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복의 정치학 - 21세기를 위한 선언
안토니오 네그리 지음, 최창석.김낙근 옮김 / 인간사랑 / 2012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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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민주주의는 어디까지 왔나>를 읽으면서 우리나라의 정치에 한편으로는 비관을 한편으로는 희망이라는 동전의 양면처럼 극과극의 미래를 떠올리곤 한다. 세상의 모든 일이 양면성을 띠고 있지만 , 정치는 이렇게 늘 극과극의 개념으로 분리되어져 있는 듯하다. 한 순간의 선택이 비관과 희망을 가져올수 있기 때문이다.  물과 기름을  혼합한 뒤  유리병에 담아두고 있다가  아무리 흔들어도 서로 합일점을 찾아내지 못한 채  이내 분리되고 마는 희망과 비관의 이름인 정치.  특히 대선을 앞둔 작금의 정치판은 살얼음을 걷고 있는 기분이다. <한국 민주주의는 어디까지 왔나>의 공저자들은 21세기를 탈근대의 시기로 전세계적으로 탈물질주의를 지향하는 움직임이 태동하고 있음을 말하였다. 이런 탈물질주의는  탈권위주의적이며 부당한 권위에 도전하고 수평적이 창의적인 '문화운동'이다. 이것과 비슷한 맥락으로 보여지는 21세기의 새로운 주체에 대해서 정치학자 안토니오 네그리의 이야기를 들을 수 있다.

 

탈물질주의는 고도의 산업화를 경험한 서구의 선진 민주국가에서 물질적 가치보다는 인권, 자유,자아실현,환경,생태,삶의 질 등 탈물질적 가치를 추구하는 고학력,중산층, 젊은 세대 성향이 지니는 핵심 사상을 일컫는다.  

 

《전복의 정치학》의 저자 안토니오 네그리는 프랑스로 망명한 뒤 목격한 1986년 파리 학생투쟁을 보며 이제 '대중노동자'의 시대에서  무형적이고 협력적인 '사회적 노동자'의 시대로 변화되었음을 깨달았다고 한다. 여기서 네그리는 신자유주의의 한계인 지배계층의 빈곤화 전략이 조작된 것으로 빈곤으로 사회노동자 계층을 위협하고 있다고 한다. 새롭게 등장한  사회적노동자들의 연대와 통합을 저지하기 위해 21세기에 가장 중요한 '자본의 정보화'를 막기 위해 지배계급들이 비밀주의로 전환하게 되었으며,이에 국가는 점점  비밀주의를 기반으로 한 핵국가의 성향을 띄게 된다는 것이 네그리의 주장이다.

 

 이렇게 해서 <전복의 정치학>에서 네그리는 사회적 노동과 의사 소통적인 지성과 관련된 특수한 주체성을 가지고 있을 때, 비로서 전복의 힘을 일으킬 수 있다고 한다. 바로 모든 것을 뒤집을 수 있는 힘을 말한다.이러한 전복은 현존하는 모든 구조에 대한 전복이라기보다는 직,간접적인 착취를 목표로 하는 모든 것들에 대한 전복이다. 그러므로, 자본주의 사회의 국민들은 이미 지배계급과 피지배계급으로 나누어져 착취를 당하고 있음을 명징하게 깨달아야 한다.  전복은 착취에 내재하는 폭력을 파괴하는 것이고, 사회를 통해 분간할 수 없고 심각하며 잔혹하게 퍼져 있는 폭력을 파괴하는 것이다. 즉 전복은 노동력과 노동하는 주체가 지적이고 사회적이 될수록 착취에 내재하는 폭력은 더 지적이고 사회적인 특징을 얻게 된다.이것이 바로 사회적 노동자를 뜻한다.

 

"인간은 전투에서 싸우고 패배한다. 그들이 싸워서 얻고자 하는 것들은 그들의 패배에도 불구하고 생겨난다. 그것이 그들이 의미하는 바가 아니라고 밝혀졌을 때, 다른 사람들이 다른 이름을 걸고 본래 그들이 뜻하던 바를 위해 싸울 것이다."-윌리엄 모리스

 

결론적으로  네그리는 현 사회의 가장 큰 문제점은 사회 양극화와 소통의 단절을 꼽았다. 위에도 말했듯이 사회의 양극화는 지배층의 전략에 의한 것으로 보았고  새로운 주체들의 소통 단절을 위해 점점 국가는 비밀주의로 고수하게 되었다는 것이다. 여기서 한가지 의아한 것은 페이스북, 블로그, SNS 등 소통의 채널들은 다양해지고 있으며 기계의 최첨단화, 디지털화, 모든 것이 대중화 되며 소통할 수 있는 길이 무궁무진함에도 소통 단절의 시대라고 부르짖는 이유는 무엇인가에 대한 물음일 것이다. 이것은 바로 참된 소통은 매체의 다양화나 접근성에 기인하지 않는다는 것을 말하는 것이다. 또한  네그리는 21세기의 새로운 주체자인 "사회적 노동자 또는  다중" 이 소통을 원할하게 할 때야  우리 사회는 진정한 민주주의의 실현을 가져올 것임을 암시하고 있음을 알게 된다. 비밀주의로 무장한 핵국가의 출현은 반대로 잠재된 사회권력이라는 힘을 표출할 수 있음을 역설하고 있는 것이다. 우리에게 희망이 있다면 바로 사회권력이며  늘 동전의 양면처럼 희망과 따라다니는 비관의 이름은 소통의 단절로 축약할 수 있다. 


☆내 이해가 맞을 지 모르지만, 나는 네그리가 말하는 사회적 노동자와 다중, 그리고 탈물질주의를 모두 '새로운 주체'로 이해했다. 그리고 이런 새로운 주체란 결국은 사회권력이라는 희망으로 이해했다. 그 점에서  이 시대를 바꿀 마지막 희망이 있다면, 시민이 주권을 갖는 사회권력이라는 것을 다시금 확인시켜주는 책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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