따뜻함을 드세요
오가와 이토 지음, 권남희 옮김 / 북폴리오 / 2012년 8월
평점 :
절판


가을 타나봐요. 요즘 자꾸 눈물이 나요. 제 옆지기는 노환이라고 늙어서 그런거라고 하네요.  바람이 차가워져서 그런지 옷 사이  스며드는 바람에게도 울컥거려요. 밥벌이에 지쳐 늘 늦게 들어오는 옆지기의 헬쓱한 얼굴에 안쓰러움이 밀려오고 자신의 뜻대로 안된다고 떼쓰는 딸아이마저도 절 서글프게 하네요.게다가  가을을 노래하는 시들은 모두 왜그렇게 다 슬픈지... 가을은 고독한 계절이 맞나봅니다. 이 책 《따뜻함을 드세요》는 마치 어른을 위한 동화처럼 이쁜 책입니다. 그런데 이 이쁜 책을 읽으면서도 눈물이 나다니... 아마도 우리네 사는 생生이 모두 그렇게 슬픔속에서 애틋해지기 때문이 아닌가 합니다.

 

 

 <할머니의 빙수>는 세 모녀가 아버지가 없는 상황에서 치매걸린 할머니를 돌봐주는 이야기입니다. 치매걸린 할머니와 어머니 그리고 어린 마유. 가장이 없는 가정의 삶은 무언가 한가지가 빠진 허전함이 있습니다. 어머니가 생계를 꾸려가고 있지만, 삶은 그렇게 녹록치가 않죠. 어느 날, 회사에서 쓰러진 엄마를 보며 마유는 가슴을 쓸어내립니다. 고아가 되는 줄 알고요. 할머니가 이상해지자 요양원에 할머니를 보내고 맛있는 도시락을 싸가지만 어린아이로 돌아간 할머니는 굳게 입을 다물어요, 아무것도 먹지 않는 할머니때문에 엄마는 속상하답니다. 할머니는 어찌 된게 계속해서 '후'라는 말만 하죠. 옆에서 보던 마유는 어린아이의 시선으로 할머니가 원하는 것을 알아내죠. 엄마, 아빠, 마유, 할머니 온가족이 빙수를 먹으러 갔을 때 할머니가 '꼭 후지산 같다' 라고 했던 말을 떠올리고는  마유는 홀로 먼거리의 빙수가게를 찾아가요. 마유는 빙수를 사러 간 사이 할머니가 죽을 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눈물을 흘리며 외치죠 . "할머니가 이제 곧 돌아가실 것 같아요.마지막으로.." 전 그 외침 속에 마유의 모든 간절함이 담겨 있다고 생각했어요. 아빠가 다른 여자와 살림을 차린 후 엄마와 할머니, 그리고 마유 셋이 사는 그 모습을 보며 할머니는 어쩌면 마음이 많이 아팠겠죠 .아마도 가족이 모두 모여살았던 그 시절의 그리움일지도 모르겠습니다. 

 

암에 걸린 엄마가 죽기 전 딸에게 된장국 끓이는 법을 가르쳐 준 이유는 아빠를 위해서 였답니다. 자신이 죽고 나면 홀로 남은 남편과 딸을 위해 엄마는 많은 것을 준비해야 했죠. 어머니는 어린 딸에게 가장 먼저 된장국 끓이는 법을 가르쳐줘요. 그러면서 유언처럼 "매일 아침 아빠에게 된장국을 끓여주라" 고 합니다. 그런데 이제 그 딸이 장성해서 내일이면 아빠를 떠난답니다. 마지막으로 된장국을 끓이는 딸의 마음은 복잡하기만 합니다. 어렸을 때부터 악착같이 음식을 가르쳐준 어머니덕에 일찍 살림을 배워 아빠의 뒷바라지를 해 왔으니 하늘나라에서 엄마도 아마 마음이 뿌듯했을 거예요. 하지만, 아빠만 남겨두고 떠나려하니 더 애잔해지죠.  된장국은 이들에게는 엄마이자, 아빠이자, 가족의 역사였으니까요. <코짱의 된장국>은 부정父情이라는 날실과  모정母情이라는 씨실이  직조되면서 가족이라는 아름다운 이름을 탄생시켜가는 과정을 무척 애잔하게 그리고 있어요. 그리고 그 가운데에  된장국이 이들 가족들의 사랑을 더욱 끈끈히 이어주고 있답니다.

 

"엄마는 코하루 속에 살아 있어. 전혀 외롭지 않다고 하면 거짓말이겠지만 이 된장국 속에도 엄마가 있는 걸."

 

 

책에는 일곱가지 사연과 일곱가지 음식이 나와요. 모두 아름다운 사연들과 가슴 따뜻해지는 이야기들이지만 저는 <그리운 파트콜로릿>을 제일 가슴 아프게 읽었어요. 쇼조라는 치매걸린 노인이 남편이 죽은지도 모르고 정신이 나가서 남편과 생전에 함께 한 추억의 장소를 찾아가죠. 옆에 남편이 있다고 생각하면서요. 남들의 이상한 시선에도 아랑곳 하지 않고 끊임없이 대화를 하죠. 남편이라는 투명인간과...전 쇼조의 마음을 이해할 수 있을 것 같아요. 남편에게 늘어가는 흰머리처럼, 늘어가는 주름살이  , 우리가  점점 죽음과 가까워지고 있다는 것을 말해주지만, 남편의 빈자리는 상상조차 한 적이 없답니다.  남편은 가끔 그런 소리를 잘해요. "내가 없으면, 이런 것도 할 줄 알아야돼." 하는 말이요. 이 말처럼 남편없으면 할 줄 아는게 전혀 없는 저로서는 남편의 빈자리는 상상이 안돼요. 그래서  쇼조가 받아들이지 않는 현실과  옆에 항상 존재해주는 남편을 상상하는 그 모습이 슬프게도 느껴지지만, 왠지 그 마음을 이해할 수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책이 참 이쁩니다. 아름답고, 우리네 삶이 언제나 햇살 가득한 삶이면 좋겠지만, 이렇게 바람이 부는 날도 있고, 아픔도 있고,상실하며 살아가는 것이 우리의 날 것 그대로의 생生의 모습이 아닐까 합니다. 그래서 이 작가가 보여주는 소설속의 삶이 더 애틋하게 다가옵니다. 따뜻한 음식을 먹고 난 후 얼었던 마음이 녹아내리는 것처럼 , 책을 다 읽고 나면 가슴속에 온기가 가득 차오르는 기분이 드는 소설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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