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로스 & 토르소
크레이그 맥도널드 지음, 황규영 옮김 / 북폴리오 / 2012년 8월
평점 :
품절


《토로스&토르소》는 범죄소설이다. 『살인의 해석』『죽음본능』으로 유명한 제드 러벤펠드와 비견될 정도로 상상과 허구를 넘나드는 치밀하고도 정교한 미스터리 팩션물이다. 처음에 제목이 참 독특하다는 생각을 했다. 그리스 신전같은 건축 양식을 토로스라고 하고  토르소는 팔 다리나 목이 없는 몸통의 조각,즉 흉상들을 토르소라고 한다. 그럼 이제 제목에서 연상되는 그림이 좀 그려진다. 토르소로 가득한 신전?이라는 뜻 일까? 범죄소설 치고는 제목이 너무 미학적이지 않나..흠

 

살인을 미학적으로 경험할 수 있다면, 살인자는 예술가라 할 수 있을 것이다. 창조를 하는 대신 파괴를 반복하는 반 예술가적인 퍼포먼스를 하는 행위예술가 말이다. - 조엘 블랙

 

그렇다. 이 책은 미학적이다. 초현실주의 작품세계를 그리고 있다. 어떻게? 살인을 예술로 바라본 것이다. 초현실주의는 프로이트의 무의식의 세계를 표현하는 20세기의 문학예술사조를 말한다. 쉽게 말하면 현실과 상상의 세계를 넘나드는 표현이라고 할까. 가장 대표적인 작가는 르네 마그리트와 살마도르 달리가 있다.아마도 한번쯤은 르네 마그리트와 살바도르 달리의 특유의 '이상함'을 느껴본 적이 있을 것이다. 

 

<기억의 집> 살바도르 달리

 

초현실주의자들의 미학이론에 영감을 받아 일어난 살인 사건들, 시체의 뱃속의 장기를 모두 드러낸 후 장미다발을 꽂아놓는다든지, 머리는 잘린채 기계로 몸통을 가득채운 시체가 발견되는 엽기적인 살인행태들이 벌어진다. 그러나 , 이 사건은 소설속의 살인사건이 아닌  실제 일어난 사건이다.  작가 크레이그 맥도널드는 실제 일어난 사건을 바탕으로 이 소설을 집필했다고 한다. 기괴하게 잘리고 해부된 엘리자베스 쇼트의 몸이 캘리포니아 들판에서 발견된 사건을 '블랙 달리아'라고 하는데 이 사건을 바탕으로 세계대전 전후 스페인 내전까지 근 삼십년동안 초현실주의의 미학이론과 더불어 정신분석학, 로맨스가 멋지게 펼쳐진다.  마치 대하드라마처럼 ^^

 

주인공 헥터가 키웨스트라는 섬에 갔을 때, 우연히 만난 한 여자 레이첼과 사랑에 빠진다. 마침 키웨스트에 불어오는 폭풍에 대비하여 둘은 헥터의 집에 묵기로 하는데 첫날밤의 낭만을 뒤로한 채 다음 날 섬에는 살해당한 시체들이 떠오르는데 하나같이 기괴한 형상을 하고 있다. 몸속의 장기들을 모두 드러내고 그 안에 기계들로 가득채운 것이다. 헥터가 잠시 자리를 비운 사이 사라진 레이첼, 다시 떠오른 머리없는 여인의 시체. 모든 증거는 그 시체가 레이첼이라는 것을 말해주고 있었다.

 

 

시간이 흘러도 레이첼을 잊을 수가 없었던 헥터앞에 나타난 또 한 여자 알바. 레이첼과 무척 닮아 있는 알바는 화가이다. 우연히 그녀가 그린 그림을 미술관에서 보게 된 헥터는 놀라운 사실을 발견하게 되는데 그림속의 주인공은 다름아닌 키웨스트에서의 헥터와 레이첼이었다. 그러나 알바는 반파시스트라는 혐의로 스페인 광장에서 총살당하고.... 헥터는 또 혼자 남는다.

 

소설속에 등장하는 초현실주의 그림의  미노타우루스는 헥터를 상징한다. 헥터주변을 맴도는 레이첼과 투우사의 사랑이라고 할까. " 투우에서는 케렌시아라는 용어가 있지. 헤밍웨이가 말하길 케렌시아는 투우장 안에서 황소가 편안함을 느끼는 장소라더군. 자꾸만 그 지점으로 돌아와 결국은 죽는다는 거야. 내가 당신의 케렌시아일지도 모르겠군."

 

최근에 읽은 범죄소설 중에 가장 스펙타클한 것 같다. 주인공이 범죄소설가로 등장해서 그런지, 추리하는 과정과 한마디씩 던지는 말들은 무척 매력적이다. 전쟁속에서 지난한 삶을 이어가는 사람들의 생활상과 30년이라는 기간동안 전개되는 사건들의 진실. 초현실주의파들이 추구하는 미적욕망이 변질되어 현실과 상상의 세계의 경계선이 허물어지듯 소설 또한 어디서부터가 사실인지 구분이 모호해진다. 칼 융에게 정신상담을 받고 헤밍웨이의 유명한 여성편력과 부인 마사에 대한 실명조차 헷갈리게 하는데 아마도 이 소설 역시 초현실주의 소설이라고 칭해야 할 것 같다 .^^  어렸을 적 받은 성적학대와 폭행의 충격으로 인해 스스로를 둘로 찢어버린 정신적 결함을 가지고 있는 범인의  정체를 알게 된 순간 가해자가 아닌  피해자로서의 동정이 가기도 한다. 범죄추리소설가  제드 러벤펠드와 쌍벽을 이루는 멋진 작가라는 생각이 ...든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32)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