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의 기초 : 한 남자 사랑의 기초
알랭 드 보통 지음, 우달임 옮김 / 톨 / 2012년 5월
평점 :
구판절판


사랑을 이제는 추억으로만 느끼는 나이가 되어서인지, 사랑과 함께 떠올려지는 그 애틋하고도 간절함은 아니지만, 그래도 사랑하면 그런 때가 내게도 있었지.’ 하며 대담한 척 하곤 한다. 열렬히 사랑해서 결혼한 것은 아니지만, 남들보다 긴 연애시절을 거치고 남은 것은 사랑보다 더 끈끈한 우정, 보다  진한 감정으로 결혼하였기 때문에 더 좋은 면도 분명히 있는 것 같다.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결혼생활이  가끔 외롭고 서글픈 이유는 무엇인지 모르겠다.  알랭 드 보통의 사랑의 기초-한 남자를 읽으면서 비로소 그 정체를 알게 되었다. 내 안에  맴돌았던 양가 감정에 대해서 동지적 연대감을 강하게 느끼게 되는 것은 알랭드 보통이 스스로가  마흔에 접어들며 느끼는 사랑과 결혼에 대한 짧은 고찰들이기 때문이다. 서로를 열렬히 사랑해 결혼에 성공한 부부인 벤과 엘로이즈를 중심으로 가정생활, 자녀양육, 사랑과 섹스 등에 관한 느낌을 솔직하고도 담백하게 이야기를 해나간다

 

사랑

미치도록 사랑한 벤과 엘로이즈, 그러나 시간이 지나면서 사랑이라는 감정보다는 현실에 직면하게 되었을 때,  고통이 찾아온다. 경제적으로 안정되어 있지 않고, 배우자와의 애정관계에도 문제가 생기고 결혼을 하자마자 배우자는 교육자로 변신하여 끊임없이 생각을 개조시키려 들때, 더욱 그렇다. 벤은 자신의 결혼생활을 되짚어보면서 자신의 삶에 어떤 것이 문제였을까를 생각해보게 되는데 열렬히 사랑했던 엘로이즈가 여자의 의미가 아닌 그저 '인간'으로 여겨지게 되면서 결혼이라는 제도가 가지고 있는 모순까지도 생각해본다. 결국 결혼이란 부르주아가 발명하여 부르주아들의 강력한 옹호와 지지속에서 발전해오며, 결국 계급과 제도의 산물이었으며 , 우리가 믿고 있는  낭만적인 사랑 또한 부르주아의 발명품이라고 믿게 된다.  자본주의의 스트레스를 견디기 위해 낭만적 사랑에 매달린다는 생각을 하며  프로이드의 " 그들은 사랑하면 정욕이 사라졌고, 정욕을 느끼면 사랑할 수 없었다." 에서처럼 일부일처가 주는 결혼제도의 부당함을 생각해보기도 한다. 그러나, 벤에게 찾아온 한 번의 사랑, 가슴이 두근거리고 섹스가 know라는 동의어로 인식된 여자와의 외도를 통해 결국 그것이 결혼과 연결되지는 않는다는 사실을 또한 깨닫는다.

이어 일상으로 돌아와 바쁘고 정신없는 회사일을 마치고 집으로 돌아가는 길, 남은 저녁시간을 근사하게 보내는 공상을 하며 퇴근하였지만, 현실에 그를 기다리는 것은 다음과 같았다.

 

두 아이, 조금 지친 아내, 그리고 모종의 위기.

 

 

가족

《정진홍의 사람공부》에서 부모가 아이들에게 해 줄 수 있는 것은 오로지 도전과 응전의 정신, 그 가치만 가르치면 된다고 하였듯이 아이들 교육에 있어서 내가 아이들에게 가장 가치있게 생각하는 부분도 그런 정신적인 부분이다. 지나치게 영민하고 아름다운 유년기를 보내고 있는 아이들의 모습에 , 자연과 이어져있는 순수한 생각들, 밤마다 잠들어 있는 아이들의 모습에서 무한한 경이로움을 느끼는 그 달콤한 순간들을 사랑하지만, 그 배후에 전개되는 어른이기에 감당해야 하는 고달픈 삶을 느낄 때마다 가슴 속에서부터 차오르는 외로움과 고독은 어찌 설명해야 할지 모르겠다. 그만큼 아이를 키운다는 것과 부모로서 삶을 살아간다는 것은 결코 쉽지 않은 일이다.

그리고 벤에게서 그런 느낌을 공유하게 되었다는 것은 무척 고무적이다. 부모로서의 감정은 아마도 같은 부모라면 매한가지 인가 보다. 벤은 아이들에게 요즘 부모들이 과잉보호하는 모습에서 그럴 필요가 전혀 없으며, 자식들이 부모가 되어서도 부모의 그늘에 두어서는 안된다고 한다.(나역시도 그런 생각을 해 왔기에 )  자식에게 높은 지능보다는 비전과 야망을 품은 정신력, 거절이나 실패에 적절히 대처할 수 있는 심리적 유연성등을 물려주어야 한다고 할 때, 부모로서 심히 공감되는 부분이었다.

 

 특별한 나는 세월이 흐르면 점점 희미해져갈 필요불가결한 환상이다. 그 결과로 얻게 된 자기연민의 마지막 흔적조차 사라질 마흔 살 무렵이 되면 헛된 꿈에서 깨어나 우리의 어리석음과 죄 많음을 똑똑히 바라보며 살아가게 될 것이다.

 

섹스

벤은 결혼 후 성적욕망을 아내에게 충족시키지 못하자  밤마다 인터넷 포르노에 중독되어가며, 자신의 욕망의 메커니즘에 대하여 생각하는데 현대의 결혼은 섹스, 사랑, 가족이라는 세가지 욕구를 조화시킬 수 있는 무대로 정의되었다고 한다. 이 중 어느 것에도 조화롭지 않은 순간 , 결혼생활은 헝클어진다고 한다. 그러나 사랑해서 결혼했음에도 어느 것 하나 충실할 수 없으며 세월이 흘러가며 진정으로 사랑해서 결혼하는 사람이 있을까 회의하는 모습에서는 왜 그렇게 공감이 가는 것일까.

 

엘로이즈 때문에 몹시 화가 났을 때는 그녀가 차에 치여 죽어버리면 행복할 것 같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십 분 뒤에는 엘로이즈가 없으면 죽을 것 같이 느껴졌다.

 

유난히 피곤한 날 이 책을 읽었다. 아이들은 빽빽대고 남편은 늘 공사가 다망하고 , 나는 집안일의 스트레스와 동시에 업무의 스트레스로 졸도할 지경이었다. 우린 사랑해서 결혼했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우린 정말 사랑했을까? 를 떠올린다. 알랭드 보통이 말하는 궁극의 결혼의 모습 - 사랑, 가족, 섹스-에 대해서 생각해 보건데, 나는 유명한  연예인들이 텔레비젼에 나와서 말하는 '저 행복해요' 라고 말하는 '행복한 결혼생활'을 믿지 않는다. 행복하다고 자랑하는 부부치고 이혼 안하는 부부 없으며, 경제면에서 클리어한 부부를 본 적이 없기 때문이다. 어쩌면 결혼은 알랭 드 보통이 말한대로 자본주의 속 계급과 제도의 산물일지도 모른다. 언제나 외국소설을 읽을 때마다 느끼는 거지만,  우리나라 성에 대한 인식의 차이를 확연히 느낄 때마다 성에 대한 자유로운 표현이나 인식이 부러울 때가 있다.(?) 그만큼  '성'(섹스)라는 욕망의 메커니즘이 지나치게 솔직한 나라의 작가가 말하는 성과 일반적으로 한국에서의 성에는 많은 차이점이 있다는 것은 인정하지 않을 수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알랭드 보통이 말하는 사랑과 결혼과 섹스에 대한 탐구에는 동지적 연대감을 느끼기에 충분하다. 결국 부부생활의 진리는 '우리 자신의 불완전함을 인정하는 것, 그리고 사랑하는 연습을 두려워하지 않는 용기' 가 있어야만 궁극의 결혼생활을 할 수 있다는 알랭드 보통의 이야기는 부부라는 이름으로 살고 있는 현대인들의 결혼탐구서와 같은 느낌이다.   

 

지극히 평범한 삶이라는 엄청나게 어려운 과제를 그럭저럭 계속해나가는 단순한 일, 이것이 진짜 용기이며 영웅주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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