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자의 가방 - 여자의 방보다 더 은밀한 그곳
장 클로드 카프만 지음, 김희진 옮김 / 시공사 / 2012년 4월
평점 :
절판


내 가방은 무겁다. 유난히 무겁다. 학교 다닐 때나 지금이나 가방에 많은 것을 넣어가지고 다니는 버릇 때문에 내 가방은 언제나 무겁고 크다. 초등학생 딸내미의 가방도 무겁다. 학교사물함에 책을 넣어두고 다녀도 되련만 딸아이는 나를 닮아 똑같이 무거운 가방을 들고 다닌다. 혹여 키가 크지 않을까 싶어 걱정이 되어 잔소리를 하지만 가방이 무거워야 마음이 편한 그 마음을 이해하기에 그냥 내버려 둔다.

 

 

참 재미있는 책이 나왔다. 여자에게 가방이란 무엇인가? 가 궁금한 남자가 있었나보다. 파리 5대학 부설 사회관계 연구소(CNRS) 연구원이자 사회학자인 장 클로드 카프만은 여자의 가방을 여자 생애의 궤적에서 뗄레야 뗄 수 없는 존재로서 연구하였다. 그의 연구는 호기심으로 비롯하여 시작하여 75명의 여자들을 인터뷰한 결과, 여자의 가방에는 그녀들만의 history가 담겨있다는 사실을 발견한다. 그 이야기가 한 편의 책이 되는 과정에서 저자는 가방들의 이야기를 듣게 되었다고 한다. 감성이 넘치는 시적인 이야기, 힘 있고 정확한 이야기, 사랑과 죽음, 실존의 큰 변화들, 불란과 열정, 가슴 속 깉이 품어 온 추억과 행복을 불러일으키는 이야기 , 그리고 가방 밑바닥에 웅크리고 있는 놀랍고 대단한 것들을 일깨워주는 이야기(p11)였다고 한다. 결국 가방이라는 존재가 여자에게서는 결코 평범한 건이 아니라는 사실을 깨달은 후 그 이야기 그대로 글로써 들려주고 싶었다고 한다.

 

책을 읽다가 내 가방을 쏟아보았다. 늘 습관처럼 지니고 다녔던 가방을 분석하기 위해 들여다보는 건 처음인 것 같다. 책 2권, 볼펜 5자루, 이어폰, 대일밴드, 안약, 알레르기약, 안경집, 다이어리, 휴대폰, 지갑, 물티슈, 키홀더, 립스틱이 쏟아져 나온다. 이 물건들이 내게 의미 하는 것을 무얼까?

 

가방 안에는 무엇보다도 감정과 추억들이, 애정과 인간관계로 이루어진 세상 전체가 들어 있다고, 그리고 이러한 것은 논리적으로 따질 수 없는 문제다. p45

저자는 가방 안에서 물건을 찾을 때 바로 찾을 수 없을 때나는 짜증을 정교한 정신적인 메커니즘으로 보았다. 그 이유를 아리스토텔레스가 “모든 행동에는 윤리, 즉 도덕의 기억이자 실행이 깃들어 있음”에서 찾을 수 있다. 가방의 정리스타일과 성격의 구조는 아리스토텔레스의 사유와 연관된다. 일상적인 습관, 특히 가장 사적이고 격의 없는 습관 속에서 우리 자신과 동일한 것을 재생 (자신의 정체성을 확립)하는 능력을 축적한다고 보았다. 결국 여성에게서 가방이라는 자신만의 작은 세상은 자아의 보호막인 셈이다. 따라서 ‘단일 가방파’는 가방에 담는 물건들을 뒤죽박죽 만들어 놓고 ‘다수 가방파’는 정리정돈을 잘한다고 한다. 그러나 삶과는 다르다. 롤로라는 여자는 단 하나의 가방만 사용하는 단순함을 추구하지만, 그러면서도 그녀 삶에서는 다양한 면모를 온전히 드러내며 살아가기를 원한다.

 

저자는 물건에게는 두 개의 삶이 있다고 한다.

첫 번째가 조용하고, 겸손하고, 존재의미가 지워진 삶이고,

두 번째가 물건이 문제를 일으켰거나, 어떤 사소한 일이 습관적인 메커니즘을 방해하거나,

물건으로 인해 더 큰 행복을 느끼는 삶이라고 한다.

 

가방에 의해 이런 시기가 나눠지는 경우는 첫 번째 삶, 기능적인 가방, 사소한 것들로 이루어진 친숙한 세상, 자기 자신의 연장, 이는 여성 자신이 정점에 달했을 때 무거워진다.그리고 가방의 전혀 다른 삶은 화려하게 빛나는 삶, 첫눈에 반하기와 열정과 근사한 겉모습의 삶이다. 가방은 다른 방식으로 여자를 만드는데, 이 방식은 사람에 따라 매우 다르며 특정한 시기와는 전혀 관계가 없다. 여자에게 가방은 처음에는 이따금 갖고 노는 장난감이었다가, 열 두 살에서 열 세 살 무렵에는 진정한 연습의 가장으로 여성성을 익히며 한 사람의 개성을 형성하는 복잡하게 얽힌 관계 속에서, 가방의 세상으로 들어가고 거기 머물게 된다. 청소년기에는 가방은 개성의 일부가 되어 머리를 매만지고 화장하는 도구가 되어주며 서서히 가방의 역할이 커지기 시작한다. 이후 가방은 생애의 궤적으로서 여성에게 가장 중요한 존재로서 자리 잡게 된다.

 

가방은 여자의‘또 다른 자아’다. 또한 ‘삶’이 라는 퍼즐을 완성시키는 한 조각, 추억의 상자이기도 하다. 그래서 여자들은 가방을 잃어버리면 자신의 일부를 잃었다고 느낀다 -르몽드-

가방이란 여자에게 무엇일까? 나는 가방이 나의 일부라고는 생각해본 적은 없다. 하지만 여자에게 있어서 가방이란 또 다른 자아와 같다는 말에 동의한다. 가방에 애착을 가지고 있는 여자는 집착을 능가하는 애정이 생기기 때문이다. 드라마나 영화에서 여자가 자신의 내면심리를 표현하는 도구로서 가방을 활용하는 이유도 아마 그런 이유일 것이다. 가방가게를 오래 해 온 나는 가방이란 '물건'이 언제나 주인을 찾아간다는 생각을 하곤 한다. 가방을 사러 오는 손님들의 특성 중의 하나가 자기 자신의 스타일의 가방만 본다는 것이다. 저자는 물건들에게 두 가지 삶의 의미가 있다고 했다. 존재의 의미를 부여받지 못하는 물건과 행복을 주는 물건이라는 의미를 받은 가방의 삶이 더 아름다울 것 같다. 그리고 소소한 물건의 행복을 느끼는 이들의 모습은 더욱 아름다울 거란 생각이 든다. 내 가게에서 가방을 산 손님들이 그 가방으로 행복을 느꼈으면 하는 바람처럼 한 사람의 생애의 궤적에 남기는 물건을 파는 사람이 되고 싶다. 장 클로드 카프만의 가방이야기는 사회학자답게 조금은 건조함이 있지만, 물건을 하나의 존재감으로 탄생시키는 그의 이야기는 무척이나 흥미롭게 읽힌다. 당신의 가방은 어떤 삶을 살고 있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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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림모노로그 2012-04-18 17:5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우와 ~가방에 아기들을 위한 사탕까지 , 섬세한 분이시군요 ㅎㅎㅎ 나무늘보님이 글을 쓰시는 분이라는 것이 소지품에서 느껴집니다 ^^ 책과 노트, 펜 까지는 저랑 똑같은데 ㅋㅋ 저도 제가 하는 일이 참 좋습니다 ^^ㅎㅎ
항상 이쁜 물건들을 봐서그런지 스트레스가 별로 없어요 크크 ~
누군가에게 어떤 의미가 되고 싶은 건 사람이나 물건이나 똑같은 것 같습니다 ^^ ㅎㅎ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