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침 一針 - 달아난 마음을 되돌리는 고전의 바늘 끝
정민 지음 / 김영사 / 2012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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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암 박지원은 기묘한 인연으로 만난 벗이라 할지라도 그와 더불어 나누는 대화가 무료하고 함께하는 행동이 구차하다면 차라리 홀로 책 속에서 벗을 찾는 것이 낫다고 하였다. 가끔 내 오랜 친구들이 그리울 때가 있다. 모두 사는 것이 바쁜 데다가 멀리 떨어져 있다보니 그리운 친구들이 하나 둘이 아니다. 가끔은  시간을 내어서라도 그리운 이들을 만나고 싶을 때가 있지만, 그 시간을 내기도 쉽지가 않다. 그때마다 떠올리며 위로받는 말이 박지원의 '책속의 벗'이라는 말이다. 막힌 혈을 풀때 침을 한대 맞으면 막힌 혈도가 풀리듯이 이 책은 그런 막혔던 정신에 일침을 가해준다. 고전에 나온 구절들은 모두 사자성어들로 이루어져 있고, 그 100개의 글을 25개씩 4부로 나누었다. 짧은 고전 글귀에 맑은 기운이 불쑥 찾아오고 가슴이 뭉클해지며 정신이 바짝 드는 글귀들이다.

 

 

 

1부 <마음의 표정> 에서는 연암 박지원의  이명비한(耳鳴鼻鼾) 이 가장 가슴에 와 닿았다. 귀울음과 코골기, 이명은 병인데도 남이 안 알아준다고 난리고, 코 골기는 병이 아닌데도 남이 먼저 안 것에 화를 낸다. 이명은 '나'만 느낄 수 있는 것이고  코 골기는 나 빼고 '남'이 다 아는 것이다. 저자는 별 것 아닌 것에 제 것만을 대단한 줄 아는 것을 '이명' 증에 걸린 꼬마로, 남 잘한 것은 못 보고 제 잘못은 질끈 눈 감는 '언제 코골았냐고 성내는 '시골 사람'이라고 한다. 

 

 

얻고 잃음은 내게 달려 있고

기리고 헐뜯음은 남에게 달려 있다.

 

 

저자는 좋은 글을 쓰고, 본이 되는 삶을 살려면 제 이명에 현혹되지 않고, 내 코고는 습관을 인정하면 된다고 한다. 남을 헐고 비방하는 것은 일종의 못된 버릇이며 비판과 비난을 구분 못하는 것은 딱한 습성이다. 이외에도  ‘남산현표南山玄豹  남산의 검은 표범이란 의미로 ‘배고픔을 견뎌야 박히는 아름다운 무늬’를 뜻한다.  ' 설니홍조(雪泥鴻爪)' 눈 진흙 위의 기러기 발자국의 이야기도 정신의 일침으로 다가온다.

 

 

2부 <공부의 칼끝> 의 이야기 중에서는 아무래도 부모이다보니 , 다산의 교육법인 문심혜두(文心慧竇) 가 가장 기억에 남는다.  문심이란 풀어쓰면 '문자 알아차리는 마음'이자 '글을 이해하는 능력'으로  혜두의 '두(竇)'는 구멍이라는 뜻이니까, 혜두는 '슬기의 구멍', 곧 '지혜를 뜻한다. 즉 문심을 알고 혜두가 열려야 공부 머리가 깬다는 것이다. 그러러면 다산은 촉류방통의 방법을 제시하였는데, 계통을 갖춰 정보를 집적해 나가면 세계를 인지하고 사물을 이해하는 안목이 점차 단계적으로 열린다. 주입식 교육으로 암기위주의 학습은 슬기구멍을 막히게 하지만 하나를  배워 열로 증폭되는 공부방법을 배우게 하는 것이 아이의 슬기구멍을 열게 하는 방법이라고 한다.

 

 

3부 <진창의 탄식>에서 모든 재앙은 입에서 비롯된다고 하는 화생어구 禍生於口로 주로 입이 화근이 되는 이야기들이 많다. 칭찬은 만 사람의 입이 모여 이뤄지지만, 비방과 헐뜯음은 한 사람의 입만으로도 순식간에 먼저 나간다(방유일순) . 4부 <통치의 묘방> 편의 용종가소(龍鐘可笑)( 용모는 꾀죄죄해도 속마음은 맑았다.) 등은 사람을 볼 때 외모로 판단할 것이 아닌 사람의 마음을 볼 줄 아는 사람이 되어야 겠다는 교훈을 남겨준다.

 

 

독서에 대해서는 깊게 들어가서 얕게 나와야  어려운 것을 쉽게 풀이하는 심입전출이란 말이 있다. 공부는 깊어야 설명이 간결해지고 자기가 잘 알아야 남도 쉽게 이해한다는 뜻이다. 한 번 들어 알기 어려운 말은 옳은 말이 아니며 제 속이 빈 것을 남들이 알아차릴까 봐 말이 많아진다. 가끔씩 말이 많아지고 미사여구와 수식어가 남발하는 이유가 아마도 내 스스로의 공부가 깊지 못한 것인가 싶어 반성하는 계기가 되어주기도 하였다. 또한  정민 교수가 말하는 독서법은 우작경탄(牛嚼鯨呑) 으로 우작(牛嚼)’은 ‘소가 되새김질하듯 읽는 독서법’이다. ‘한 번 읽어 전체 얼개를 파악한 후, 다시 하나하나 차근차근 음미하며 읽는 정독’이다. ‘경탄(鯨呑)’은 고래가 작은 물고기를 삼킨다는 뜻으로 고래는 바다 속에서 큰 입을 쩍 벌려서 물고기와 새우 등 온갖 것들을 바닷물과 함께 삼킨다. 소화시킬 겨를이 없다. 이것을 '고래 삼키기 독서법'이라고 하는데 고래가 닥치는 대로 먹이를 먹어치우듯 폭넓은 지식을 갈구한다. 그러나  자칫 수박 겉핥기가 되는 것이 문제이다. 따라서 소의 되새김질과 고래의 한입에 삼키기 독서가 서로 보완이 되어주면 아주 좋은 독서법이라고 한다.

 

 

 삶이라는 길은 전인미답의 길이다. 그 길을 걸어가는 우리의 삶은 어렵고도 힘들다. 그런 의지가지 없는 삶에 '책 속의 벗'으로서 고전과 함께 한다면 조금은 덜 외로울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일침>은 왠지 그런 책이다. 두고두고 꺼내 읽고 되새겨보고, 벗으로 삼아 함께 걸어가고 싶은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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