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곳은 소, 와인, 바다가 모두 빨갛다 - 언어로 보는 문화
기 도이처 지음, 윤영삼 옮김 / 21세기북스 / 2011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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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세기 디지털시대를 맞이하여 각종 인터넷 , 트윗, 페이스북등의  인터넷이 급속도로 퍼지는 동시에 인터넷 사용언어에 따른 언어파괴 현상에 붉은 신호등이 켜졌다. 과연 이런 언어의 파괴현상은 올바른 것일까? 예를 들면 흠좀무 : 흠 이게 사실이라면 좀 무섭군요’, ‘솔까말 : 솔직히 까놓고 말해서’, ‘듣보잡 : 듣도 보도 못한 잡 것’. ‘지못미 : 지켜주지 못해 미안해’, ‘먹튀 : 먹고 튀다’, ‘엄친아 : 엄마 친구 아들’. 이것들은 최근에 생긴 신조어이다. 이런 신조어들의 특징은 경제적이며, 구어체 중심이라는 것이다. 인터넷 신조어들이 경제적인 이유는 말보다, 타자로 치는 것이 시간이 더 오래 걸리기 때문에 빠른 의사 전달을 위해서 자연스럽게 생긴 현상일 것이다.따라서 이것들은 어느 정도 현대 사회를 반영하고 있다. 현대 사회에서 자주 벌어지는 현상과 그에 대한 인터넷 세대의 반응에서부터 이런 언어들이 발생하고 있기 때문이다. 과거 특정 시기의 특정 방언을 보면 그 지역 사람들이 어떻게 살았는지를 알 수 있다. 인터넷 신조어도 인터넷 문화라는 새로운 문화 속에서,그 문화를 향유하는사람들의 생생한 가치문화를 보여주고 있다. 

이것은 한편으로는 단순한 언어 파괴 현상으로도 볼 수 있지만 한 편으로는 창조적 언어 문화로 볼 수도 있는 것이다. 이렇듯 언어는 시대의 문화와 정신 그리고 사고방식을 그대로 반영한다. < 그곳은 소, 와인 , 바다 모두 빨갛다> 이 책의 제목에서 느껴지는 이질감은 아마도 소와 와인, 바다가 가지고 있는 색깔이 모두 빨갛다고 표현한 것이었다. 이 책의 핵심을 그대로 보여주는 제목이기도 한데 과거 호메로스의 <일리아스>와 <오디세이>에서 호메로스의 상상에 의한 일리아스의 존재가 실존한 나라였다는 것이 밝혀지자 <일리아스>와 <오디세이>에서 가장 많이 인용되는 어구 " 검은 와인빛 바다"에 대한 표현이 이후 언어학자 글래드스턴에 의해 논란의 중심이 된다. 또한 호메로스가  와인에 비유하여 색깔을 묘사하는 대상이 바다와 소 였다. 그럼 호메로스는 색맹일까?

더 나아가 글래드스턴은 <일리아스>와 <오디세이>에서 나타나는 색깔묘사의 기괴함은 호메로스 개인의 특별한 문제가 아니라는 사실을 지적한다. 호메로스의 색깔묘사에 문제가 있었다면 그 당시 사람들은 물론 다음세대들도 그의 작품을 받아들이기 힘들었을 것이다.결국 글래드스턴은 색깔인지 능력이 계발되기 시작한 단계였으며 그 당시 빨간색은 이미 인지된 상태였다. 호메로스가 프리즘을 통해 분산되어 나오는 유채색에 대해선 그토록 입을 다물고 있는 반면 빛과 어둠에 대해서는 그토록 생생하고 시적으로 묘사하는 이유가 바로 발달하지 않은 색깔인식능력 때문이라는 결론이다. 그러나 글래드스턴의 이러한 결론은 문화의 힘을 과소평가한 결론이다. 원주민들의 색깔인지능력을 테스트해본 결과, 어후가 존재하지 않는다고 해서 그 색깔을 보지 못하는 것은 아닌 것으로 밝혀졌기 때문이다. 사람들은 색깔의 차이를 구분할 수 있음에도 그것을 다른 이름으로 부르지 않았던 것이다. 글래드스턴은 호메로스가 '파랑의 가장 완벽한 예' 라고 할 수 있는 남쪽하늘을 어떻게 인식하지 못했는지 납득하지 못했고, 가이거는 고대 문헌에서 하늘을 파랗다고 묘사하지 않는 사실을 놀라워 했으며, 리버스는 원주민들이 하늘을 검다고 한 것을 해명하지 못했다. 색깔 스펙트럼에서 가장 강렬한 색깔부터 인간이 감지하기 시작했다는 마그너스의 주장은 전혀 근거가 없다는 것 또한 밝혀졌다. 고대인들도 우리처럼 색깔을 선명하게 볼 수 있었으며 색깔어휘의 차이는 생물학적 진화를 반영한 것이 아니라 순전히 문화적 진화를 반영한 것임을 20세기가 들어서야 밝혀지게  된다.

 

이러한 색깔논쟁은 언어의 개념을 차지하기 위한 자연과 문화의 끝없이 지속된 전쟁의 승패를 가르는 가장 이상적인 테스트 지표가 되었다. 다른 방식으로 표현하자면, 좁은 색깔띠는 언어가 인류의 본성에 얼마나 깊이 뿌리박혀 있는지, 또는 언어의 차이가 얼마나 표면적인지 알아내기 위한 리트머스 시험지가 된 것이다.-35p

 

수십 년 동안의 연구자료는 색깔개념이 일차적으로 문화에 의해 결정된다는 주장을 , 또는 자연에 의해 결정된다는 주장을 뒷받침하는 근거가 되었다. 문화와 자연 모두 적절한 수준에서 색깔개념에 영향을 미치며, 어느 쪽도 완전한 헤게모니를 누리지 못한다. 결국 자연의 제약과 문화적 요인의 균형에서 언어는 발생하는 것이다. 1858년 글래드서턴, 1869년 가이거, 1878년 마그너스, 1903년 리버스는 문화를 보지 못했고 1933년 레너드 블룸필드, 1953년 레이는 자연을 보지 못했다. 1969년 벌린과 케이 역시 문화를 제대로 보지 못했다. 이 모든 과정을 거쳐 이제 선명한 언어로 보는 문화에 대한 시각을 갖게 된 것이다.

 

오늘 날 지배적인 언어학적  관점에 따르면 언어는 본능이기 때문에 인류의 언어는 모두 똑같다고 한다. 노엄 촘스키 역시 화성인의 눈으로 지구인의 언어를 관찰해보면 모두 똑같아 보일 것이라는 유명한 주장을 했다. 그의 이론이 설명하듯 모든 언어의 깊은 곳에는 보편적인 문법이 작동하며, 똑같은 기저가 존재하며, 구성의 복잡성도 같다. 따라서 언어에서 연구할 만한 가치가 있는 유일한 측면은 언어가 인간의 본성을 표현한다는 것을 보여주는 것이다. [그곳은 소, 와인, 바다가 모두 빨갛다] 저자 기 도이처는  언어, 문화, 자연을 이어주는 가장 중요한 연결고리를 수십년동안 연구해 왔던 학자들의 자료를 바탕으로 그들의 연관관계를 찾아내는데 성공하였다. 문화라는 것은 우리 일상의 모든 것을 대표한다. 최근 보여주고 있는 인터넷 파생언어 또한 우리의 일상을 대표하는 문화의 한 현상으로 보는 것이 타당할 것 같다.이렇듯 언어는 시대의 문화와 정신 그리고 사고방식을 그대로 반영한다. 언어를 통해 보는 문화 , 무척 흥미로운 통찰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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