철학하라 - 황광우와 함께 읽는 동서양 인문고전 40
황광우 지음 / 생각정원 / 2012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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봄날 같은 날씨에 가까운 동물원에 간만에 식구들과 나들이를 했다. 날씨가 좋다고 생각한 것은 비단 우리식구만이 아닌지라 동물원에는 인파가 넘쳐났다. 간만의 외출에 즐거운 마음도 잠시 조금씩 보이는 사람들의 이기심에 점점 마음이 불편해지기 시작했다. 자신의 아이를 찍느라고 통로를 막고 놀이기구 앞에 서 있는 아버지, 쓰레기를 아무데나 버리고 가는 다정한 연인들, 회전목마가 돌아가기 시작하는데도 앉지 않고 사진 찍는 모습, 어디에서도 남에 대한 배려를 찾아볼 수 없는 모습들 속에 불편한 마음을 끌어안고 집에 돌아오는 길은 우울함 그 자체였다. 나와는 상관없는 사람이지만, 전에는 생각지도 않던 그런 모습들을 보게 되었을까 하는 생각도 들었고, 한 편으로는 도시사람들이 모두 저렇게 다 이기적인 모습일까 하는 생각때문이었다. 신문에 나는 사회면은 이해할 수 없는 사건과 사고가 넘쳐나고 대선이다 뭐다해서 정치권은 서로 헐뜯고 비방하는 데 여념이 없다. 그 안에 어디에서 설 자리 없는 것은 예나 지금이나 일반인들이다. 경제는 불안하고 국가는 힘을 잃어가고 사회는 혼란한데 어느 한 곳 위로받을 곳이 없다. 시국탓인지는 모르나 ,<<철학하라>>를 읽으면서 내내 불편했던 마음들이 위안이 되는 기분이 들었다. 불확실한 사회에서 그나마 '나'를 찾게 되는 방법은 철학하는 방법밖에 없기 때문이다. 데카르트의 나는 생각한다, 고로 존재한다는 인간의 존재와 사유는 동시에 존재한다는 것을 말한다. 따라서 철학해야 하는 이유는 인간의 존재와 동시성을 가진다.

 

1부 동양편의 부제는 ' 나를 찾다' 이다.

맹자는 "사람의 본성은 나면서 곧 그 소박함을 떠나고 그 소질을 떠나게 마련이니 잃어버리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그 때문에 사람의 본성은 악하다."라고 말했지만 순자는 인간의 본성이 악하기 때문에 이를 바로잡을 수 있도록 노력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한다. 그러나 저자는 인간의 본성은 생물학적인 것이라기 보다 사회적인 것이므로 인간 본성의 원래 고유한 그 무엇을 주장하는 것은 의미가 없다고 한다. 문제는 편향성이다 .하나의 가치에만 매몰되어 그 뒷면의 다른 하나를 보지 못하는 편향성은 넓게 볼 수 없는 것이다.이어 슬픔을 극복하기 위해 책을 택한 정약용이 <목민심서>에 담으려 했던 괴로운 현실의 데자뷰, 순자의 성악설을 직접적으로 계승한 한비자의 냉혹한 현실주의 , 삶 속에서 느낀 처절한 고통, 갈등과 방황 그리고 그 모두를 극복하여 고결한 목적으로 승화시키려는 피나는 노력, 이런 것들이 녹아있는 사마천의 <사기>를 두고 저자는 <<사기>>는 그냥 역사책이 아니라 인간을 탐구하는 책이라고 한다.

 

이렇게 동양사상은 '유기체적 자연관'이다. 유기체는 어느 한 부분의 변화가 전체의 변화를 낳을 수 있고 , 전체의 변화가 모든 부분의 변화를 낳을 수 있는 통일체를 말하는데 동양철학은 모두 유기체로 연결되어 있다. 따라서 맹자부터 시작하여 순자, 공자, 노자, 이황, 원효 , 그외<중용>과 <주역><목민심서> <성학십도> 모두 바로 인간에 대한 철학적 탐구라는 주제로서 유기적으로 연결되어 있는 것을 발견하게 된다. 또한 <논어>에서 "조용히 일을 할 때는 경건한 마음으로 한다." 고 했다. 이것은 이황의 경敬으로써 내몸을 닦는다.라는 것으로 성학십도에 반영했고 자신의 실천사상으로 삼았다. 경하면 누구에게 의존하지 않으며 누구의 눈치도 보지 않으며 스스로에 의지하며 스스로의 길을 간다. 이는 바로 자신의 주체를 찾음이다. 주체는 그렇지 않은 곳이 없고 그렇지 않은 때가 없다. 이렇게 동양의 사상은 서로 영향을 주고 받으며 변화하여 결국은 자아를 찾는 것으로 귀결되는 사상이다. 최근 서양의 기계론적 자연관이 위기를 맞으며 동양의 유기체적 자연관에 주목을 하고 있는 것 또한 불확실한 시대에 자아를 찾는 것이야말로 최고의 철학이 아닐까 한다.

 

2부 서양편'불확실한 세계를 이해하다.'

동양사상과는 달리 서양의 사상은 신의 존재 증명이 중심이다. 인간은 존재한다. 이는 그 무엇으로도 부정할 수 없는 분명한 사실이다. 인간을 존재하도록 해주는 존재가 있어야 하는데 그것이 바로 신이다. 따라서 신은 최고의 존재이다. 신은 세계의 창조자이고 세계는 신의 창조물이라는 것, 이것이 아우구스티누스의 철학 제 1전제이다. 이렇게 서양철학은 불확실한 세계에서의 진리 추구라는 명제를 가지고 있다 . 데카르트의 복잡하고 형이상학적인 방법, 베이컨의 사상의 대혁신을 위해 주창한 우상의 타파, 니체가 말하는 신의 죽음에서는 영원한 지리, 세상을 지배해야만 하는 절대적인 가치가 사라졌으니 현실에 눈을 돌려 현실에 충실하라는 것까지, 모든 것이 불확실한 세계에서의 진리를 찾는 것이다. 그러나 이런 니체의 철학이 무신론적 실존주의라는 하나의 학풍을 만드는데 기폭제 역할을 하면서 짜라투스트라는 신의 죽음을 선물로 받아들인다. 그러나 이것은 자신의 삶에 의미를 부여하지 않으면 삶은 무의미가 된다는 것을 말하며 현실과 삶에서 의미를 찾아내야 하며 어떤 이론이나 사상이 아니라 바로 삶 속에서, 그 삶을 알기 위해 자신을 초월해서 자신의 모습을 보라고 말하는 것이다. 이것은 아마도 현 사회에서 살아가는 지혜로 받아들여진다.

 

3부 정치와 과학편은 플라톤의 <국가>,아리스토텔레스의 <정치학>, 마키아벨리<군주론>, 루소<사회계약론>은 민주주의의 기초를 제공한 사상으로서 국가와 사회를 움직이는 통치와 사회적 약속을 거시적 안목으로 보여주고 있으며 ,갈릴레오, 뉴턴, 다윈, 슈뢰딩거, 하이젠베르크까지 과학이 세계를 전체로서 온전하고 제대로 이해하기 위한 노력을 해 왔으며 ,과학의 발전이 인류의 딜레마를 이겨내게 해 줄거라는 기대를 하지만, 과학의 세분화는 오히려 세계 전체를 보지 않고 있다는 우려를 끝으로 동서양 인문고전40 을 실은 <<철학하라>>는 마친다.

 

고전을 읽고 나면 마음을 다 잡아 주는 그런 기분이 든다. 많이 접했던 책이지만 처음 읽는 기분으로 읽었다. 사실 고전이 주는 매력은 다시 읽을 때마다 처음 읽는 것처럼 무언가를 발견한다는 느낌을 갖게 해준다는 것이다. 예전에 내가 공자를 알았지만 공자의 다른 면을 발견하게 되는 그런 것들이 새롭게 다가오는 느낌이 들때마다 말할 수 없는 만족감을 느끼고는 한다. 여기 나와 있는 책중 사마천의 <<사기>는 아직 읽어보지 못했는데 사기를 조금 접하고 나니 꼭 읽어봐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전작 <철학콘서트>처럼 조금은 가벼울 줄 알았는데 조금 더 깊어지고 넓어진 철학콘서트의 연장선이다. 그리고 사상가의 삶을 요약해놓은 tip장도 저자의 세심함이 느껴지고 각 고전들이 가지고 있는 사상의 장단점을 일목요연하게 정리해주고 있어 이 책 한권으로 동서양철학에 관한 지식정도는 남아있을 것 같다. 그러나 고전은 지식으로 남아 있으면 고전의 기능을 발휘하지 못한다. 고전을 읽을 때 머릿 속에 불꽃이 이는 경험을 한다면 고전이 주는 새로운 세계에 입문하게 되는 것이다. 그때야 비로소 철학하게 되는 것이라고 누가 말했던 것 같다 .ㅋㅋ 사회속에서 고독하다거나 마음에 위안이 필요하다거나 한다면 한번쯤 권해주고 싶은 책이다. 때론 고전이 위로가 되어주기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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