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탁환의 원고지 - 어느 예술노동자의 황홀한 분투기, 2000~2010 창작일기
김탁환 지음 / 황소자리 / 2011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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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적어도 그대가 좋은 글을 쓰고 싶다면 몇 번씩이라도 허물을 벗고 다시 태어나기를 소망하라. 그대 스스로 몽상의 고치 속에 고립되어 절대고독을 감내하고 등껍질이 찢어지는 아픔을 감내하라. 이외수 선생님의 글쓰기 공중부양에서 이 글귀를 읽고 나서 나 홀로 고민을 많이 했던 것 같다. 왜냐하면 나는 성격상 고민을 잘 하지 않는 성격인데다가 몽상의 고치 속에 고립되어 절대고독을 느끼고 싶다는 간절함이 나를 더욱 괴롭게 했던 것 같다. 가끔 글쓰기에서 단어의 부재와 한계로 인해 내가 쓴 글들을 다시 읽지도 보고 싶지도 않을 때가 많았던 기억이 더 많다. 마치 오래 된 일기장을 다시 펼쳐보면 손발이 오그라드는 부끄러움처럼 , 느껴질까봐,...

 

김탁환의 다른 어떤 작품보다 <노서아 가비>는 내게 무척 신선한 충격을 주었던 작품이었다.  방대한 역사속에 진부하지 않으면서 시대의 아픔을 절절하게 녹여낸 작품이었기에 작가의 상상력 뿐만아니라 해박한 역사지식에 감탄하며 읽었던 듯하다. 처음 시작은 미소를 띠고 읽다가 마지막의 인생의 비장함에 결국 미소를 거두게 되었던 작품이었지만 , 노서아 가비속의 언어들이 팔딱팔딱  뛰어노니는 느낌이  들었던 아주  인상적이었던 작품으로 기억된다. 소설가들의 펜 끝에서 탄생되는 주인공들은 이 시대의 아픔을 가진 주인공들이자  생명을 가진 또다른 육체없는 영혼들이기 때문에 소설가는 때론 내게 위대한 창조자로 느껴지기도 한다. 그런 창조자로서의 소설가들은 생명을 잉태하기 위해 아픔을 겪는 어미들처럼 스스로의 고독속에 가두고 등껍질이 찢어지는 아픔을 감내하는 것이 아닐까... 

 

슬픔이 공포에 이르면, 모든 글자들은 흔들리며 죽음의 춤을 춘다. 그 두려움까지 닿아야 괜찮은 소설을 쓸 수 있다. ..p202

 

 책 [김탁환의 원고지: 어느 예술노동자의 황홀한 분투기]는 2000년 10월 3일부터 2010년 12월 13일까지 15년차 소설가의 10년간의 달콤쌉싸름한 창작 일기다. 창작을 하는 과정과  구상과 집필, 그리고 퇴고로 이어지는 일상은 그의 온몸에 흔적을 남기고 결국  과로가 불러온 성대결절로 수술을 받았고, 컴퓨터 앞을 떠날 수 없는 글쓰기로 인하여 어깨 경련과 마비가 수시로 찾아왔다. 허리 통증 때문에 한의원을 들락거리며 추나치료를 받았고, 소설의 퇴고가 끝나지 않으면 살이 찌고 다시 살을 빼고를 반복하며 머리까지  하얗게 세어버린 소설가 김탁환은 하나의 작품을 완성하기 위해 감내해야 했던 고통들은 책이 나오고 나면 까맣게 잊은 채 또 다시 글쓰기에 몰입하게 되는 지독한 글쓰기 중독자이다.  <원고지>에는 그가 창작을 위해서 영화와 책을 가까이 하는 모습이 많이 나온다. 헤르만 헤세에 관한 이야기에서는 그가  헤르만 헤세에 가지고 있는 남다른  애정을 느낄 수 있었는데 <데미안>은 사실 내가 아직도 잘 이해하지 못하는 작품중의 하나이다.(다시 한번 데미안을 읽어봐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그리고 소설가 김탁환은 책도 무척 좋아한다는 느낌을 받았다. 소설가들이 책을 안읽는다고 생각하고 있었는데 끊임없이 공부하고 읽고 쓰고 하는 모습에서 작가들의 글쓰기 재능은 타고난 것이 아니라 끊임없이 노력하는 자세에서 나오는 빛나는 영감이란 사실을 느끼게 되었다. 부재가 <어느 예술노동자의 황홀한 분투기>인데 책을 다 읽고는 제목하나는 잘 지었다는 생각이 들었다. <원고지> 이 책은 말 그대로 소설가 김탁환의 고통과 황홀과 고독의 기록이기 때문이다. 소설을 쓴다는 것은 생명을 잉태하기 위해 그처럼 위대한 아픔을 감내하는 길인 것이다.

 

소설가의 길로 접어들면서부터 알고 있었지만, 결국 작가는 혼자 자신의 길을 갈 수밖에 없다. 그리고 이 길은 옳고 그름의 길이 아니라 얼마나 극한의 고통을 잘 견뎌 그것을 작품 속으로 녹아내었느냐를 살피는 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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