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드보일드는 나의 힘 - 잔혹한 세상에서 살아남기 김봉석의 하드보일드 소설 탐험 1
김봉석 지음 / 예담 / 2012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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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사회를 보면 맥 빠진다. 풍선 가득 희망을 불어 넣고 싶어도, 다시 풍선 바람 빠지듯이 빠져버린다. 토막살인, 성폭행, 연쇄살인에 대한 사건들이 신문 사회면을 가득 채운다. 언제부터 세상이 이토록 무서워졌을까? 라는 생각을 한다면 당신은 아직 순진한 것이다. 세상은 원래 무서운 곳이라는 거. 우리만 몰랐을 뿐이다.

 

자, 그럼 당신의 순진함을 마구마구 깨어주는 책을 소개한다.『하드보일드는 나의 힘』은 영화평론가이자 대중문화평론가 김봉석의 하드보일드 소설 서평집이다. 이 책은 2011년 1월부터 최근까지 인터넷 서점 웹진에 연재한 칼럼을 모은 것으로, 정통 하드보일드와 스릴러, 엔터테인먼트 소설에서 사회파 미스터리까지 우리 사회의 모순과 인간 심연을 꿰뚫는 당대의 문제적 소설들을 다루고 있다. (여기까지는 책소개다.^^)

이쯤에서 하드보일드 소설은 어떤 장르를 지칭하는 것인지 정확히 짚고 넘어가자.

하드보일드는 1930년 전후하여 미국 문학에 등장한 새로운 사실주의 수법을 지칭하는 말로 쓰였다. 영미 문학에서는 수식을 일절 배제하고 묘사로 일관하는 어니스트 헤밍웨이 식의 ‘비정한 문체’를 칭하기도 한다. 여기서 비정함이란 캐릭터나 사건이 비정한 것이 아니라 작가의 표현이 건조하고 냉정하다는 뜻이다. 하드보일드는 세계에 대한 절망에서 출발한 장르이다. 인간에 대한 불신과 미래에 대한 절망, 결국은 그런 회의와 절망이 하드보일드를 낳았다.

 

 

개인적으로 장르 문학 중에 유독 하드보일드 장르는 피해가며 읽은 듯하다. 책에 실린 32편중에 내가 읽은 책이 다섯 손가락에 꼽힌다. 하지만, 이 책을 읽고 나니 읽고 싶은 책이 너무 많다. 장르 문학이 가지고 있는 특성을 너무도 잘 이해하기 쉽게 설명해주기 때문이다. 어떤 면에서는 기존에 장르 문학을 읽지 않은 이유가 장르문학에 대한 무지 때문이 아니었나 싶을 정도로 하드보일드가 가지고 있는 특성 - 비정한 현실을 직시할 수 있고, 세상의 폭력에 맞서 싸울 수 있는 방법-에 대한 가장 적확한 방법을 제시해주고 있는 책이다.

 

그런 하드보일드한 세상에서 살아남기 첫번째 장은 우선 비정한 세계를 바라볼 줄 알아야 한다. 요시다 슈이치의 《악인》이라든지, 미나토 가나에의《고백》, 톰 롭 스미스의 《차일드 44》, 다카노 카즈아키《제노사이드》등을 통해 세상이 얼마나 비정한지를 배우게 된다.

 

★유아가 죽었을 때 1차 용의자는 부모이고, 배우자가 죽었을 때 1차 용의자가 남편과 아내인 것은 한국도 마찬가지다.

★세계는 악의로 가득 차 있다.

 

2장은 살아남는 법에 대한 강의다. 느끼고 배우고 행동하는 장으로 데니스 루헤인의《비를 바라는 기도》, 로렌스 블록의《무덤으로 향하다》,누쿠이 도쿠로《후회와 진실의 빛》등을 통해 이렇게 참혹한 세상을 어떻게 살아가며 어떻게 살아남는가를 보여준다. 패배자들에게는 딱 두 가지의 선택만이 남는다. 한 가지는 그대로 고꾸라져 남을 탓하거나 스스로를 괴롭히며 사는 방법이 있고, 한 가지는 아무리 시간이 오래 걸리고 고통스러워도 한 걸음씩 나아가는 것이다. 2장에 등장하는 하드보일러들의 캐릭터는 이렇게 두 가지를 보여준다. 그리고 어떤 자가 되고 싶은 지, 선택은 책을 읽는 독자의 몫이다.

 

3장은 교육이 제대로 된 인간으로 만들어주지 않는다는 것을 직시하게 한다. 기시 유스케의 《악마의 교전》이나 마쓰모토 세이토의 《짐승의 길》, 대실 해밋의《붉은 수확》을 통해 학교의 교육이 인간을 만드는 전인교육 즉, 인간으로서 필요한 다양한 교양과 지식을 불어 넣어주는 장소가 아니라, 또 하나의 경쟁 사회로서 사이코패스가 길러지는 거대한 상황극을 통해 냉혹하고 비정한 사람을 길러내는 곳이 학교일지도 모른다는 것이다. 어째 좀 그럴싸하게 느껴진다. 요즘 학교에서 폭력에 관한 뉴스를 워낙 많이 접하다보니, 부모로서 참 걱정되는 부분이다.

 

3장까지 세상이 아름답지 않은 이유를 마구마구 깨우쳐 주었다면 4장에서는 이제까지 보고 배운 진실을 통해 살아남아야 하는 장이다. 그래서 하드보일드의 주인공들은 고독할 수 밖에 없다. 세계의 진짜 얼굴을 알았기 때문이다. 그래서 하드보일드의 주인공들은 홀로 고독을 감당해야 한다. 세계를 믿지 않고 타인을 믿지 않은 채  혼자, 그 길을 걸어가야 하는 것이다. 제프리 디버의 《본 콜렉터》의 여형사, 로버트 그레이스 《워치맨》의 주인공 엘비스 콜이, 리 차일드의 《추적자》잭 리처가 그렇다.

 

자신을 굳건하게 세우는 것, 자신이 선택한 것을 후회하지 않고, 책임을 다하는 것. 그것이 이 비정한 세상을 살아가는, 최고의 방법이다.

 

 

마지막으로 남는 것은 이제 즐기는 것이다. 결론은 고독도 즐기고, 고통도 즐기고 최고의 복수는 내가 잘 살아남는 것이다. 이렇게 즐기기 위해서는 고독과 친해져야 하고 생존하려면 강인함과 인내심을 가져야 하며 추락과 흔들림은 이겨내야 한다. 이사카 고타로의 《골든 슬럼버》, 미야베 미유키의 《이유》를 통해서 오로지 생존을 위한 살아남기를 볼 수 있다. 마지막 렌조 미키히토《조화의 꿀》에 대한 작가의 극찬이 있는데, 이 책은 꼭 읽어봐야겠다.

 

 

하드보일러 장르라서 인지, 비정한 이야기들이라 그런지(대체로 그런 이야기들은 집중이 잘되는 ^^;;)  첫 장을 펼치자마자 이렇게 몰입돼서 읽은 책은 드물다. 그리고 저자가 말해주는 영화이야기는 무척 재미있다. 영화를 볼때 아쉬웠던 부분이 영화가 뜻하는 깊은 뜻을 이해하지 못할 때이다. 책이야 이해가지 않으면 읽고 또 읽는 방법이 있지만, 영화는 감독이나 평론가들의 평을 읽어보지 않는 한 일반인들이 이해하는 데에 한계가 있다고 생각한다. 이 책은 내게 두 가지를 가르쳐 주었다. 하나는 서평집은 이렇게 써야하는구나 라는 것이고 또 하나는 영화를 읽는 방법이다. 좋은 책은 좋은 책을 연결해주듯이 이 책을 통해 또 다른 책을 알게 되어 기쁘다. 하드보일드를 통해 세상바라보기, 즐거운 모험을 한 기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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