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 읽기 좋은 날 - 그날, 그 詩가 내 가슴으로 들어왔다
김경민 지음 / 쌤앤파커스 / 2011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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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해로 휴가가면서 챙겨간 시집인데, 휴가 내내 시를 읽으며, 이 시집을 가져오길 잘 했다고 몇번을 생각했는지 모른다. 고요한 바다, 하늘에 뜬 조각달, 한편의 아름다운 시, 행복이 가슴을 두드린다. 예전에는 시도 외우고 다니고 그랬는데 팍팍한 세상살이에 시를 잊은지가 하도 오래되서 시가 읽고 싶다는 넋두리에 두말없이 선물해준 친구에게도 고맙고,시들이 모두 이쁘고 또 이뻐서 더 고마웠다. <시 읽기 좋은 날>의 시들은 대부분이 중고등학교 교과서에 수록된 시들이다.  오랜만에 시집을 읽으니 학교다닐때 추억이 떠오른다. 우리때만해도 국어시간에 선생님이 시 암송하는 숙제를 내주시곤 하셨는데 외우지 못하면 손바닥을 자로 때리는 벌을 주셨다. 많은 사람들 앞에서 시를 암송하는게 그땐 그렇게 가슴이 떨리고 그랬는데 지금은 그날들이 소중한 기억으로 미소짓는 날이 될줄은 몰랐다. 시를 외우고 낭송하는 것이 싫었던 어릴적 치기가 살며시 부끄러워지는 날이다.

 

 

시 교육을 공부하고, 국어교사를 지낸 저자의 시에 대한 남다른 해석은 재미와 깊은 묘미를 느끼게 한다.  실제로 교과서에 담긴 주옥같은 시들과 곁들인 저자의 이야기들은  삶에 대한 깊은 통찰력과 혜안을 읽을 수 있도록하는 안내서와 같은 역할을 톡톡히 해주고 있다. 책은 세가지의 테마로 <너를 향한 눈빛>, <나를 향한 응시>,<세상을 향한 목소리> 로 나누어져 있는데, 마르틴 루버의 "태초에 관계가 있었다."라는 말처럼 태어나자마자  타인과의 관계 속에서 살아가게 되는 우리들, 그리고  그 관계 속에서 의미를 찾아가는 존재를 말하고 있는데 김춘수의 꽃처럼 우리는  누군가의  '꽃'이 되기 위한 존재를 말한다. 타인과의 관계를 통해 의미를 찾아가는 과정을 거치고 나서 다음의 여정은  누군가의 눈동자에 비친 '나'를 냉정하고 객관적인 마음으로 관찰 해야 한다. 진정한 내면 들여다보기를 할 수 있고 성찰의 시간을 가질 수 있어 좋은 두번째 장이다.  타인과 나, 그리고 세계라는 삶의 통찰은 진정한 배움에 대한 성찰을 끝으로 맺음을 하는데 이 장에서는 많이 배웠다고 하는 것을 지식인이라 하지만, 진정한 지성이란 사물과 현상의 본질을 제대로 볼 수 있는 '안목'을 가지고, 자신과 세계 사이의 관계를 끊임없이 '성찰'하여 , 그 바탕위에서 '행동'하는 것이 진정한 지식인이라는 깨달음을 불러 일으킨다.

 

 

 

당신이 얼마나 외로운지, 얼마나 괴로운지

미쳐버리고 싶은지 미쳐지지 않는지

나한테 토로하지 말라.

심장의 벌레에 대해 옷장의 나비에 대해

찬장의 거미줄에 대해 터지는 복장에 대해

나한테 침도 피도 튀기지 말라

인생의 어깃장에 대해 저미는 애간장에 대해

빠개질 것 같은 머리에 대해 치사함에 대해

차라리 강에 가서 말하라

당신이 직접

강에 가서 말하란 말이다.

 

 

강가에서는 우리

눈도 마주치지 말자.

 

어렸을 때. 황인숙의 <강> 이 시를  읽으면서  참 냉소적인 시인도 있구나 생각했던 것 같다. 저자의 시 읽기로 인해 이 시의 진가가 빛을 발하는 것 같다. 인터넷 강국이라 그런지 온라인을 통해  자신의 아픔이나 고통을 토로하는 글들을 자주 접하고는 한다. 하지만, 그런 글들을 보면서 개인적으로는 이해하지 못하는 부분도 있었다. 사람은 누구나 똑같이 아픔을 느끼고 고통을 느끼면서 성숙되어가는데 자신만이 아프고 자신만이 세상의 고통을 짊어진 듯 한 글들을 볼 때마다. 지나친 자기연민이 아닐까 생각하게 된다. 자신만이 불행하다고 믿는 사람들, 자신을 비극의 주인공으로 말하지만, 그런 사람들은 그냥 그것을 즐기는 것 같다. 고통을 토로하는 사람 대부분이 어떤 위로로도 나아지지 않았기 때문이다. 시인 황인숙은 <강>에서 그런 고통이 '옷장의 나비'나 '찬장의 거미줄'같은 자잘한 일상의 고민일 수도 있고,'인생의 어깃장'같은 심각한 시련과 장애물일 수도 있다고 말한다. 그러나 시인은 이 모든 것들을 다른 사람에게 전가에 해결해달라고 말하는 대신에 '당신이 직접 강에 가서 말'할 것을 명령한다. (p96) 나의 고통이란 것은 절대로 타인의 위로로 없어지지 않는다. 나 자신이 고통을 직시하고 그것을 기꺼이 짊어진 채 스스로의 힘으로 헤쳐 나가야만 해결할 수 있는 것을 나역시 불혹이 가까운 나이에 알게 되었기 때문이다.  

 

'예찬할 줄 모르는 사람은 비참한 사람이다. 그와는 결코 친구가 될 수 없다.우정은 예찬하는 가운데서만 생겨나는 것이기 때문이다."-미셀 투르니에

 

이 책에 실린, '선함을 담보한 아름다움'을 보여주는 50편의 시를 읽으면서 시인의 마음에 공명하고 그들이 부려놓은 언어에 감탄했다면, 서로 얼굴을 모르더라도 우리는 진정한 우정을 나눈 것이다.라고 저자는 말한다.  대학大學의 길은 맑은 마음을 맑히는데 있고 사람들과 하나 되는 데 있고 지극한 선 善에 머무는 데 있다고 하였다. 이 책은 그런 대학의 가르침을 느끼게 해준다. 마음을 맑게 하고 선에 머물게 하는 언어를 시라 할 수 있을 것 같다. 시들이 모두 이쁘고, 시에  담겨있는 삶에 대한 통찰을 비로소 깨닫게 해주는 책이라  앞으로도 무척 소중하게 여기며  간직하게 될 것 같다. 아주 오래 전 시를 암송하던 시절의 향수를  떠올리게 하면서, 우리에게 시가 필요한 이유를 깨닫기에 충분한 시 읽기 좋은 날이었다.

 

물론 나는 알고 있다. 오직 운이 좋았던 덕택에

나는 그 많은 친구들보다 오래 살아남았다.

그러나 지난 밤 꿈속에서 이 친구들이 나에 대하여

이야기하는 소리가 들려왔다.

"강한 자는 살아남는다."

그러자 나는 자신이 미워졌다.

브레히트,《살아남은 자의 슬픔》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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