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블러드 레드 로드
모이라 영 지음, 김지원 옮김 / 북폴리오 / 2012년 6월
평점 :
절판
루가 앞장선다.
언제나 앞장서고,
나는 그 뒤를 따른다.
그래도 괜찮다.그게 옳은 거니까.
원래 그렇게 되어야 하는 거니까.
루는 아름답고, 나는 못생겼다.루는 강인하고, 나는 비쩍 말랐다.그는 나의 빛이다. 나는 그의 그림자고.루는 태양처럼 빛난다.그래서 그들이 그를 찾아내는 게 그렇게 쉬웠을 것이다.그냥 그의 빛만 따라서 오면 되니까.
루(오빠)는 금발, 나는 검은 머리,루는 파란 눈, 나는 갈색 눈, 루는 강인하고, 나는 비쩍 말랐다. 루는 빛이고 나는 그림자, 루라는 빛을 따라가기만 하면 되는 내 이름은 사바.
쌍둥이인 루와 사바는 정반대의 모습을 지닌 믿기 힘들겠지만, 쌍둥이다. 서로 다른 모습을 가지고 있지만, 사바는 루의 뒷모습을 보는 것으로도 좋다. 점점 메말라가는 은빛호수에서 아버지와 살고 있는 루와 사바에게는 동생 에미도 있다. 에미를 낳자마자 돌아가신 엄마생각에 사바는 루에게는 한없이 다정하지만 동생 에미에게는 이상하게 심술맞다. 잘해주고 싶어도 이상하게 마음이 비비꼬이는 이유를 사바도 알 수가 없다. 에미를 보면 엄마의 다정한 모습이 떠오르고, 풍족하였던 은빛호수가 떠오르지만, 지금 은빛호수는 가물다 못해 메말라가고 있는데, 에미가 보일 때마다 알 수 없는 짜증이 밀려오는 것이다. 그러던 어느 날, 붉은 모래 바람과 함께 나타난 다섯 명의 남자들이 고요한 이 가족의 삶에서 불행을 가져다 주었다. 루를 납치하고, 아버지를 죽인 것이다.
세상이 끝난 것 같아......
살아남은 사바와 에미는 루를 구하기 위해 길고 긴 여정이자 붉디 붉은 모험의 세계를 향해 출발한다. 한번도 은빛호수를 벗어난 적도 없거니와 오빠 루만 의지하고 살아왔던 소녀 사바에게는 아버지의 복수이자, 루를 되찾아와야 하는 목숨을 건 사투를 할 수 밖에 없는 모험이었기에 에미를 두고 가야 했지만, 머시아줌마에게 맡긴 에미는 말을 타고 쫓아와 어쩔 수 없이 동행하게 된다. 그러나, 평원에서 우연히 만난 핀치부부에게 속아 사바는 희망의 시로 이송되어 철장에 갇힌 채 콜로세움에서 여전사로 다시 태어나게 된다.
사람들은 나를 죽음의 천사라고 부른다.
그렇게 여전사로 다시 태어나, 싸움의 일인자가 된 사바에게 다가 온 한 소녀 헬렌으로부터 루가 납치된 이유를 듣게 되고, 왕이 자신의 권력을 위해, 생명을 연장하기 위해 동짓날에 태어난 아기를 찾아 열여덟 살이 될 때까지 감시한 후 납치해 제물로 삼아왔으며, 루가 곧 이 미치광이 왕에 의해 죽임을 당할 위기에 처했음을 알게 된다. 사바에게 다가온 은밀한 집단 ‘자유의 매’ 와 잭과의 운명적인 만남은 사바의 모험중에서 최고의 하이라이트이다.
책표지에 등장한 까마귀는 사바의 동행자 네로이다. 이 모험에 유일하게 처음이자 끝을 함께 해주는 네로와 아버지가 죽고 루가 납치되자, 연약하고 나약한 소녀 사바의 눈부신 홀로서기가 시작된다. 그토록 미워했던 동생 에미를 돌봐주는 보호자로서, 루를 구출해야겠다는 일념하나로 콜로세움에서 최고의 여전사로 등극한 모습에 나도 모르게 뿌듯함이 밀려오기도 한다. 한편으로 약하다는 것은 강해질 수 있다는 여지가 있는 것이고, 강하다는 것은 또한 약해질 수 있는 역설적인 비유를 내포하고 있는 소설이 아닌가 했다. 소설 전반에 흐르는 역설적 표현에 작가가 무척 센스있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인데 , 메말라서 강바닥이 쩍쩍 갈라지는 호수 이름이 은빛호수이고, 살인과 약탈이 넘쳐나는 도시의 이름은 희망의 도시이다. 《블러드 레드 로드》전반에 흐르는 이 역설적인 표현들은 읽으면서 재미와 동시에 모험의 생생함을 더해주는 기분이다. 사바가 나약한 소녀였지만, 절망의 세계를 구하는 구원자가 되기까지의 여정을 그야말로 핏빛여정임으로... 역설속에 작가가 말하고자 하는 희망의 메시지가 들어있다.
그래서 나는 앞으로 갔다. (p.497)
이제 사바는 루의 그림자가 아닌 빛이기에 ...
이 소설은 영국의 권위 있는 문학상 ‘코스타 북 어워드’를 수상했다. 「글래디에이터」등을 만든 할리우드의 대표적인 흥행 감독 리들리 스콧이 정식 출간 전부터 판권을 사들여 영화화 작업에 착수한 것으로도 화제가 되었고 하는데 이 책은 일명 '더스트랜드 3부작'의 첫 번째 권이다. 최근 판타지 소설에 자주 등장하는 마법사나 마술을 부리지는 않아서인지, 의외로 몰입도 잘되고, 그림처럼 여정이 펼쳐져 상상하는 것이 어렵지 않은 점으로 쉽게 읽히는 소설이다. 그리고 왠지 소설에서 펼쳐지는 자유평원은 영화에서 많이 접해온 공간으로 느껴졌다. 영화로 만들면 아마도 사바가 콜로세움에서 하는 격투기가 단연 으뜸이 되지 않을까 생각해본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