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연당한 사람들을 위한 일곱시 조찬 모임
백영옥 지음 / 자음과모음(이룸) / 2012년 7월
평점 :
구판절판


무더위가 본격적으로 시작된다고 하더니, 어제 밤에는 열대야로 잠들지 못했다. 밤이 지니고 있는 열기는 이상하게 마음을 달뜨게 한다. 열기와 동반된  컴컴한 어둠은 휘황찬란한 달빛으로 착각하기 좋은 밤이다. <실연당한 사람들을 위한 일곱 시 조찬모임>은 그런 착각이 있는 밤에 읽기 좋은 소설이다. 실연이라는 단어가 주는 이상한 공감대는 살아가면서 한번쯤 겪었던 이별을 떠올리게 하고, 실연과 어울리지 않는 조찬모임은 궁금증을 자아내게 한다. 대부분의 이별은 밤에 이루어지지 않나? 그럼 일곱 시 조찬이라는 것은 새로운 만남을 뜻할까? 내 멋대로 해석하며 책을 펼친다.

 

 

소설의 주인공은 <슬픔이여 안녕>이라는 작품으로도 유명하지만, 소설처럼 굴곡진 삶을 살았던 소설가 프랑소와즈 사강과 이름이 같은 윤사강이다. 소설속에 등장하는 소설<슬픔이여 안녕>의 주인공 , 열일곱 살의 소녀 세실처럼 사강 역시 자신의 아버지에게 상처받은 채 성장한다. 자신의 아버지와 세실의 아버지와 소설가 사강과 자신, 그리고 사강에게 찾아온 사랑 또한 평범하지 않은 사랑이었다. 유부남과의 사랑에서 상처받은 것은 사강 뿐이지만, 사강은 한편으로 그 사랑으로 인해 아버지를 이해하게 되는 것조차 프랑소와즈  사강의 소설 속 주인공과 닮아있다. 사강의 인생에서 사랑은 다른 연인들처럼 기쁨과 환희로 다가왔지만 점점 자신에게 씌여지는 책임감과 죄책감은 자신의 사랑 또한 포기하게 하는데 , 사랑은 자신의 자유보다 더한 희생과 인내를 요구하기 때문이다. 이런 사랑의 과정을 거치면서 사강은 아버지의 불륜을 이해하는 과정을 거친다. 이렇게 인생의 한 과정을 겪으면서 사랑과 삶과 이별과 아픔은 하나의 번복성의 원칙을 띠고 있다는 것을  깨닫게 되며 그런 과정을 거치면서 자연스럽게 터득하는  슬픔들을 있는 그대로 진정으로 대면하는 용기야말로 인생을  더욱 가치 있게 만들어준다는 진실에  직면하게 된다. 실연 이후에야  사강은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슬픔이여 안녕> 의 주인공 세실이 말한 슬픔이여 안녕! 이란 말의 뜻이 이별이 아닌 만남의 인사라는 것을 이해하게 된다. 그것은  유부남이었던 직장상사와의 이별 후 인터넷에서 우연히 본 글귀에 사로잡혀 나가게 된 ‘실연당한 사람들을 위한 일곱 시 조찬 모임’에서 자신과 같은 아픔을 지닌  ‘지훈’을 본 순간 떠오르는 말과도 같았다.

 

 

십년의 연애를 한 지훈과 현정, 두 연인을 헤어지게 한 것은 아마도 오랜 권태와 같은 것 같다. 오랜 연애에 친숙하지만 지루함을 느껴오던 현정, 지훈에게 있는 바보형 명훈의 존재, 고아라는 수식어는 지훈을 오랜 세월 괴롭혀온 상처이다. 현정과의 사랑은 지훈에게는 어쩌면 사랑보다는 쉴 수 있는 안락함 같은 것이었지만, 현정은 그런 친숙함이 지겨움이 되자, 지훈을 떠나려 한다. 이별의 전조를 알아차린 지훈은 먼저 이별을 통보하는데 현정의 반응은 “고마워” 한 마디였다. 어느 날 트위터에서 본 실연당한 사람들을 위한 일곱 시 조찬모임을 본 순간 이끌리게 된 것도 어쩌면 운명같은 끌림이었는지도 모르겠다.

 

 

실연이 어긋난 뼈를 다시 맞추듯 죽을힘을 다해 자신이 기억하는 모든 사물을 그와의 기억쪽으로 되돌리는 일이란 걸 깨달았다. -p53

 

 

겉으로는 실연당한 사람들을 위한다는 명목을 위하고 있지만, 사실 이것은 결혼정보회사의 이벤트성으로 기획된 만남이다. 결혼정보회사에서 근무하고 있는 성공에 목말라있는 정미도의 확신에 찬 기획이었으니 ‘헤어져야 만나고, 만나야 사랑이 이루어진다.’는 정미도의 선택이자 이 비밀스러운 모임의 발단의 시작이라는 것. 

 

 

연애의 처음 시작은 보드라운 솜털 뭉치처럼 작고 귀여운 강아지가 늑대만한 사나운 개로 변신해 죽도록 짖어대는 과정과 비슷했다.p163

 

 

사강과 지훈과 미도의 이야기를 보면서 지훈과 현정의 이야기가 가장 눈에 들어왔다. 지훈과 현정처럼 우리가 오랜 연인이기 때문이다. 십년의 연애와 십년의 결혼생활중에 우리도 한번의 이별을 해 본 경험이 있다. 하지만 세월이 흐르면서  한 사람을 사랑한다는 것이 얼마나 멋진 일인지 생각해보곤 한다. 물론 많은 인내와 참을성을 요구하고, 전혀 모르는 '타인'이라는 한 사람을 이해한다는 것은  우주를 이해하는 것과 마찬가지로  평생이 걸리는 일이다. 현정이 지훈에게 이별을 통보할 때 왠지 안타까움이 들었지만, 사강과 지훈이 만나서 서로의 눈을 마주보았을 때, 그리고 현정에게는 털어놓지 못하는 아픔을 사강에게 털어놓는 지훈을 보며 사랑은 타인의 아픔과 슬픔을 이해할 수 있어야 한다는 조건이 전제될 때  가능한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이렇게 실연당한 사람들은 미도의 확신처럼 헤어지고 만나고 사랑을 이룬다. 인생이란 그런 게 아닐까.  사랑과 삶과 이별과 아픔은 하나의 뫼비우스의 띠처럼 연결되어 서로 번복하다가 그런 과정을 여러 번 거치면서 자연스럽게 터득하게 되는  슬픔들을 있는 그대로  대면하는 용기가  생겼을 때, 바로 진정한 사랑을 할 수 있다는 것.그때야 말로 슬픔에게 큰 소리 외칠 수 있는 것이다. 슬픔아 , 안녕이라고 !!!!!!! 안녕은 이별의 말이 아닌 새로운 만남의 인사라는 것을..........

 

내 마음 속에서 무엇인가 의미를 알 수 없는 감정이 북받쳐 오르고, 나는 두 눈을 감은 채 조용히 그것을 맞이한다.슬픔이여 안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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