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회장의 그림창고
이은 지음 / 고즈넉 / 2011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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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끔 정신없이 빠지고 싶은 책을 만나고 싶을 때가 있다. 아무 생각없이 코미디프로를 보고 머리를 식히는 것처럼 아무 생각도 하지 않고 몰입하고 싶은 책을 만나고 싶을 때가 있다. <박회장의 그림창고>는 마치 그런 코미디프로처럼 느껴진다. 아무 생각없이 읽는 것만으로도 즐거웠던 책이다. 이 책은 세태 풍자소설이지만 엄밀히 따지자면 테크노 스릴러에 가깝다고 할 수 있을 것 같다. 저자의 약력과 관련하여 미술에 관하여서는 어느 정도 전문성이 있다고 보여지기 때문이다. 한동안 세상을 떠들썩하게 했던 기업과 미술의 비자금 관련 사건들과 미모의 큐레이터의 사기행각과 맞물려져 어느 정도의 사실적인 내용을 바탕으로 하고 있는 이 소설은 한편의 한국영화를 보는 듯 한, 어느 정도는 우리에게 익숙한 내용일지도 모름에도 작가의 일필휘지로 써내려 간 듯 빠른 전개에 긴강감 가득한 활극과 아슬아슬한 사기극은 한시도 눈을 뗄 수 없게 만든다.

병든 엄마의 간호와 장애인 동생 기호, 생활무능력자 남친이자 동거남 진구, 동네에서 작은 미용실을 운영하고 있는 소미의 삶은 미래가 보이지 않는 아니 하루 벌어 먹어 사는 것도 힘에 부친 삶이다. 딸린 식구에 혼자 버니 그렇고 엄마의 병간호를 위해 빌린 사채 천만원이 눈덩이처럼 불어나서 삼천백만원이 되자 사채업자의 협박은 점점 소미의 피를 말린다. (사실 얼굴이 이쁜 소미에게 사채업자는 다른 속셈이 있다.)계속된 협박과 독촉에 이제는 마지막이라고 생각한 순간, 친구에게 빌렸다며 삼천백만원을 주는 평생 백수건달인 진구가 소미는 구세주를 만난 기분에 돈을 받지만 , 어째 이상하다.. 게다가 선물이라며 미용실에 걸어놓으라고 주는 그림도 어째 수상하지만 ... 따질 형편이 아니기에 , 돈을 주지 않으면 팔려갈 판이다.

소미를 협박하는 사채업자로부터 구하기 위해 진구와 기호는 일명 차치기- 차공갈협박을 해서라도 돈을 벌어보겠다고 나섰는데 .. 과거 기호랑 차치기를 하다가 기호가 크게 다칠 뻔 한뒤로 차치기를 그만두었는데 돈이 급하게 필요하다보니 배운게 도둑질이라 차치기밖에 생각나는 게 없다. 그러던 중 눈에 뛴 그랜저승용차에 탄 "나 돈많아요라고 써있는 여자"를 발견하고 기호는 어설프게 승용차에 치이는데, 이 돈많은 여자는 다름아닌 세계미술관장 이사벨이다. 이사벨은 한국이름으로 복자라고도 불리는데 그녀의 성공비결은 아무에게나 다 대주는 것과 미술을 사업비리화 시킨 것이 비결이라면 비결이다. 세 띠동갑 세계그룹 회장, 비서실장, 그리고 국회의원들과 그렇고 그런 관계이며 여권의 총수이자 차기 대통령후보에게 비자금으로 "불타는 꽃밭"을 주기위해 가던 길이었고 독하기가 이루 말할 수 없는 여자였으니 이 날 기호는 아무래도 날을 잘못 잡은 것이었다. 아니나 다를까, 사람을 치고도 큰소리치는 여자앞에서 화가난 진구는 핸드백을 뺏는다는 게 그만 이사벨을 치게 되었고 이사벨이 기절한 사이 핸드백과 그림을 들고 튀게 된다. 이유는 단순하게 그림이 과자포장지인 줄 알고 뛴 것뿐인데, 그 그림이 100억이나 할 줄 누가 꿈에나 생각하겠냐구요 ...

100억에 호가하는 그림이 사라지고 진구와 기호는 바보같이 결정적인 증거인 주민등록증을 사고현장에 떨어뜨리고 박노수 회장은 은갈치파를 시켜 어리버리한 좀도둑들을 잡아오라는 명령을 내린다. 아무것도 모르는 소미는 집을 뒤진 흔적과 돈을 주고 갑자기 잠수타버린 진구와 기호, 집 앞에서 포진해 있는 건달들을 보고 사건의 전말을 눈치채고 그림을 들고 우선은 눈에 띄지 않는 모텔에 은신한다. 소미는 자신의 구질구질한 인생에 결정적인 순간이 왔음을 직감하며 박노수회장을 상대로 한판승부를 띄우기로 하는데... 작전은 일명 죽기아니면 까무러치기,

예술도 현실이라는 걸, 아니, 예술만큼 현실적인 것이 없다는 사실을. 예술이 얼마나 돈과 권력에 가까운지는 예술사가 낱낱이 보여주고 있다. 예술가 뒤에는 늘 후원자가 있었고, 예술의 기호는 사실상 그 후원자들이 쥐락펴락했다.

정경유착의 온갖 엄청난 부정부패는 영화나 드라마의 소재로 많이 쓰이는 소재인 동시에 개그프로인 시사 풍자 소재로도 많이 쓰이는 소재이다. 이 소설 또한 그러한 세태를 비꼬는 풍자적인 소설이다. 미술학 박사이며 신춘문예를 통해 등단하여 [누가 스피노자를 죽였을까?], [미술관의 쥐], [코미디는 끝났다], [수상한 미술관], [미술관 점거사건] 등 개성 있는 소설을 꾸준히 선보인 작가 이은은 미술과 기업의 돈세탁하는 과정을 고발하는 동시에 예술이 예술로서 존재할 때 진정한 가치가 있다는 메세지를 통하여 기업이 미술관을 이용하여 비자금을 형성하는 것에 경각심을 일깨워 주기도 한다. 우리나라의 경우 재벌기업에서 문화재단을 만들고 미술관을 운영하는 경우가 유난히 많으며 실제로도 재벌기업이 미술관을 운영하면서 불법으로 조성한 비자금을 미술품을 이용해 돈세탁했다는 혐의를 받기도 했다. 이 사실이 한동안 사회적 문제로 부각된 적이 있었으며 [박회장의 그림창고]는 이런 사회구조적인 모순과 비리를 폭로하는 사회고발적인 내용을 다소 코믹하고 유머러스하게 풍자하여 마치 한편의 영화를 보는 듯한 재미를 주는 듯하다. 심심하고 따분하다면 추천하고 싶은 책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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