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억을 공유하라! 스포츠 한국사
김학균.남정석.배성민 지음 / 이콘 / 2012년 2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항상 나보다 늦게 귀가하는 남편이 며칠 전 브라질 월드컵 3차예선 쿠웨이트전이 열릴 때 문자가 왔다.

" 여보 축구보면서 한 잔 해야되니까, 빨리 와." 그래서 다른 때보다 일직 퇴근하여 집에 가보니 이미 치킨과 맥주를 사놓고 쿠웨이트전을 보고 있었다. 속으로 축구를 매일 하면 다른데로 안새고 집에 일찍 들어오는 착한 남편이 되겠구나 ..싶었다.

 

내가 처음으로 스포츠의 세계에 입문하게 된 것은 2002년 한일월드컵때이다. 명동에서 근무하던 시절 바로 옆 시청에서 응원전이 펼쳐질 때에도 시큰둥하였는데 남편의 성화로 시청 길거리 응원전에 참여하게 되었다. 그 때 , 하필이면 상대팀이 이탈리아였으니, 이탈리아 토티의 무대포 몸싸움에 분개하며 결국 연장전까지 가고 나서야 승리하였을 때, 나도 모르게 눈물을 흘리고 있었다. 처음으로 느껴본 스포츠가 준 감동이었다. 가슴 벅찬 감동으로 집에 돌아오던 날 , 스포츠로 하나된 느낌은 비단 나뿐이 아니었는지 처음 보는 사람과 어깨동무하고 하이파이브를 하며 허그를 나누었던 것 같다. 그리고 그땐 우린 분명히 하나였다. 스포츠는 그렇게 눈물이자 희망을 , 감동과 함께하는 즐거움이자 마음을 어루만져주는 위로의 이름으로 역사를 써왔다.

 

 

그리고 또 하나의 추억은 출퇴근시절 스포츠신문을 옆구리에 끼고 전철을 타던 기억이다. 두시간 거리를 출근하였던지라 그 오가는 시간에 킬링타임용이었던 스포츠 신문덕에 긴 시간의 출근시간이 즐거웠던 것으로 기억된다. 물론 스포츠 신문 1면에 나는 기사들이 지나치게 선정적이고 자극적인 면도 없지 않았지만, 심신이 피곤한 시절의 스포츠신문을 읽는 것은 하나의 유희같은 것이었다. 실제로 스포츠 신문의 전성시대는 80~90년대로 한국 경제가 풍선처럼 부풀어 오르던 성장의 시대와 맥락을 같이 한다. 먹고 사는 문제가 해결되었을 당시에는 스포츠는 하나의 유희로서 자리잡게 된 것이다. 그러나 반면 사회분위기는 가볍고 음란한 시대였다. 스포츠, 섹스, 스크린의 이니셜을 딴 3S는 무거운 시대의 배설구 역할을 했다. 이런 시대의 분위기에서 탄생한 대표적인 스포츠스타는 이만기, 강호동이었다. 그러나 이 시대에의 불행한 죽음인 헝그리복서 김득구의 죽음은 어두운 시대를 잘 보여주는 가슴아픈 시대비극과 함께한다.

 

지독히도 가난했던 김득구는 어렸을 적 가출하여 복서가 되지만 1982년 가을 링에서 맨시니와 맞붙은 경기에서 불귀의 객이 된다. 헝그리 복서의 전형으로 불렸던 그는 강원도 거진에서 단돈 3000원을 들고 가출한 뒤 구두닦이, 제과점 기술자, 버스내 행상등 닥치지 않고 일을 하다가 결국 배고픔을 이기기 위해 복싱을 시작하게 되는데 배고픔을 잊기 위해 싸운 김득구가 승승장구할 수 밖에 없었던 것은 가난을 벗어나고자 하는 투지가 한 몫을 했다, 그러나 경기 중 맨시니의 오른 쪽 라이트를 맞고 넘어진 후 의식을 잃는데 이 경기에서 가출한 뒤 처음으로 김득구의 복싱하는 모습을 보러 출국한 어머니를 만나지 못한 채 죽었기 때문에 더 슬픈이야기이다. 그러나 김득구가 남긴 유산은 지금 돈의 가치로 10억정도. 살아서 부자인 적이 없었던 그가 죽어서 많은 유산을 어머니에게 남기지만, 어머니는 72일 만에 고향에서 자살하고, 마지막 경기를 치뤘던 맨시니 역시 링을 떠나며 심한 우울증에 시달린다. 게다가 당시 경기 주심을 맡았던 리처드 그린도 심한 우울증에 시달리다가 7개월 뒤 자살했다. 모든 이들이 비극으로 끝난 김득구의 투혼은 스포츠사에는 한국 프로복서의 투혼의 상징으로 세계 프로복싱사에 값진 이름을 남겼다. 그의 비극이 보여주고 있는 것은 시대가 경제개발과 경제성장을 통해 물질적인 풍요와 부를 이룬 부유층이 있었지만 , 반면에 농촌과 도시 빈민들은 여전히 가난과 배고픔에 시달리고 있다는 자본주의의 사각지대의 존재를 여실히 보여주고 있는 것이 아닐까?

 

 

그렇게 격동의 80년대를 거치면서 해마다 6월은 민주화와 관련된 사건이 있었던 터라 늘 복더위만큼 무더웠지만 1998년 그때만큼은 달랐다. 해방 이후 압축 성장기를 보내며 앞으로 전진만 했던 대한민국이라는 뜨거운 '엔진'이 급속도로 식으면서 처음으로 불어닥친 IMF 구제금융 신청은 건국 이후 최고의 국난으로 불린다. 거의 패닉 상태에 빠져 있던 국민들에게 5월 중순 미국에서 불어 닥친 '박세리 열풍'은 스포츠 개인의 영광을 뛰어넘어, 사회 전반적으로 엄청난 파급 효과를 주었다. 이 시대의 박세리의 성공 신화는 상처받은 국민들의 마음을 치료해주는 치료제이자 거의 유일한 희망이었다. 이후 박세리의 행보는 한국에 '세리 키즈'세대를 탄생시키게 된다. 이때부터 아마도 골프가 일반사람도 즐길 수 있는 스포츠로서 각광받기 시작했던 것이 아닐까한다.

 

2004년 아테네 올림픽에서 세계 최고의 명승부를 펼쳤던 여자핸드볼 선수들의 감동실화 << 우리 생애의 최고의 순간>>이란 영화를 보며 홀로 밤새 눈물을 흘린 적이 있다. 우리가 잠시 즐기는 스포츠란 이름안에는 우리의 삶이, 우리의 역사가, 우리의 아픔을 기억해주는 묘한 울림의 경기이다. 공 하나에 자신의 모든 의지를 담아두려하는 야구선수나, 스윙에 혼신을 다하는 골프선수의 모습에서도, 복싱에 가난을 벗어나려 하는 처절한 몸부림을 통해서 , 그들이 혼신을 다하는 그 찰나의 순간을 공유하게 될 때, 우리는 스포츠를 기억하게 되는 것이다. 그래서 스포츠는 언제나 감동과 동의어로 다가오게 된다. 다시 한 번 과거 시청앞에서 목터져라 응원하며 스포츠와 하나되었던 감동을 느낄 수 있다면 여한이 없을 것 같다. 내가 살아있는 동안 그때의 감동을 재현할 수 있는 그런 날이 선물처럼 왔으면 좋겠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