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드 2 - 가난한 성자들 조드 2
김형수 지음 / 자음과모음(이룸) / 2012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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헤겔은 영웅이란 일상생활의 인식범위를 넘어서지 못하는 보통사람이나 전체 대중까지도 유린할 수 있는 역사적이고 성스러운 명분을 가진 인물을 영웅이라고 하고 각 시대는 그 조건에 적합한 영웅을 갖는다고 했다. 시대가 영웅을 만든다고 했듯이 12세기와 13세기의 몽골에는 영웅이 필요한 시대였다. 주기적으로 불어 닥치는 조드에 의해 수많은 생명은 초원위에서 죽음을 맞이해야 했고 유목민들의 삶은 초토화되었다. 그럼에도 형형히 빛나는 푸른하늘의 영원함은 상대적으로 인간의 탄생, 소멸과 극명한 대조를 이룬다.

 

푸른 하늘과 인간, 그 간극에 영웅 테무진이 시대를 바꾸려 서 있었다. 수많은 생명이 탄생하고 푸른 하늘 아래 머물다가 떠나가는 것처럼, 그렇게 그의 삶은 강물처럼 흐르고 있었다. 그 위로 나그네가 지나가듯이 죽음과 소멸이 스쳐가는 것을 느끼고 있었다. 테무진은 신격화된 푸른 하늘에 의한 탄생과 소멸의 과정들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었다. 자연은 겸손한 생명은 살릴 것이며 건방진 것들은 거둬갈 것이기에 , 조드로 더 이상 죽음에 무방비하게 있던 유목민들에게 조드를 대비하여 행동지침을 만드는 것이 테무진이 칸이 되어서 처음 한 일이다.

 

테무진이 칸이 될 수 있었던 것은 겨우 일곱 명의 사내로 사만 명의 군대를 만들고, 빼앗긴 아내를 찾았으며, 끝까지 전리품을 갖지 않은 이유 때문이었다. 부르 초원의 전투에서 전리품을 가지지 않았던 이유는 아내를 되찾아오기 위한 전투의 신성한 뜻이 훼손 될까 그런 것이었는데 당시 유목민들이 전투에서 전리품을 취하는 행위는 당연한 행위였기에 테무진이 값비싼 전리품들을 모두 자무카에게 양보하는 행위는 많은 사람들에게 널리 회자되어 승리의 중심에 있던 자무카보다 테무진에게서 사람들은 보석같이 빛나는 인간성과 같은 신선한 감동을 느끼게 된 것이다. 그런 인간적인 면모를 바탕으로 하여 테무진을 따르는 유목민들이 많아지자, 그들을 통솔하기 위한 방침이 내려지게 되는데, 아마도 국가가 성립이 되면 법령이 선포가 되듯이 테무진의 행동방침은 무척이나 엄하고 무서운 권력의 모습을 보인다. 유목민의 삶에서 복수란 당연한 것으로 세대에 세습되었다. 사람이 사람에게 복수하는 것을 명예로 느꼈었던 그들의 법에 처음으로 느끼는 공권력이란 것은 사람과 사람에게 복수하는 원한관계가 아니라 복수할 대상조차 없는 무조건 복종하게 하는 권력의 힘이다.

 

 

평민과 종의 자식에게 군대를 맡기고 혈연 위주의 통치구조에서 씨족을 해체하여 능력있는 사람을 등용한다는 것은 당시에는 생각조차 할 수 없는 것임에도 불구하고 과감한 정치와 엄격한 행동방침은 유목민들에게 신선한 충격과 함께 무조건적인 신의를 불러일으키게 된다. 짐승과 더불어 살았던 유목민의 삶이었지만, 인간답게 사는 법이 무엇인지 손수 행동으로 보여주며 억압보다는 자유와 유목민들과의 대화를 즐겨했던 칭기스칸의 능력은 어찌보면 혼혈이자 인간의 군집에 불과했던 집단을 하나의 군사공동체로 변화시키기에 충분한 밑거름이 되어준다. 이것이 바로 칭기스칸의 이름을 영웅의 대열에 오르게 한 것이다.

 

“우리는 똑같이 희생하고 똑같이 부를 나누어 갖소. 나는 사치를 싫어하고 절제를 존중하오. 나의 소명이 중요했기에 나에게 주어진 의무도 무거웠소. 나와 나의 부하들은 늘 원칙에서 일치를 보며 서로에 대한 애정으로 굳게 결합되어 있소. 내가 사라진 뒤에도 세상에는 위대한 이름이 남게 될 것이오. 세상에는 왕들이 많이 있소. 그들은 내 이야기를 할 거요."

 

 

칭기스칸의 삶은 이 시대에게 지도자로서의 표상을 제시해준다. 역사의 흐름이 바뀌고 사회구조의 변혁이 필요한 시기에 민중은 영웅을 기다린다. 과거 영웅의 탄생 과정을 지켜보았을 때 많은 지식의 결과물에 의해서 영웅이 만들어진 것이 아니라는 것은 인정되면서도 상당히 역설적인 사실이다. 칭기스칸의 삶 역시 인위적으로 만들어진 영웅의 삶이 아니라 숱한 생사의 고비와 혈족들의 수많은 배신이라는 과정이 결국 지도자(또는 영웅)의 큰 잣대의 완성을 해 낸 것이리라. 그의 영웅으로서의 면모는 역행이 아닌 순응의 과정, 즉 처단과 반목이 아니라 격려와 아우름으로 민중을 이끈 모습으로 보여진다.

 

물질 만능의 시대-실로 따뜻한 마음의 영웅 탄생을 기대하게끔 하는 시대이다. 이러한 시기에 칭기스칸의 모습은 진정 시대가 요구하는 지도자의 모습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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