욕망이라는 이름의 전차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161
테네시 윌리암스 지음, 김소임 옮김 / 민음사 / 2007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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욕망이라는 이름의 전차를 타고 가다가 묘지라는 전차로 갈아타서 여섯 블록이 지난 다음, 극락이라는 곳에서 내리라고 하더군요.

 

몸과 마음이 곤하여 잠깐 머리를 식히고 싶은 마음에 집어 든 책이 《욕망이라는 이름의 전차》이다. 책을 펼치자마자 그 자리에 앉아 꼼짝하지 못한 채 읽을 수 있을 정도로 몰입과 구성이 빼어난 작품이다. 마치 한편의 연극을 보는 기분이었으며, 주인공 블랑시에게서 알 수 없는 동정심과 아픔이 느껴진다.

 

주인공 블랑시가 욕망이라는 이름의 전차를 타게 된 이유는 동생 스텔라를 보러 가기 위해서이다. 여름 휴가를 동생의 집에서 보내고 싶어 욕망의 전차를 타고 극락에 내리지만, 이름처럼 극락은 아니다. 그러나, 욕망이란 전차와 묘지라는 이름, 극락이라는 동생이 있는 그곳은 바로 현실을 말하는 곳이었다. 블랑시를 현실로 되돌려놓아 결국 파멸하고마는 블랑시의 삶을 대변하고 있는 전차의 이름이다. 영어교사인 블랑시는 동생 스텔라 앞에서 무척 교양있으며 우아한 모습을 잃지 않지만, 사실 블랑시는 학교에서 열일곱의 제자와 불륜을 저질러 학교에서 짤렸다. 동생에게는 휴가를 가장하며 현실에 안주하고 있는 스텔라에게 현실에 안주해서는 안된다고 충고도 하며 똑똑한 언니의 모습을 가장한다. 동생의 남편 스탠리에게도 무례함을 꾸짖고 교양을 강조하지만 아이러니하게도 그런 스탠리에 의해 블랑시의 정체가 폭로된다. 블랑시의 여행가방에 가득한 거리의 여자들이 입을 법한  천박한 드레스와  다이아몬드 왕관을 흉내낸 모조 다이아몬드 왕관이 말해주는 블랑시의 과거는 충분히 짐작할만 하기에 스탠리는 블랑시의 거짓된 모습을 깨뜨리고 싶어한다. 그런 둘의 대립은 여러가지 의미를 보여주고 있다. 서서히 가면이 벗겨지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블랑시는 거짓말을 계속한다. 부유하고 교양있고 처녀처럼 순진한 모습의 여자라는 상상을 가지고 자신을 만들어가는 것이 블랑시의 삶에서  할 수 있는 유일한 탈출구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순진하고 아름다운 처녀로서  블랑시를 사랑한 남자 미치의 존재는 이런 블랑시에게 극락을 선사해준다.  늙은 노모를 모시고 사는 순수한 청년 미치.....그러나, 블랑시의 과거를 이해하기에 미치는 너무도 작은 남자였다.

 

 

아름다운 꿈이란 뜻을 가지고 있는 '벨 리브'라는 농장을 유산으로 가지고 있었던 블랑시는  열 여섯에 사랑에 빠져 결혼하지만, 어린 남편이 변태성욕자인 줄 알면서도 사랑을 포기하지 않는다. 시를 쓰고 낭만을 꿈꾸며 장래가 촉망되던 예술가였던  남편의 자살과 잇단 가족들의 죽음, 그리고 잃어버린 농장 벨 리브(아름다운 꿈)은 이름처럼 블랑시의 인생에서 아름다움을 거두어간다.

 

  “난 언제나 낯선 사람의 친절에 의지해 왔어요.”

 

이후 블랑시는 욕망에 몸을 맡기며 살아가게 된다. 모든 것을 잃어버린 그녀에게는 기댈 무언가가 필요했으며 그것은 낯선 사람의 친절이었던 것이다. 마지막으로 욕망이라는 이름의 전차에 올라 만나게 된 미치는 극락과도 같은 희망을 잠시 꿈꾸게 하지만 미치에게 과거가 알려지면서 버림받게 된 블랑시는 극심한 정신혼란에 빠지게 된다. 블랑시가 끝없이 불러대는 노래가사 " 당신이 나를 믿어주신다면 그건 가짜가 아니랍니다."처럼 블랑시는 거짓을 말하지만 결코 거짓이 아니었음을 자신이 진실이어야만 한다고 믿고 있는 것을 블랑시는 그렇게 해서라도 현실을 견디고 싶었던 것일까. 이렇게 블랑시는 끊임없이 현실을 거부하며 상상속의 자신을 만들어가며 현실과 환상의 경계를 구분하지 못하게 된다. 블랑시와 늘 대립되어 싸우는 스탠리는 호전적이며 성적우월감을 가지고 있으며, 지나친 현실주의자이며 육체적으로 강인한 면모를 가지고 있다. 스탠리는 끊임없이 블랑시와 대립하지만, 정신이 온전치 못한 블랑시를 겁탈하는 것으로 블랑시는 극락이라는 곳에서 하차하는 것으로 극은 끝난다.

 

벨 리브가 내 손에서 빠져나가기 시작하면서 지난 이 년동안 난 그리 바르게 살지 못했어.

전혀 강하거나 자립적이지 못했어. 사람이 여리면,여린 사람들은 희미한 빛을 발하거나 반짝거려야 해.나비 날개는 부드러운 색을 띄어야만 하고 불빛 위에 종이 갓을 씌어야만 해.... 여린 것만으로는 충분치 않거든. 여리면서도 매력적이어야 해. 그리고 나는, 나는 이제 시들어 가고 있어! 얼마나 더 눈속임을 할 수 있을지 모르겠다.

 

보바리 부인이 현실을 거부하며 늘 환상속의 사랑을 갈구하는 것처럼, 블랑시 역시 모든 것이 사라지더라도 환상속의 사랑을 포기하지 않는 모습은 너무 애처롭다. 그것이 남이 보았을 때 욕망으로 보여질지 모르지만, 그래도 블랑시에게는 사랑이었다고 생각하고 싶다. 이 책은 여러가지의 상징으로 읽혀질 수 있으며 삶의 무수한 의미를 담은 작품이지만  나는 이 책이 남자의 성과 여자의 성에 대해 무척  솔직하면서  극명한 차이를 잘 보여주는 작품이라는 생각이 든다. 블랑시가 정신병원에 끌려가는 모습을 보며 성적으로 여자는 사회적 약자일 수 밖에 없는 것일까하는 안타깝고도 아픈 우리 현실의 초상을 보는 기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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