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기 11 - 시공인문교양만화, 완결 시공인문교양만화 사기 11
요코야마 미츠테루 지음, 서현아 옮김 / 시공사 / 2012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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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권 마지막에 사마천이 태어나 사기를 집필하던 시대로 끝이 나, 한 무제의 이야기일 줄 알았는데 <자객열전>에 나온 예양과 섭정의 이야기로 시작한다. 사마천의 사기의 또 다른 재미는 왕후와 귀족중심의 역사관보다도 역사에 드러나지 않은 인물들에 대한 이야기도 있다. 예양과 섭정의 이야기는 “선비는 자기 자신을 알아주는 자를 위해 죽는다.” 라는 의협심이 팽배했던 시절, 지금으로 보면 한량이나 건달로 보여지는 ‘유협’ 이라는 집단이 있었는데 계속된 사회혼란에 관료들이 만들어 내는 법에 적응하지 못하고 벼슬을 포기한 자들이 자구책으로 결속한 것이 발단이 되었다고 한다. 민중들은 그들의 존재를 높이 평가했으며, 체제측은 국가의 질서를 어지럽히는 자들로 보았다. (여기서 중국영화나 무협지를 보면 유협이라며 떠도는 무리들이 종종 보여지는데 사기를 보니 조금은 그 시대를 이해할 수 있을 것 같은 생각이 들었다.) 이들은 정의에 어긋나는 일도 하기도 했는데 바탕은 “ 약속한 일은 반드시 지키고 , 하고자 한 일은 반드시 이루며, 천 길 낭떠러지에 있더라도 신의를 지킨다.”는 협객의 정신이 있다.

 

예양은 재주가 많았으나, 아무도 알아주지 않았다. 그러나 지백만이 예양의 재주를 알아보고 높이 인정을 해준다. 그러나 조양자에게 죽임을 당하고 자신을 알아준 지백의 복수를 하기로 결심한다. 조양자에게 다가가기 위해 얼굴에는 옻칠을 숯을 먹어 목을 쉬게 하여 변장하지만, 번번히 조양자는 오히려 주군을 위하여 복수를 하겠다는 예양의 기개를 높이 사며 풀어주자, 스스로 자결한다. 섭정 또한 한나라의 대신 엄중자가 자신을 알아주자 엄중자의 복수를 해주기로 하는데 복수에 성공한 후 자신의 신분을 모르게 얼굴을 난자하고 죽는다.

 

 

유협이었던 주가의 이야기와 최후의 협객이 된 곽해의 이야기도 예양이나 섭정이야기 만큼 놀라운 이야기이다. 그러나, 정의의 이름으로 죽고 죽이고 하는 협객의 이야기는 그다지 귀감이 되지 않았다. 사마천은 곽해를 마지막 협객으로 보는 이유가 곽해가 비록 살인도 하고 방탕한 시절도 있었지만 약속한 일은 반드시 지키고, 하고자 한 일은 반드시 이루었다는 그 점을 높이 산 듯 하다. 이후에도 협객을 자처하는 인물이 많았지만, 그자들은 유협의 정신을 잃은 폭력배나 다름없다고 한다. 나라가 안정되고 유학의 질서가 확립하자, 유협의 정신이 무의미해지고 도리어 위험한 것으로 여겨져 , 사마천은 유협이 사라지게 된 것은 시대의 흐름에 따른 결과라고 한다.

 

 

대체로 인간이란 처음에는 부지런하다가도 나중에는 게을러진다. 아무리 강직한 사람이라도 마침내는 해이해지기 쉽다.임금이란 부지런하고 검소해야 정치를 잘할 수 있다. 문제(文帝)와 경제(景帝)는 부지런하고 검소하여 성공하였으나, 무제(武帝)는 방종하고 지나친 욕심을 부렸기 때문에 실패하였다.” 1430년, 한무제 이후 약 1500년 뒤, 조선의 세종은 신하들과 경연을 벌인 자리에서 이렇게 말했다. 그리고 그를 거울 삼아, 평생 초심을 잃지 않으며 나라 다스리기에 부지런하고 검소하고자 애썼다.

 

 

 

무제가 무제(武帝)라 불리는 이유는 그가 외치(外治) 쪽에서 거둔 눈부신 업적 때문이다.10권의 마지막에는 한무제가 흉노를 상대로 벌이는 외교정책에 관한 이야기가 짤막하게 실려있는데, 춘추전국시대는 이 흉노족이 막강한 위협 세력이었다. 기마부족으로 약탈과 노략질로 먹고 살며 잔인하기도 해 이 유목민들을 막기 위해 진시황도 만리장성을 세울 정도였다. 통일 제국인 한나라도 이를 감당하지 못해, 한고조 시절에 정벌하려다 그만 거꾸로 포위를 당한 끝에 겨우 풀려난 이후로는 매년 거액의 뇌물을 바치거나 황실의 여자를 보내는 일로 그들의 침입을 달래 오는 처지였다. 그런데 한무제가 흉노족과 정면돌파를 하면서 흉노족들은 고비사막 저편으로 쫓기게 된다.

 

그러나, 이런 눈부신 업적과는 달리 유학자들에게 무제는 좋은 평을 받지 못하는데 법을 지나치게 엄하게 만들었기 때문이다. 무제의 사법관료들은 더욱 더 법을 가혹하게 적용하고 이것은 도리어 조정의 통치력을 약화시키게 되는 결과를 가져왔다. 진시황 때에 엄격한 법치체계가 쉽게 무너져내렸듯이 법이 엄하면 엄할 수록 반발하는 백성과 사소한 죄로 재산을 몰수 당한 자, 수배당하는 자들이 도적단에 가입하기 때문에 수백명의 규모의 도적단이 생겨나 마을을 약탈하여 한편으로는 무제시대를 혹리시대라고도 한다. 노자가 “ 법령이 많으면 많을수록 도적은 늘어간다.” 라고 했듯이 ......

 

 

사마천은 한무제를 오랫동안 제왕이 닮지 말아야 할 군주라고 평했다. 직언 한마디 했다가 궁형까지 당한 사마천의 입장에서 볼때는 그래도 후한 평이지만, 한무제에 대한 혹평을 보고 분노한 한무제는 사마천의 역사서를 모두 태우라고 했다는 말도 있다. 이후 사마천의 사기는 오랫동안 빛을 보지 못한 채, 잠들어 있어야했다. 

  사기를 본 후, 다양한 인간군상들의 모습에서 한 편으로는 씁쓸함을 금할 수 없다. 인간의 욕심은 언제나 화를 불러왔고, 이기심의 말로가 어떤지 잘 보여주며, 현명한 군주의 모습이 어떤 모습인지, 깨닫게 해주기 때문이었다.게다가 사마천에 등장하는 인물들 모두가 굉장히 드라마틱하고 극적인 인물들이라 이야기 자체가 충분히 자극적이다. 이런 자극을 통해 조금은 안이한 시대를 살고 있는 우리들에게 삶의 진정한 가치란 무엇인지를 생각해보게 하는 교훈들이 넘쳐나 많은 귀감이 될 듯 하다. 만화로 사기를 다 읽고 나니 이제  집에 있는 두꺼운 베개 싸이즈인 사기열전을 읽는데 많은 도움이 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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