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삼촌 브루스 리 1
천명관 지음 / 위즈덤하우스 / 2012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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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태어나던 해에 이소룡은 죽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소룡은 살아있는 사람으로 오랫동안 텔레비젼을 돌아다녔다. 어린 시절 아비요 ! 하는 이소룡을 보며 어린 시절을 보내서 너무도 친숙한 이소룡의 미국식 이름은 브루스 리 이다. 사춘기가 되어서도 나는 이소룡이 늙지도 않고 사는 이유가 무술을 연마했기 때문이라고 믿었다. 스무살이 되고나서야 내가 태어나던 해에 이소룡이 죽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을 때 , 나는 세상을 향해 왠지 모를 배신감에 떨어야 했다. 그리고 비로서 내가 알고 있는 모든 것들이 이소룡처럼 잘못 알고 있었다는 것을 깨닫기 시작했다. 이소룡은 나에게 세상을 바라보는 방법을 깨닫게 해주는 존재였었다. 이소룡을 보며 꿈을 꾸는 사람은 그때 꿈을 안꾸는 사람보다 많았으니 거기에는 나의 삼촌 브루스 리가 있었다. 이 소설에 등장하는 삼촌은 그때 이소룡을 흠모했던 평범한 사내들 중 하나일 뿐이었다. 그러나 그 사내들중 이소룡을 흠모하는 정도가 세면 세다는 것이 삼촌의 삶을 파란만장하게 만들게 하였지만, 어쨋든 삼촌은 이소룡을 흠모한 나머지 이소룡의 길을 따르고 싶어 했으며 이소룡처럼 저 높은 곳의 별이 되고자 하는 꿈을 꾸었을 뿐이다. 그러나 꿈은 깨어지라고 꾸는 것이고 희망은 부서지라고 있는 거라 했듯이 삼촌은 이소룡으로 인해 험난하다 못해 처절하기까지 한 기나긴 인생여정을 겪는다. 그럼 이제부터 삼촌이야기를 해줄게....

 

 삼촌은 할아버지가 숨겨 놓은 여자가 낳은 아들이야. 권씨 집성촌에서 신망이 두터운 어른이었던 할아버지는 갑작스런 심장마비로 세상을 떠났는데 어찌나 주도면밀했던지 밖에서 딴 살림을 차린 사실을 아무도 몰랐었어. 그래서 어떤 사람이 삼촌이 할아버지의 아들이라며 왔을 때에는 모두 놀라지 않을 수 없었지. 남의 새끼를 키워서 뭐에 쓰냐는 등 말들이 많았지만 할머니는 그래도 삼촌을 거두었어. 그렇다고 살갑게 대하지는 않았지만 그렇다고 미워하지도 않았어. 그렇게 삼촌은 본의 아니게 우리집에 얹혀 살게 되었는데 자신의 출생이 그래서인지,늘 조용하게 지냈지. 그러다가 만난 게 이소룡이야 . 영화를 통해 이소룡을 본 순간 삼촌은 자신의 운명을 결정지은 거지.그러던 와중에

 

동촌읍 유일의 건달 조직인 역전파의 조직원이 되어 어깨에 힘 좀 주고 사는 것이 유일한 야망인 도치의 레이더망에 삼촌이 딱 걸린거지. 겉멋 잔뜩 든 깡패 도치는 삼촌과 상대가 되지 않자 병을 깨서 배를 그으며 다구빨을 세우지만 결국 피가 멈추지 않아 병원에 실려가게 돼. 그 날 이후 나하고 종태는 삼촌을 사부로 모시기로 했고 삼촌은 우릴 제자로 받아주었어. 언제부터인지 잘려나간 팔대신 날카로운 쇠갈고리가 달린 의수를 하고 있는 잔혹하고 무시무시한 악당 갈고리가 꿈에 나타나기 시작했는데 이상하게 삼촌의 비극으로 가는 인생변곡점마다 이 갈고리가 꿈에 나타나. 아마도 갈고리는 삼촌 인생의 비극을 알려주는 예언자인지도 몰라. 하튼 꿈속에 나타난 갈고리와의 싸움은 언제나 삼촌이 쫓기고 쫓기는 것으로 끝이나 항상 삼촌은 갈고리의 꿈을 꾸고 나면 몸이 녹초가 될 만큼 혼곤해져서 한동안 멍하니 앉아 있곤 했어 .

 

삼촌의 인생이 꼬이기 시작한 것은 아마도 그때부터가 아닌가 싶어. 얼굴은 너부대대하고 코옆에 커다란 점이 있는 오순이를 만나기 시작했을 때부터 말이야. 순하게 생겨가지고는 가방에는 온갖 종류의 독극물을 가지고 다니는 여고생 오순이 말야. 오랫동안 정에 굶주려서 누군가 손을 내밀자 덥석 잡았는데 하필이면 그 상대가 독을 잔뜩 품은 살무사 같은 여자였던 거지. 그런 여자가 임신을 빌미로 결혼하자고 하니까 삼촌은 겁이 덜컹 났어. 그래서 결혼은 할 수 없다고 하자 오순이는 다방커피에 청산가리를 넣어서 같이 죽자고 하네... 그런데 거기에 또 도치있잖아.그 도치 위에 토끼란 깡패가 과거 치욕에 대한 복수를 하기 위해 다방에 애들을 몰아서 쳐들어 온 거야. 죽어가는 오순이와 삼촌을 상대로 깡패 수백명이 쳐들어 왔는데, 이런 누가 다방의 불을 꺼서 깡패들은 자기들끼린 줄도 모르고 치고박고 싸웠어. 그 틈에 삼촌은 오순이를 병원에 실어다 주고 동촌읍을 뜨게 되지. 생각보다 일이 커지자 겁이 덜컥 났거든.

 

그래서 서울 시내를 거지처럼 배회하다가 우연히 북경반점이란 곳에 들어가게 되는데 거기에는 성깔은 더럽지만 외로움에 지쳐있는 여사장인 마사장하고 이소룡을 가르쳤다고 하는 사기꾼 칼판장이 있었는데 칼판장은 외로운 마사장의 몸과 마음, 돈까지 훔쳐 달아나고 삼촌은 그동안 모은 돈 다 날리게되지. 삼촌의 액운은 거기서 끝나지 않아. 여전히 꿈에서는 갈고리가 나타나고 여전히 삼촌은 쫓겨다니는 꿈을 꾸고 있었거든. 그런데 반점으로 우연히 엑스트라 배우를 만나게 되어 삼촌에게 이소룡영화에 액션대역배우 오디션이 홍콩에서 한다는 소식을 듣게 되. 그리고 엑스트라배우는 삼촌에게 이소룡과 똑같은 사람은 삼촌밖에 없다는 말로 또 꿈을 꾸게 해. 근데 내가 그랬지. 꿈은 깨지라고 있는 거라고. 삼촌은 홍콩 밀항선을 타지만 그 밀항선은 이름 모를 섬에 표류되었다가 몇달뒤에야 홍콩을 눈앞에 두고 다시 되돌아왔어. 초췌해진 얼굴로 돌아온 삼촌을 반겨준건 다름아닌 입대영장이었지. 그리고 군에 제대를 하자마자 삼촌은 또 사라졌어. 나중에 알고 보니 순화교육을 위해 삼청교육대에 들어갔다는 거야. 그런데 거기서 누굴 만났는 줄 알아? 원수는 외나무다리에서 만난다잖아. 근데 도치가 원수인지 뭔지도 모른채 삼촌한테 안겨서 엉엉 울었다잖아. 그게 삼청교육대는 원수도 사랑하게 할 정도로 무시무시한 곳이거든....

 

이렇게 삼촌 인생여정에서 하나 빠진 게 있다. 삼촌의 여자 , 삼류배우 원정에 관한 이야기다. 2권에서 이야기가 어떻게 그려질지 모르지만 인생의 변곡점마다 삼촌은 운명처럼 원정을 만나게 된다. 원정과 그렇다고 열렬한 사랑을 하는 것은 아니다. 그리고 삼촌의 인생은 꿈을 꾸는 것과 반대로 그려지듯이 이소룡과 같은 별이 되길 원했던 꿈은 깡패라는 조직원으로 별은 별이되 검은 별이 되어 후에 동촌읍을 장악하고 있는 조직의 일원이 된다. 삼촌의 삶에서 느껴지는 것은 우리의 삶의 모든 것이 의도하는 것과는 달리 살아지는 것 , 그것이 삶이라는 것을 작가는 말하고자 하는 것 같았다. 그렇게 의도하지 않았지만 시대의 소용돌이에 휘말린 삼촌은 인간은 인간이기 때문이라는 어쩔 수 없는 운명을 깨달아 가는데 도치가 죽어가면서도 인간임을 포기하지 않았던 것처럼 인간은 인간이기 때문에 살아야 한다는 , 그저 살아지는 것이 우리의 삶이라는 것을 말한다. 삼촌이 삼청교육대의 악마와 같은 교관이 농부였을 거라 생각하면서 " 한가한 농촌에서 봄이면 소를 몰며 씨레질을 하고 가을엔 밤하늘의 별을 보며 휘파람을 불던 젊은이가 어쩌자고 이리 잔혹한 염마졸이 된 걸까? 찔레를 꺽고 삘기를 뽑던 그 손은 또 어쩌다가 사람을 때려 죽이는 잔혹한 도살자의 손이 된 걸까? 삼촌은 정신을 잃을 것 같은 끔찍한 고통속에서도 그 참혹한 현실에 절망을 느꼈다. 에서 보여주듯이 작가는 시대의 아픔을 간접적으로 그려내는 동시에 격동의 현대사속에서 시대에 휩쓸리게 된 인간군상의 모습들을 보여준다. 복수와 맞물려 복수는 비극을 낳게 되는 시대적 상황속에서도 삼촌은 이소룡의 꿈을 포기하지 않는다. 희대의 이야기꾼이라고 불리우는 소설가 천명관이 간만에 돌아온 작품이라 그런지 전보다 더 세련되어지고 더 서사적인 소설이다. 너무 재미있게 읽었지만 그 안에 녹여낸 격동의 한국현대사는 웃으면서 눈물이 나는 장면이다. 비극이 점절되어 희극으로 변한 우리나라의 현대사에 무척 아픔을 느끼며 그 아픔속에서도 우리가 살아야하는 희망을 말하고 있는 소설이었다. <나의 삼촌 브루스 리>에서의 삼촌은 우리시대의 자화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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