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은 왜 부조리한가 - 경제학.철학.통계학.정치학으로 풀어낸 법의 모순
레오 카츠 지음, 이주만 옮김, 금태섭 감수 / 와이즈베리 / 2012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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석궁테러사건(사법부의 판결에 불만을 품은 성균관대 수학과 김명호 교수가 2007년 담당판사의 집에 찾아가 석궁으로 테러를 가해 우리사회에 충격을 던졌던 사건)을 영화화한 《부러진 화살》을 보며 엉뚱하게도 절대 상소에는 휘말리지 말아야겠다는 다짐을 했었더랬다.(ㅋ) 그 영화를 보면서 법으로 정의를 가려낸다는 것은 불가능하다는 현실을 깨달았던 것 같다. 민주주의 사회에서 국민을 위한 법이라고 하지만, 법은 국가를 위한 것이다라는 생각은 변함이 없다. 단지 국민의 삶의 질 향상이라는 과대포장지를 싸고 있을 뿐이다.  과거 법치로 나라를 세우려했던 진시황이나 한무제시대 국민들은 그 어떤 때보다  더 궁핍하고 불안정한 삶을 살았던 것으로 기억한다. 며칠 전 내가 사는 곳의 초등생 아이가 초등학교 앞에서 교통사고가 났다. 사고의 원인은 교통법에 의거해 모든 사거리의 신호등을 비보호 좌회전으로 바꾸게 된 것이 직접적인 원인이었다. 이후 교통사고가 끊이지 않아도 법은 요지부동이다. 《법은 왜 부조리한가》의 저자인 펜실베이니아대학교 로스쿨 레오 카츠 교수는 이처럼 우리가  불편하게만 여겼던 법의 부조리한 측면을 제시하며 대부분이 이런 법의 모순과 허점을 알면서도 그저 간과해야만 하는 현실과  일반인들을 보호하기 위한 법과 현행법 제도 사이의 간극에 대해서 두루두루 살펴본다.

 

 

 

제 1부 법은 왜 상생 거래를 거부하는가

법이란 것이 거래 당사자가 모두 만족하고 나머지 사람들에게 해가 되지 않는 거래 -장기매매, 대리모 계약,성매매-등이 불법으로 정의되어 있지만, 당장 신장이 없어 죽는 사람이나, 점점 증가하는 불임부부를 위해 합법적인 제도가 될 수 있음에도 사고 팔 수 없게 규정되어 있는 이유를 살펴보며, 왜 별 문제가 없어 보이는 어떤 일에 동의하거나 승낙하는 것을 허용하지 않는가를 사례를 통해 설명한다.  이렇게 별 이유없이 동의나 승낙이 무시되는 이유를 저자는 악의가 보이지도 않고, 반박하기도 힘든 한 가지 놀라운 전제로부터 도출되며,그것은 단지 X가 어떤 것을 Y보다 더 강렬하게 욕구한다고 해서 법적으로나 도덕적으로 Y보다 더 강략하게 권리주장을 할 수는 없다는 사실이다. 바꿔 말하면, 요구와 욕구, 이익과 선호는 다르다는 말인데 좀 더  쉽게 말하면, 저자는 법이 어떤 요구를 인정할 때 거기에는 암묵적으로 가치 또는 가격이 매겨지기 때문이라고 한다. 어떤 것을 한 맥락에서는 이 가격으로, 또 다른 맥락에서는 저 가격으로 산정하는 것은 곤란하다. 두 개의 가치가 공존하는 갈등이 생기기 십상이고, 경우에 따라 순환론에 빠지기 때문이다.

 

 

제 2부 법은 왜 허점투성이인가.

법에는 허점이 많으며 이를 알면서도 허점을 없애지 못하는 이유와 변호사는 법의 허점을 이용하는 행위에 반감을 가져야 하는지, 아니면 거리낌 없이 사용하는 것이 옳은지에 대해 살펴보는 장인데 가장 쉬운 사례로 선거 조작을 예로 들어 설명한다. 여기서 저자는 변호사가 허점을 이용하는 행위가 때론 도덕적으로 높은 평가를 받는 경우가 더러 있는 경우를 비단조성이라 한다.

 

 

제 3부 법은 왜 그렇게 이분법적인가

법적 판결은 이분법적이다. 유죄 아니면 무죄, 유책 아니면 무책, 계약이 맞거나, 혹은 아니다. 하지만 현실은 이렇게 명쾌하게 나뉘지 않으며 회색지대가 존재한다. 그러나 법은 왜 절충적, 중도적 판결을 내리지 않고 이분법적 판결을 고집하는가. 여기에 대해 저자는 법은 기어코 경계를 나누려는 지독한 속성이 있다고 한다. (예를 시리우스 별에서 온 사람을 들어 설명하는데 , 참 놀라운 이야기였다.)

 

제 4부 우리는 왜 악행을 모두 처벌하지 않는가

법에서는 사람들이 극히 혐오하는 데도 딱히 처벌하지 않는 행위가 있고, 사소해 보이는 데도 엄중하게 처벌하는 행위가 있다. 법은 왜 우리가 직관적으로 판단했을 때 느낀 혐오감이나 도덕관념에 비례하여 처벌하지 않는가? 에 대해 살펴본다.

 

 

결론적으로 법이 부조리한 이유는 첫 번째로 법의 부조리한 특성, 승낙의 한계를 논하면서 반복했던 논증과 유사하다. 개인의 생명과 건강을 지키기 위해 사회 구성원에게 그 모든 사회적 비용을 감당할 것을 요구하게 되면서, 하게 되는 논증을 말한다. (책에는 응급실 사례와 콩에 대한 논증으로 설명하고 있다.)

두 번째로 다룬 법의 부조리한 특성은 법의 허점이다. 우리는 법의 허점을 이용하는 자들의 핵심 전략은 겉보기에는 ‘무관한’요소를 도입해 ‘유관한’ 선택 대안들의 관계를 역전시키는 방법이다. 그러나, 우리가 법의 허점을 제거할 수 없는 이유, 또는 허점을 이용하는 변호사들의 관행을 강하게 비난할 수 없는 이유는 애로의 정리와 관련이 있다고 하며 애로의 정리는 무엇보다 선택 대안을 조작할 가능성을 논리적으로 제거할 수 없음을 입증하는 것이며,  변호사들이 허점을 이용하는 행위를 비난하는 것은 체스 선수가 일부러 말을 희생시키는 전략을 비난하는 것과도 같다고 한다. 세 번째 법의 부조리한 특성은 이분법적 성격과 네 번째 부조리 특성은 과소범죄화 문제라고 보았다. 그러나 이렇게 법의 허점을 인지하고도 시정하는 방법에 대해서는 전혀 없으며, 어쩔 수 없는 일로 마무리하는 부분은 맛난 음식을 먹다만 느낌이 든다.

 

 

법은 부조리하다. 누구나 그것을 알고 있지만, 저자의 주장에 조금  당황한 부분이 있다. <돈으로 살 수 없는 것들>에서 마이클 샌델은 우리 사회가 우리도 인식하지 못하는 사이에 이 사회가 시장경제(market economy)에서 시장사회(market society)로 옮겨갔다고 진단하였다. 이런 시장사회가 준 부도덕과 부패로 인하여 도덕적인 가치가 하락하고 무조건 돈으로 사고 팔려하는 인식이 팽배하는 사회에 대한 우려를 내비치고 있는 것과는 달리  로스쿨의  레오 카츠 교수는 오히려  시장사회에 대한 신념이 강한 사람으로 보여지며 도덕적인 가치를 중요시 생각하지 않는 것 같아 의아함이 들었다. 점점 도덕적인 관점이 모호해지는 시대에 성매매, 장기매매, 대리모에 대한 마이클 샌델과는 정반대의 의견을 내놓는데 마이클 샌델이 비상업적인 것으로 규정한 -성매매,장기매매,대리모-에 대해 돈으로 사고 팔아도 되는 상업적인 것으로 규정하는 것에 대해서는 그다지 설득력이 없으며, 오히려 부연설명이 부족한 느낌이 든다. 기업들의 탄소 배출에 대한 거래를 옹호하는 입장에 대해서도 논증과 이론에만 강한 법학자들의 단면을 확인시켜주는 것 같아  불편함이 드는 부분이었다.  괴테가 “모든 이론은 회색이지만, 생명의 황금나무는 얼마나 아름다운가?” 라고 한 말이 떠올랐는데 우리의 경험을 바탕으로 하지 않은 이론은 회색에 지나지 않는다. 진수성찬이 차려져 맛을 보는데 화려하기만 하지 간은 되어있지 않은 잔치음식처럼 부조리한 법을 설명하는데 급급해 어떤 대안이나 제시가 없다는 점이 가장 아쉬움으로 남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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