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게 바로 누와르!
나서영 지음 / 심심 / 2012년 4월
평점 :
품절


고등학교 때 자율학습 땡땡이를 치고 친구들과 영화를 보러 간 적이 있다. 다음 날 담임선생님께 영화를 본 친구들과 복도에서 벌을 서야했지만, 창피함도 잊을 정도로 영화는 환상적이었다. 바로 오우삼 감독, 유덕화 주연의 천장지구였다. 느와르와 멜로의 조화가 어딘지 촌스러우면서도 주인공 유덕화는 사춘기 여고생의 마음을 자극하는 동경의 대상으로 하얀 웨딩드레스를 입은 여주인공의 모습은 고결해보였다. 불량하지만 불량한 느낌이 없는, 첫 느와르와의 만남이었다. 이후부터 느와르영화를 좋아하게 되었던 것 같다. 최근 들어 부쩍 느와르영화가 많아진 느낌을 받곤 하는데, 아마도 느와르가 한국인들에게 묘한 향수같은 것을 일으키기 때문이 아닐까 한다.

 

최근 본 느와르 중에 기억에 남는 영화 악인은 너무 많다’(감독 김회근)가 아마도 전형적인 느와르로 보여진다. 건달 출신으로 흥신소를 운영하던 남자가 뜻하지 않게 범죄의 소용돌이에 빠져드는 이야기로 느와르영화가 가지고 있는 특유의 느낌들 -'어두운 골목길, 안개가 자욱한 인적이 거의 없는 스산한 거리, 가로 등 밑에서 불안하게 서성이는 남자, 자욱한 담배 연기, 급히 빠져 나가는 자동차 엔진 소리, 검정 양복과 몸 어딘가에 꼭 있는 문신, 남자를 성적으로 유혹하는 여자,- 느와르 영화에서 단골로 등장하고 있는 구성 요소들이다. 여기에 '부패' '배반' '냉소주의' '환멸' 등이 가미되어 기본 줄거리로 다루어지고 있다.

 

나서영의 이게 바로 누와르! 는 느와르가 갖추어야 할 구성요소들을 다 가지고 있다, 한우리회라는 조직을 중심으로 살아가는 형제들, 모두 교도소 출신들로 사회에서 자립할 수 있도록 도와주기 시작한 것이 발전하게 되어 나아가 용주군의 번영회 성격을 띠게 되었다. 급전을 융통해주고, 서로의 사업을 안정적으로 지원해주고 친목 형성이 두터운 조직이다. 혜영빌딩에서 한우리회 사무실을 꾸려가고 있는 이권하를 중심으로 형제정육점을 하는 유동식과 1층에는 윤구의 오락실이 있고 2층에는 형제통닭을 하는 성구가, 형제헬스장의 백후연, 흙표범이라 불리우는 최동학이 한우리회의 원조멤버들이다.

 

늘 사고만 치고 바보 형을 둔 윤구, 25년만에 재회한 형은 여전한 모습이었고, 한우리회 형제들은 그런 모습의 형도 따뜻하게 맞아준다. 알콜중독이었던 아버지에게 매일 맞고 자란 성구의 불행에 그늘로 자리잡아 있는 꽃처럼 이쁜 엄마. 그러나 말을 하지 못하고 듣지 못했던 엄마는 매일 맞는 성구를 대신하여 맞다가 벙어리 동생을 데리고 집을 나갔다. 엄마와 동생을 아버지의 폭력으로부터 지켜주지 못했던 자괴감으로 괴로웠던 성구는 벽가도라는 외진 섬에 엄마의 소식을 듣게 된다. 완벽주의에 엄하기만 한 군인 출신의 아버지에게 도망가고 싶어 가출한 최동학은 늘 따라다니는 아버지의 눈초리를 기억한다. 성인이 되자 , 가장 먼저 한 일은 아버지를 추적하는 것이었다. 어머니는 이미 사라지고 아버지는 새여자와 아들, 딸을 두고 살고 있고 가난하지만 행복한 가정을 보고 최동학은 아버지를 더욱 증오하지만, 자꾸 아버지를 맴돌게 된다.

아픈 가정사를 가지고 있는 이들에게 한우리회는 혈연관계보다 더한 우정으로 이루어져 있다. 바보형에게 깍듯이 존대해주고 오랫동안 헤어진 엄마와 동생의 해우에 마음으로 울어주는 진한 동지애를 자랑하지만, 그들 앞에 불어닥친 불행이라는 괴물은 '용진마트'라는 자유시장 경제체제라는 이름이었다. 심상만 , 심상문 형제가 세운 대형마트는 중소유통업체와 상인들을 야금야금 삼킨다. 영세상인들과 비정규직원들은 용진마트를 상대로 천막을 치고 숙식을 하며 철야농성을 하게 된다. 그러나 용진구청과 용진마트는 용역패를 상주시키고 무자비한 폭력을 행사한다. 무자비한 폭력 앞에 시위대는 처참히 무너지고 깨졌다. 이를 바라보는 한우리회 이권하는 그들의 눈물과 슬픔과 억울함을 가슴 속에 꾹꾹 눌러 담았다. 자본주의라는 이름을 가진 거대한 괴물을 상대로 이기기 위해서 그들의 눈물을 기억하기로 했다.

 

오우삼 감독의 누와르는 비둘기는 날아야 하고, 옷자락은 흩날려야 하며, 조명은 항상 뒤에서 비쳐져야 한다이다. 오우삼의 영화와 나서영의 글을 음식에 비유하자면, 오우삼의 그것은 화려한 토핑으로 장식한 피자라고 한다면, 나서영의 글은 봄날 한철 맛볼 수 있는 화려한듯 화려하지 않은 화전같다고나 할까. 나서영 작가는 간결하고 과하지 않는 표현으로 독자의 상상력을 최대한 침해하지 않으려하는 배려가 묻어난다. 이것이 바로 작가의 누와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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