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중과 공자 - 패자의 등장과 철학자의 탄생 제자백가의 귀환 2
강신주 지음 / 사계절 / 2011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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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쟁과 살육의 시대였던 춘추전국시대는 무한경쟁과 약육강식으로 고통과 상처에 신음하던 시대였다. 그런 전쟁과 혼란의 시대에 치열하게 맞선 제자백가의 철학사는 공자부터 시작된다. 그러나 저자 강신주는 관중을 제자백가의 철학으로 편입시킨 것이 약간 독특하다. 동양고전 독법인 <강의>에서도 언급되지 않은 관중의 철학을 제자백가의 철학의 시작으로 꼽은 것은 공자의 사상에 결정적인 영향을 끼쳤기 때문이다.  관중은 순수한 철학가의 이미지보다는 정치가로서의 이미지가 강했고 공자는 철학자로 보는 시각을 벗어나 길을 잃고 있던 사람들에게 길을 보여주려던 사람들에게 길을 보여주려는 다양한 시도라는 것이 제자백가의 사상이라고 본다면 관중이 나름대로 현실을 잘 진단했고 동시에 그로부터 새로운 길을 제안했다면, 당연히 공자와 마찬가지로 제자백가의 일원으로 보아야한다는 것이 저자의 주장이다.

 

 관중은 제나라 환공을 도와 제나라를 춘추시대의 첫 패권국가로 만든 주역이다. 그는 중국 역사상 가장 위대한 재상 가운데 한 사람으로 기억되는 출중한 정치가였다. 관중은 급변하는 당시의 정국에 대해 예리한 통찰력을 갖추었을 뿐만 아니라, 국가와 민생에 대한 현실주의적 정치철학을 지니고 있었다. 여기서 관중을 부각시켜야 하는 결정적 이유는 관중과 공자가 각각 춘추전국시대를 관통하는 두 가지 대표적 사유 경향, 즉 현실주의적 사유 경향과 보수주의적 사유 경향의 원류라는 것이다. 관중이 동시대의 혼란한 정치 상황을 그 자체의 논리로 통찰하려고 했다면 공자는 과거 서주 시대의 찬란했던 전통을 매개로 춘추시대를 사유하려고 했다.사실 관중의 정치학적 현실주의와 공자의 철학적 보수주의는 이 시대를 관통한 두 가지 극단의 사유 경향이었다. 다른 제자백가들은 관중과 공자가 열어놓은 두 극단 사이에 갇히거나, 혹은 두 극단으로부터 완전히 벗어나려고 시도했다. 이런 이유로 제자백가에 대한 긴 이야기는 관중과 공자를 함께  아우르면서 시작될 수 밖에 없는 것이다.

 

포숙의 우정으로 제나라 환공의 재상이 된 관중은 화려한 성공과는 거리가 먼 삶을 살았던 사람이었다. 가난하여 상인이 되어 돈을 벌어야 했고 관료의 길에 나서게 된 것도 가난때문이며 결국 군인으로 전쟁에 참여하게 되는 길을 걸었다. 그러나 그의 곤궁한 삶으로 인해 관중은 어느 경우에든 좌절하지 않고 최선을 다하는 현실주의를 배우게 된다. 춘추시대에서 전국시대로서의 변혁의 힘이 충돌했던 시대, 과도기의 핵심이자 전통과 변화의 교차점을 정확히 진단할 수 있었던 것은 바로 과거의 삶속에서 배운 지혜인 현실주의로 인해 가능했던 것이다. 따라서 환궁을 패자로 만드는 관중의 전략은 전체 사회를 일종의 군사 조직으로 만드는 것으로 시작된다. 여기서 관중의 전략을 한만디로 요약하자면 정치란 먼저 주어야 얻는 것! 이다. 서주 시대 이래로 유지되어온 정치질서와 사회질서를 그대로 유지하면서  군사조직을 양성한 제나라는  주변국을 자발적 복종의 논리에 빼지게 만드는데 자발적 논리란 약자 스스로 강자가 자신을 존중하고 이해하고 있다고 믿는 공시에 적대적이지만 않으면 자신을 해치지 않을 거 라는 심리적 안도와 착각의 메커니즘에 빠져 현실을 망각하게 되는 것이다.

 

오므라들게 하려면 반드시 먼저 퍼주어야만 한다. 약하게 하려면 반드시 먼저 강하게 해주어야만 한다. 제거하려면 반드시 먼저 높여야만 한다. 빼앗으려고 한다면 반드시 먼저 주어야만 한다. 이것을 '음미한 밝음'이라고 한다. 유연하고 약한 것이 강한 것을 이기는 법이다.- 노자백서 80장

 

이런 자발적 복종의 논리에 입각한 관중의 철학은 결국 국가나 군주의 편에서 최대한 ' 민중'이 지닌 잠재력을 모색했던 한 국가의 철학자이다. 따라서 광중 정치철학의 핵심이 '민중'이라는 키워드로 수렴된다는 사실을 볼 수 있는데 여기서 공자의 철학과는 반대되는 사상을 발견하게 된다. 관중은 첫째, 민중이 안정적으로 생활을 영위해야 한다고 보았고 둘때 그들을 국가 구조에 편입시키기 위해서는 사유로 상징되는 이데올로기적 통치를 수행해야 한다고 보았다. 그러나 공자는 민중의 경제적 토대는 무시하고 예라는 이데올로기적 통치만을 강조하는 것에서 민중이 가지고 있는 폭발적 잠재력을 무시한채 통치자의 통치 방식에 따라 수종적으로 반응하는 수동적 대상으로 간주했을 뿐이다. 결국 민중을 무시한 공자의 유학을 수용한 제후들은 새로운 시대의 흐름에 적응하지 못하고, 국력이 급속히 약화되었다. 역사적으로 살펴보면 유학사상은 소수 기득권 세력들의 자기 정당화로만 소비되는 사상이었을 뿐이라는 것을 말해주는 것이다. 골자는 보편적인 사랑의 정신으로서 인을, 더 나아가 그런 사랑을 실현할 수 있는 구체적인 윤리 원칙으로서 서를 주장했다. 그러나 이 모든 것이 예라는 최종 범주에 의해서만 그 의미와 내용을 같는다는 점이다. 그러나 공자의 사상이 '시대착오적'이고 가치 전도적'인  것으로 보는 것은 그의 사유 세계속에는 애초부터 민중과 여자들의 자리가 없었다는 점을 들수 있다. 이것은 제나라를 패권 국가로 만들었던 관중의 현실감각과는 상당한 차이가 있으며 공자에게 있어 정치사상은 단지 귀족지배층에 대한 배려였고 미중은 그저 생산농동자로서 귀족들을 봉양하는 존재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었다.  결국 공자의 철학은 관중의 성공에 대한 선망과 정치적 좌절로부터 승화된 것이고, 당시 격동하던 정치경제적 현실과 유리된 관념의 세계를 구축하면서 완성되었다는 것이다.

 

책에는 관중의 국가개념을 수렵과 목축생활로 설명되어져 있는데 우리사회가 목축이라는 것에 길들여지며 우리가 느끼지 못하는 알게 모르게 침해되는 자유에 대한 사유가 있다. 관중이 살았던 2500년 여 전과 현재의 상황을 비교하여 보면 아나키스트들의 주장이 아니더라도 우리 민중은 알게 모르게 자발적 복종에 길들여져 있다는 사실을 느끼게 된다. 따라서 아나키스트들이 목축의 상상력을 붕괴시키기 위해 무던히 애썼던 이유도 한 편으로는 이해가 되기도 한다. 관중과 공자가 흥미로운 사실은 공자를 제작백가의 시작으로 보지 않고 관중으로부터 보는 타당한 이유와 공자의 정치적 이데올로기가 당시에는 귀족, 즉 권력층을 위한 사상에 불과하였다는 점과 공자의 그런 시대착오적인 사상이 후대의 역사가들에 의해 지금의 위상을 만들어 내었다는 사실이다. 혼란과 갈등의 시대는 인간의 삶과 사회의 진면목을 그대로 보여주는 고마운 시대이기도 하다. 관중의 시대를 바라보는 예리한 통찰력은 결국 제나라 환공을 패자로 만들어주었음을 볼 때 시대를 통찰하는 안목을 기르는 것이 정치에서는 가장 중요한 성패가 아닐까 생각해 보았다.  관중의 국가를 정비하기 위해서 군사조직을 정비하는 정치적인 토대를 바탕으로 하여 3권 순자와 오자에서는 병법을 논하는데 이것은 자신이 속한 국가를 부국강병의 길로 이끄는 것을 보여주지만 순자와 오자의 병법 또한 극명한 차이점을 보인다. 3권을 기다리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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