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핍을 즐겨라
최준영 지음, 림효 그림 / 추수밭(청림출판) / 2012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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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흐르는 물이란 구덩이를 채우지 않으면 가지 않는다." -맹자

 

지금 생각해보면 언제나  결핍에 허덕였던 것 같다. 어렸을 때에는 모든 면에서 뛰어난 언니와 비교당하며 나의 부족함을 느껴야 했고, 커서는 지나치게 똑똑한 동료에 비해 부족한 사회적응을 탓하며, 스스로를 생각하기를 결핍된 사회인으로 인지하며 괴로웠던 기억이 있다. 지나치게 낯섬으로 사회를 대하다가 결국에는 사회 부적응자로 낙인 찍혔던 젊은 날의 방황속에서 살아남는 방법은 '결핍' 과 정면대결하는 길 뿐이었다는 것을 수많은 만남속에서의 굴곡을 겪고 나서야 알게 되었다. 지금도 물론 결핍을 느끼는 부분이 있다. 그리고 그 결핍을 안고 사는 것이 사람의 삶이라고 거리의 인문학자이며 이 책의 저자인 최준영은 말한다. 이 책은 저자가 그동안 노숙인, 여성 가장, 수형인 등 이 땅의 가장 낮은 곳에서 가장 큰 결핍을 안고 살아가는 사람들에게 인문학을 전파하며 깨달은 삶의 통찰이 고스란히 담겨 있는 책이다.

 

 

 

"돕는다는 것은 우산을 들어주는 것이 아니라 함께 비를 맞는 것입니다 . " 신영복

 

 조선 후기 실학자 이덕무는 ‘낙상매’에 대해 ' 어미 새는 새끼 매에게 먹이를 줄 때 일부러 높은 하늘에서 떨어뜨린다고 한다. 새끼들은 그 먹이를 차지하려고 위험을 무릅쓰게 되고, 개중에는 둥지에서 떨어져 다리가 부러지는 녀석도 생긴다. 어미 매가 노리는 것은 바로 이 먹이를 얻으려다가 실패하여 다리를 다친 ‘낙상매’이다. 왜냐하면, 새끼 때에 낙상한 매는 그 결함이나 열등 보상으로 인해 별나게 사납고 억샌 매가 되기 때문이다. 이런 낙상매는 임금님의 진상품으로 바쳐지는 귀한 매가 된다. 결함이나 열등감에 대한 보상심리로 도리어 월등한 능력을 가지게 된 낙상매처럼 우리 인류의 역사 속에도 이러한 존재가 심심치 않게 등장한다. 레오나르도 다빈치가 그랬고 스티브 잡스도 그랬고  엘리자베스 여왕 또한 그러했다.
이 책에는 그런 결핍속에서 태어나 극복함으로서 새로운 삶을 산 사람들의 이야기와 노숙인을 위한 인문학 강의들을 모은 것이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아파하는 이유가 자기 중심적인 사고에 사로잡혀 자신의 결핍을 바로보지 못한채 아파한다고 한다. 저자는 진정한 사랑은 결핍된 존재들이 만나 서로의 결핍을 어루만져 주는 것이 진정한 사랑이기 때문에 자신의 결핍을 인정하고 그 결핍과 동행할 수 있을때 진정한 '삶'이 시작된다고 한다.

 

 

의미 있는 삶을 중심에 놓고 살다가도 문득 잡아채는 감정의 돌기들을 만나게 되면 당혹감이 인다. 비가 온다고 해서 누군가 그리워지는 것도  마흔이 되면 안 그럴줄 알았는데도 여전하고 첫사랑이 떠올려지는 영화를 보며 울컥해져버리는 것도 나이가 들면 안그럴줄 알았는데 여전하다. 저자는 감정을 이성으로 다스리고 이성을 감정으로 다독이려는 노력마다 실패할 수 없는 이유가 인생이기 때문에 어쩔수 없다고 한다. 감정과 이성 사이에서 좌충우돌하며 살아가는 게 우리네 인생이라고 ...

 

오랫동안 책을 읽어왔지만, 가끔은 내게도 책 읽는 것에 회의가 찾아온다. 벨른하르트 슐링크의 <<귀향>>에 나오는 이야기처럼 저자는 앎에 대한 강박을 털어버리면 무한한 상상의 세계와 조우하게 된다고 한다.  

 가짜 이름 대신 진짜 이름을 안다고 해서 달라지는 것이 있을까?
중요한 것은 밤하늘의 초롱초롱한 별들에 한층 더 친숙해지는 것이 아닐까?

 

 책을 읽는다는 것은 단지 활자를 보는 것이 아니라 그 속에 담긴 인간의 마음과 세상의 풍경을 경험하는 일에 다름 아닙니다. 무엇보다 책 읽기는 겸손한 마음으로 출발해야 합니다.

 

 

더벅머리 소년 황상이 다산에게 글을 배우려 청하러 갔을 때 자신을 

"첫째는 너무 둔하고, 둘때는 앞뒤가 꼭 막혔으며, 셋째는 답답합니다. 저같은 아이도 정말 공부할 수 있나요?" 물었을 때  다산이 " 공부는 너 같은 사람이 하는 것" 이다. 하는 말씀은 다산 선생님께서 내게 해주시는 말씀 같아 늘 곁에 두고두고 곱씹는 말씀이다.


지금도 이 말씀은 나를 향해 있는 듯하다. 때론 둔하고 때론 앞뒤가 꽉 막혀 깨달음이 늦되고 융통성이 없어서 답답한 사람이 세상을 향해 서 있다. 안다는 것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삶의 아름다움을 느낄 수 있고 빗방울 속에서 고독을 즐길 수 있고, 자연이 주는 목소리에 귀를 기울이는 방법을 배웠다면 책은 읽지 않아도 된다고 생각한다. 『책은 도끼다』에서 책을 읽는 것은 삶의 풍요를 위한 훈련이라고 했듯이 일상이 주는 소소함에서 아름다움을 스캔할 수 있고 ,  인간의 본성 깊숙한 곳에 자리한 지혜의 알곡을 골라내는 방법을 배우고  세상 만물과 소통할 수 있게 하는 것이 바로 인문학이다. 따라서 이 책은 살아가는 지혜의 자양분으로 넘친다. 읽을 때마다 새롭게 인생의 의미를 발견할 수 있게 해주며 자신의 주어진 결핍과 마주보게 하여 그 결핍과 동행하는 방법을 일깨워준다. 누구에게나 결핍은 있지만, 대개는 그 결핍을 방치하거나, 이겨내지 못한 채 죽음을 맞이하기도 한다. 그 결핍을 이겨내는 순간 우리의 '진짜' 삶을 만나게 되는 것이다. 비워야 비로서 채워지듯이, 우리의 결핍과 마주하는 시간을 주는 『결핍을 즐겨라』는 진정한 인문학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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