 촉을 발동케 한다. 죽은 두 남녀의 밝혀진 신원은 고급 요정에 다니던 접대부 오토키라는 여자와 밀월여행을 떠난 ○○과의 과장 대리 사야마이다. 사야마는 회사 비리에 연루되어 있어 압박을 받고 있던 중이라 비관자살할 가능성이 농후하였다. 그런 사야마와 동반자살하기 위해 떠난 기차안에서 사야마 혼자 밥을 먹었다는 것이 아무래도 이상했던 것이다. 더군다나 둘이 떠나기 직전의 모습을 기차역에서 목격한 목격자도 있다. 목격자는 같은 요정에서 일하는 두 접대부와 야스다. 여기서 또 한가지 의문점이 생긴다. 기차역은 기차선로가 네 개이기 때문에 기차가 교차하지 않는 상대편의 역을 바라볼 수 있는 시간은 단 4분이라는 기가막힌 타이밍이 있어야 목격할 수 있다. 도라카이형사는 야스다가 고의적으로 두 접대부를 기차역에 데려갔고 오토키를 처음 발견하여 목격케 한 사람도 야스다라는 사실을 알아내고는 사건 당일 야스다의 알리바이에 집중하기 시작한다. 그러나, 야스다의 알리바이는 완벽했다. 왜냐하면 처음부터 잘못된 점과 잘못 연결된 선이었으니까.......
우리가 잘 인지하지 못하고 있는 사회의 내면에는 자본주의 판 피라미드구조가 자리하고 있다. 이런 구조의 먹이사슬에서 가장 손쉬운 먹잇감은 가장 아래에 있는 하층민들이다. 점과 선은 우리가 볼 수 있는 표면적인 부분을 상징하지만, 그 이면을 들여다보면 가장 윗층을 차지하고 있는 이들의 음모가 도사리고 있다. 사회파 미스터리는 이런 이면의 사회의 배경과 모순을 면밀하게 보여주고 있는 것이다. 소설 속에 등장하는 또 다른 주인공 야스다의 아내 료코가 자신만의 세계에 갇혀 살며 지적이고 우아한 이미지의 여성임에도 이런 여인조차도 사회는 범죄에 휘말리게 하는 것이다. 범죄를 일으키는 배경은 따로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우리의 일상에서 얼마든지 일어날 수 있다는 것을 시사한다. 또한 료코의 ‘타인의 상상력이 만든 소설보다도 자신의 공상이 휠씬 흥미롭다’ 는 말을 통해 자신의 공상(상상력)이 존재해야만 올바른 답으로 연결해줄 수 있는 것을 말하는 것이다. 보이는 부분을 바라보는 것이 아닌 자신의 공상을 곁들여 사회의 이면을 바라보라는 작가의 충고처럼 느껴진다. 보이는 것과 사회의 이면을 이해한다는 것 사이에는 많은 간극들이 존재한다. 『점과선』은 1957년 작품이다. 참 놀라운 것은 그 시대의 구조적 문제와 모순이 낯설지 않다는 것이다. 좀 고전적이고 낡은 느낌일 것 같은, 기계로 치면 구닥다리나 다름없는 골동품 냄새를 풍길 것 같은 이 소설이 말해주고 있는 사회적 배경이 지금과 별반 차이가 없다. 강한 자만이 살아남는 세상. 여전히 건재하지 않은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