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를 쓰다 - 이이화 자서전
이이화 지음 / 한겨레출판 / 2011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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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우리나라의 지도자들중의 가장 큰 문제는 무엇일까. 아침에 김문수가 119에 전화한 것을 녹취한 내용을 듣고 이런 지도자들이 우리나라를 책임지고 있는 공직자라는 사실에 너무도 창피한 생각이 들었다.  119에 전화해서 한 나라의 공직에 있는 사람이 한다는 소리가 나 경기도 지도사인데 ... 하며 전화를 해서는 다짜고짜 근무자의 이름을 묻더니 대답을 하지 않자 화를 내는 행위를 대체 뭐라고 설명을 한단 말인가.  이것이 대한민국 정치인들의 실체가 아닐까.... 자서전이나 박사논문 또한 마찬가지이다. 저명한 박사들이 표절로 인한 시비가 끊이지 않고 자신의 저술을 대필하거나 자서전을 돈을 주고 사는 부류가 우리 사회에 널려 있는 지도자의 한 모습인 것이다. 이러 시국에 이 책을 읽으면서 느끼는 감동을 다 표현하지는 못하겠지만 그런 지도자들 사이에서도 자신의 길을 꿋꿋이 역사를 쓰고 만들어 가는 아름답고 양심적인 지도자가 있다. 이이화 선생님의 자서전을 읽으면서 바로 그런 부분들 때문에 자꾸 눈시울이 붉어지다가 하길 여러번 , 책을 다 읽고야 우리나라에도 이런 분이 있음에 감사할 수 있었다.

 

이이화 선생님의 한국사를 아직 읽어보지는 못했지만 역사학자로서 존경해 마지 않았던 분이라 자서전이 출간되었을 때 무척 들뜬 기분으로 구매를 하려고 했는데 참 희안한 것이 이 책이 내 인연이었는지 어떠한 생각지 못한 인연으로 책이 내게 왔다. (다 읽고나서 그 사실에 또한 감사하게 되었다.) 우리나라 역사가가 쓴 자서전은 많지 않을 뿐더러 대부분의 자서전들이 자기 중심적인 서술인 것에 반해 이이화 선생님의  자서전은 역사학자인 이이화선생님의 사적인 부분과 함께 한 격동하는 역사 한가운데에서의 개인이라는 것으로 다른 자서전과  집필의 차이를 느낀다.

 

스스로를 태생부터 정상적이지 않았고 신체조건도 좋지 않았으며 왼손잡이에다 유난스레 병에 시달렸고, 다른 동무들과 어울리지 않고 산속에서 지내며 여느 청소년과는 다른 성장과정을 겪었음을 고백하는 이이화선생님은 가사를 돌보지 않았던 아버지 야산 선생으로부터 가출하여 고아원을 전전하다가 스스로 검정고시를 치르고 고등학교 입한한 것이 학력의 전부가 되었다. 아버지 야산 선생은 당시 시대의 혼란함과 동시에 신구의 학이 상충되는 과정에서 학교를 다니는 것 자체를 일본놈이 되는 것이라는 이유로 산 속에서 제자들과 함께 한문을 가르치는 업을 이루는 과정에 아들들 또한 자연적으로 한문을 배우게 된다. 그러나 어린 마음에 학교를 다니고 싶던 이이화 선생님은 학교에 다니고 싶다는 일념 하나로 가출하여 부모가 다 살아있음에도 고아원에 의탁하여 학교를 다니게 된다. 일제시기와 해방공간과 한국전쟁과 4.19혁명의 시기를 거치면서 생활고에 시달리게 된 저자는 방황과 배회를 거듭하다 자살의 유혹과 겪고 이집 저집 친구집을 찾아다니며 생활하던 중 성공하는 모습을 어머니께 보여드릴 꿈으로 고시공부를 하게 되었는데 5.16쿠데타를 겪은 후 병역기피자가 되어 결국 시험도 취직도 못하고 몸을 피해다니는 처지가 된다. 늙으신 어머니와 동생을 부양해야 되는 상황이 되자 생활전선에 뛰어들어 닥치는 대로 일을 하지만 빈곤의 뿌리는 뽑아지지 않은 채 급기야는 빈대약을 뿌리다가 자살행위로 오인 받아 병원에 실려가게 된다. 고아시절  여관에서 심부름꾼을 하면서 학교를 다닌 전력이 있는지라 궁핍함을 면하기 위해 시작한 웨이터 생활 또한 결국 빚만 떠앉고 그만두었지만 이이화선생님은 이 때 경험한 밑바닥인생의 경험을 온몸으로 느낀 것을 훗날 사회사의 체험적 자료들이 되었다고 한다.  

 

 고졸 학력에 제대로 된 정규 과정을 거치지 않은 아웃사이더 중의 아웃사이더이지만 주역의 대가 아버지 이달 선생에게 배운 한문은 이이화 선생님의 생애 모든 부분에 영향을 미친다. 나는 이이화 선생님의 어린 시절의 이야기를 읽으면서 자식을 키우는 어머니로서 깨닫는 부분이 많았는데 물질적으로 풍족하게 해주는 것이 전부가 아닌 정신적인 유산을 자식에게 남겨주는 것이 진정한 부모라는 생각이 들었다. 어쩌면 이이화선생님 개인으로서는 자식에게 엄하기만 했지 아버지의 역할을 해주지 않는 아버지 야달 선생에게 마음에 한이 있을지는 몰라도 야달 선생이 가르쳐준 한문으로 인해 역사를 바라보는 탁월한 시각과 한문해석에 밝은 것의 바탕은 바로 아버지로부터 받은 소중한 유산이 있었기에  굴곡진 삶속에서도 남들과는 차별화된 시각을 가지고  역사의 왜곡된 부분을 바로 잡을 수 있는 진정성과  역사의 흐름 가운데  아웃사이더로 머물수 밖에 없었던 자신의 전 삶의 과정을 통하여  한국사의 아웃사이더 인물들을 발굴하는 작업을 하는 역사운동을 벌이게 되는 힘이 되어 준 것이다. 이런 역사운동의 작업은 능력과 안목, 치열한 열정이 집대성되어 10년간의 집필과정을 거쳐 22권의 한국통사 [한국사 이야기]를 탄생시켰다.  한반도의 빙하기부터 거슬러 올라가 1945년 해방까지의 한국통사를 22권의 책으로 집필한 것이다 . 한국사를 한 개인이 집필한 것은 전대미문의 작업이었다.

 


1990년 들어 중국 사회과학원에서는 일부 학자를 동원해 일부 학자를 동원해 고구려 역사에 대해 '일사양용(一史兩用)'의 이론을 제기하기 시작했다. 최근에 한국사에 대한 몇가지 의문점이라는 글을 다음duam)에서 본 기억이 있다. 김정일 사망이후 통일의 움직임이 보이고 있는 가운데 중국이 북한을 흡수하기 위한 오랜 작업을 해오고 있다는 증명으로서 또 하나 대두되고 있는 문제가 바로 이 동북공정이다. 동북공정은 한마디로 말해 소수민족 통일국가론에 따라 고조선, 고구려, 발해를 중국 소수민족의 정권으로 주장해 중국역사로 편입시키는 작업이다. 지금 그 동북공정의 작업으로 인하여 고구려를 중국역사에 편입시키려 하는 수작의 글들이 인터넷에 떠돌아다니고 있다. 이에 앞서 그들은 서북공정, 서남공정을 계획하여 현재도 진행하고 있다. 이들 공정은 중앙아시아 국가와 동남아시아 국가를 고구려와 같이 모두 중국사에 편입시키는 작업이다. 이는 바로 중화사상의 부활이다. 고구려 문제가 국민적 관심사로 떠오르자 정부는 고구려역사문화보전회를 발족하여 이이화 선생님을 이사장으로 추대하였지만 이이화선생님은 고구려사를 위해 다른 행동적인 측면에서의 운동을 위해 2008년 이사장직을 사임하였다. 이후 고구려사에 관한 작업은 진척을 보이지 않는데 그것을 이이화선생님은 세가지로 요약한다.

 

첫째 , 이명박 정부가 동북공정이나 고구려 문제에 거의 관심이 없다.

둘째, 보수정당의 몇몇 인사들이 방해 때문이다.

셋째, 서울 광진구청이 경쟁적으로 사업을 벌여 초점이 흐려졌다.

 

우리나라의 현대는 역사상 아직도 풀지 못한 과제들을 떠안고 있다. 동학혁명에 관한 재조명과 역사를 학습으로서만 보는 것이 아니라 늘 답사로 땅의 기억을 찾아 떠나는 역사학자 이이화 선생님의 발걸음 속에 사회지도층의 몰염치한 행위가 만연하고 있는 세태속에서  역사를 바로 세워 나가는 운동가로서 제주 4?3의 진상 규명과 명예회복 운동에 앞장섰고, 한국전쟁시 민간인 학살의 진상을 밝히는 데 온 힘을 쏟고 계신 평화운동가로서 그분의 역사운동속에 깊이 담겨있는 인권과 평화에 관한 노력이 결코 헛된 것이 아니길 바라며 민중의 역사가라 불리우는 그분의 역사속 왜곡된 진실을 찾는 작업을 통하여  우리 세대에 당면한 문제인 동북공정 앞에서 우리세대에 꼭 풀어야할 역사적 과제는 무엇인가에 대한 진실의 이야기에 많은 사람이 귀기울여 주기를 바란다. 이것은 동시대에 살고 있는 사람으로서 숙지해야할 과제이며 아울러 이이화 선생님과 같은 시대에 살고 있다는 사실만으로 존경과 감사를 드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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