괴담 : 두 번째 아이는 사라진다 문학동네 청소년 13
방미진 지음 / 문학동네 / 2012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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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등만 원하는 더러운 세상이라는 유행어는 친구들과 만나면 가끔 농담처럼 하는 말이기도 하다. 이상하게 이 유행어를 농담처럼 내뱉곤 하면 왠지 모를 열등감이 해소되는 카타르시스를 느낀다. 하루가 다르게 변화하는 현실에서 일등이 아니면 버텨나기 힘든 사회적 구조, 그리고 그런 구조가 낳은 병폐는 다름 아닌 2등이라는 열패감이다. 그리고 지독한 열패감은 질투와 시기를 부추기게 되는 것은 당연한 이치이다. 그런 지독한 열패감은 또 하나의 이야기를 낳는다.

 

 

 

"너 그 얘기 알아?“

이야기의 시작은 언제나 질문으로 시작한다. 대답을 기다리지 않는 질문이다. 그리고 다시 묻지 않아도 이야기는 이미 시작되었다. 지금 생각해보니 학교 다닐 때 유일한 낙이라 하면 아마도 삼삼오오 모여다니며 머리를 맞대고 소문이나 괴담을 말하는 것이었다. 유난히 여고시절 괴담이 많은 이유도 아마 늘 사방이 하얀 벽으로 갇혀져 공부만하는 지루한 일상에 유일한 감정해소의 방법이 아닌가 생각해본다. 그때에 괴담이 주는 카타르시스는 경쟁이라는 프레임 속에 있다는 사실도 잊게 해 주는 재미난 놀이와 같은 유희였다. 사춘기 시절, 우리는 늘 재잘거렸다. 참 이상한 건 그 괴담의 모토는 언제나 2등이 1등을 죽이고 1등이 되지만, 죽은 1등이 항상 2등의 어깨에 앉아 있다던지, 교실 어딘가에서 바라보고 있다는 단순한  이야기인데 그때는 그 괴담들이 이야기가 아닌 현실처럼 생생하게 느껴져 괴담을 들은 날은 화장실도 못갔던 것 같다.

 

"연못 위에서 형제가 사진을 찍으면 둘째가 사라진대.’

연못 위에서 일 등과 이 등이 사진을 찍으면 이 등이 사라진대.’

연못 위에서 첫 번째 아이와 두 번째 아이가 사진을 찍으면 두 번째 아이가 사라진대

 

괴담은 현실이 된다.

그럼 괴담은 왜 끊임없이 재생되는 걸까? 이유는 간단하다. 모두들 주인공이 되고 싶기 때문이다. 누구나 주목받고 싶고 남보다 뛰어나고 싶은 욕망이 있다. 소설 <괴담>에서는 성악을 하는 서인주의 죽음이후  학교에 떠도는 괴소문 "연못 위에서 1등과 2등이 사진을 찍으면 2등이 사라진다.“ 이 떠돈다. 이  괴담은 십대들의 불안한 심리와 경쟁 심리속에 절묘하게 파고들어 공포로 발아한다. 괴담의 시작 너 그 얘기 알아?“ 라고 말하는 순간, 이야기는 실체가 되어 학생들 사이에 다가가 실제와 실존이 된다. 절대음감을 가진 지연과 아름다운 외모를 가진 연두 , 존재감은 희미하지만 뛰어난 재능을 타고났던  인주. 고등학교 합창부인 이들은 서로를 경쟁하면서도 친한 친구라는 허울을 유지하고 있었다. 그러나  괴담은 이들의 사이에 끼어들게 되면서 1등이라는 욕망에 부채질을 하고,  절대음감을 타고 났고  남부러울 것 없이 유복하게 자란 지연과 성악의 재능보다 더 눈에 띄는 아름다운 외모의 연두, 그와 반대로 평범한 비쥬얼을 지니고 있지만, 뛰어난 재능의 인주. 인주의 그런 재능을 합창부의 경민 선생과 지연과 지연엄마가 알게 되면서 이야기는 현실이 된다.  성악을 하는 세 친구들- 지연,연두, 인주-와 또다른 세 친구- 치한, 보영, 미래-는 친구의 이름이 아니라 경쟁과 질투의 상대에 더 가깝다. 이들의 삼각형의 구도는 서로를 상호보완하며 견제하는 안정적인 구도다. 그러나, 인주가 통학로 옆 샛길 연못에서 시체로 떠오르게 되면서 삼각형의 안정적인 관계는 이지러지기 시작하고. 치한과 보영과 미래 역시 이지러지기 시작한다. 이렇게 이지러지기 시작한 틈새에   괴담은 이들에게 다가가 최고가 되어야 한다는 갈망과 1등에게 주어지는 천부적인 능력에 대한 질투와 시기는 2등의 마음속에 자리잡아간다.

 

늘 사라지는 건 두 번째 아이. 남은 건 첫 번째 아이. 지연은 언제나 남았다. 하지만 지연은 한 번도 첫 번째 아이가 될 수 없었다. 두 번째 아이가 눈앞에서 사라져 가는 그 순간조차도 지연은 자신이 첫 번째 아이라는 것을 확신할 수 없었다. 그래서 언제나 두 번째 아이였다. 두 번째 아이가 사라진다. 어쩌면 이 괴담은 위험할 정도로 끝이 없는 거짓말인지도 모른다. 우리는 모두 두 번째 아이니까. 사라지는 것도 남는 것도 모두 두 번째 아이.’ p. 238

 

<꽃들에게 희망을>이란 동화를 보면 정상에 올라가기 위해 애벌레들은 다른 애벌레를 짓밟고 밀치며 필사적인 모습이다. 그러나, 정상에 올라간 애벌레는 아무것도 없다는 것을 보고 실망감을 감추지 못한다. 정상에 올라가는 것보다 자기 안에 나비가 될 수 있는 능력이 있다는 것을 깨닫고 나자, 애벌레는 아름다운 나비가 된다. 우리의 인생역시 마찬가지다. 일등이 되기 위해 기를 쓰고 공부하지만 일등이 되면 또 다른 경쟁자가 기다리고 있다. 경쟁은 언제나 새로운 경쟁자를 등장시키기 때문이다. 무한경쟁이라는 프레임에 갇혀 동료애벌레를 짓밟고 올라간  정상의 꼭대기가 아닌, 우리는 모두  아름다운 나비가 될 수 있는 능력을 가지고  있다. 소설에서 지연이 1등이 되기 위해서 1등을 죽이지만 한번도 1등이 되지 못한 것처럼, 정상의 꼭대기는 원래부터 존재하지 않았다. 한편으로  소설 <괴담>은 무서운 이야기다. 우리 내면의 욕망을 거울처럼 반추하고 있기 때문이다. 나보다 더 뛰어나보이거나, 잘 사는 모습을 보면 축복보다는 시기와 질투가 속에서 꾸물꾸물 올라온다. 그리고 그 사이를 여지없이 괴담이 파고든다. 그리고 속삭인다. “너 그 얘기 알아? 하며... 이야기를 듣는 순간, 괴담은 현실이 된다책을 덮은 순간, 서늘한 기운이 뒷덜미를 맴도는 기분에 사로잡힌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소설이 말해주는 현실은 무서우리만치 생생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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