녹지대 1
박경리 지음 / 현대문학 / 2012년 1월
평점 :
절판


1960년대를 살아가고 있는 젊음의 이야기 <녹지대>는 젊은날의 고독과 사랑이야기이다. 녹지대는 마치 옛날식 다방에 앉아 커피를 마시는 기분이랄까. 오랫동안 잊고 있던 낭만과 비어있는 가슴에 잃어버린 것에 대한 향수를 느끼에 해준다. 이 소설은 故 박경리님의 토지이전에 집필된 작품이다. 1960년대 집필되었던 책이라 1960년대를 살고 있는 젊은이들의 고독을 그대로 보여주고 있으며 작품은 대화체로 서술되어 있다. 그래서인지 책을 읽다보면 왠지 과거 흑백영화 드라마를 보는 기분이 든다. 그리고 말투도 약간 느리며 독특하게 느껴지는데 아마도 순수우리말 사용이 많아서 인 듯하다. 또한 읽으면서 너무도 순수한 60년대 작품이라 지금의 문학작품들과 차이를 느끼게 되는데 문체와 언어에서 격세지감이 느껴진다. 그만큼 녹지대는 문학작품의 순수성이 살아있는 청청구역인 작품이다.

 

이 소설에는 세여자와 세남자가 등장한다.

우선 이 책의 주인공부터 소개해 보면 때론 배짱 좋은 사내아이 같고 때론 얄미운 고양이같이 귀여운 구석이 있는 인애부터 이야기를 하자면 , 어두운 그림자라곤 한 군데도 없는 천둥벌거숭이 같다. 인애는 스스로를 바람이 키워주었다고 말하듯이 바람처럼 자유롭게 살며 바람과 같은 시인이 되는 것이 꿈이다. 겉으로 보기에는 아무 생각없이 사는 젊은이로 보이지만 6.25전쟁때 눈앞에서 돌아가신 부모님을 생각할 때마다 공포와 두려움, 그리고 고아라는 외로움에 떠는, 드러내지 않는 아픔을 가지고 있다. 그런 인애를 축으로 친구 은자 또한 양공주였던 엄마의 그늘에서 물질적으로는 풍족하지만 늘 양놈과 붙어먹은 엄마라는 부정不正의 그늘에서 열등감에 시달려 사랑도 감히 하지 못한다. 그런 엄마가 자살하자 은자는 더욱 큰 자의식에 빠지게 된다. 그리고 인애의 사촌 숙배, 부모님이 돌아가신 후 큰아버지 집에 얹혀 살게 된 인애와는 한살 터울의 숙배는 자존심 강한 성격이지만 외로운 부모님 아래 길들여진 탓에 냉정함이 무기가 되어버린 여자이다. 이들의 사랑과 청춘은 '녹지대'라는 노처녀 플레이어가 음악을 틀어주는 어두침침한 지하실의 음악살롱을 중심으로 펼쳐진다.

 

" 녹지대를 모르세요? 한국의 비트족( '패배세대'라는 뜻으로 2차 세계대전 후 생겨난 보헤미안적인 문학인과 예술인의 그룹) 들이 모이는 음악살롱이예요 ."

 

그리고 이들을 둘러 싼 세남자,

밑바닥에 흐르는 따뜻한 인간미가 허술한 감상으로 나타나지 않기 때문에 녹지대의 젊은 층과 어울려도 조금도 우스꽝스럽지 않은 사람인 한철은 은자를 사랑하지만 은자가 자의식에 사로잡혀 번민하는 모습을 바라보며 마음 아파하면서도 은자에게 차마 사랑고백은 하지 못한다. 사랑하는 사람에 대한 배려라고 해야되나? .... 그리고 떠돌아다니는 구름같이 한 오라기도 손에 잡히지 않는 바람같은 남자 민상건, 숙배는 민상건을 사랑하지만 그를 사랑하면 어쩔 수 없이 따라오는 질투와 의혹과 불신을 감당해야 한다는 사실에 괴로워한다. 그만큼 민상건은 바람과 같은 사랑만 한다. 그리고 또 한 남자. 김정현이 있다. 김정현을 사랑하는 인애는 그를 위해서라면 무엇이라도 버릴 수 있으나, 김정현과의 사랑은 늘 어긋나기만 한다.어긋나야만 하는 운명의 장난처럼 말이다. 인애는 그를 생각하면 머리끝까지 저미는 듯한 고독감에 빠지곤 하는데...

 

" 사람을 만나다는 것,나와 꼭 같은 사람을 만난다는 것, 우리 이 세상에 미물 微物같이 태어나 가지고 온갖 것이 다 헤험치며 돌아다니는 이 속에서 끼리끼리 만나는 사람도 있고 만나지 못하는 사람도 있는, 도망치고 잡으러 가고 ... 아 ...."

 

이렇게 세남자와 세여자는 각기 다른 생각과 다른 색으로 1960년대를 살아가고 있다. 이들은 전쟁의 상흔을 간직한채 삶을 이어가야 하는 자신의 운명의 굴레에서 벗어나고 싶어한다. 인애가 자신의 아픔을 잊기 위해 시인의 삶을 위장하고 있는 것처럼 이들이 보여주는 생의 단편들은 현실을 거부하며 이상을 꿈꾸기 위해 녹지대하는 공간에 의탁하는 것이다. 작가는 멋만 부리고 유행을 좇아 남의 흉내만 내고, 진실한 고민도 수련도 없는 여느 젊은이와는 달리 녹지대의 젊은이들은 시대를 아파하고 고민하고 번뇌하며 처절하게 삶을 이어가는 모습을 보여줌으로서 젊은 세대의 고독이 왜 아픈지에 대해서 , 현실에서 도피하고자하는 욕구와 치열하게 싸우는 고독을 이상이 아닌 실체로 다가오게 된다. 조각가 민상건이 그린 조각에서 아름다운 몸뚱이와는 달리 얼굴은 온통 일그러지고 있는 것 또한 시대의 번민에 대한 고독의 실체이다.

그리고 그런 모순적 심리에서 벗어나 삶 자체와 마주하게 되는 과정을 그리고 있다. 주인공을 통한 내부갈등이 1권에는 아직 그려지지 않고 있어 김정현과 인애의 사연에 대한 이야기는 2권에서 다루어 질 것 같다. 오랫동안 잠들어 있던 이 작품은 지난 2008년 서울대 방민호 교수(국어국문학과)가 서울대 도서관에서 연재사실을 발견했다. 당시 신문을 일일이 복사해 원고 파일로 만들어 책으로 엮었다. 60년대의 숨결이 고스란히 담긴 순도 높은 60년대 소설이다. 신문에 연재된 장편소설, 특히 사랑이야기를 큰 줄기로 한 작품들은 통속소설로 치부하는 경향이 있어 지금껏 묻혀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그래서인지 모르지만 때묻지 않은 순수함이 느껴지는 소설이다. 이게 바로 청춘이라는 것을 보여주는 것 같은 싱그러움과 사랑, 고독, 절망 모든 것이 낭만으로 녹아있는 녹지대가 벌써부터 그리워진다. <2권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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