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적 행복주의 반철학사 5
미셀 옹프레 지음, 남수인 옮김 / 인간사랑 / 2011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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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세기는 역사속에서도 가장 역동적인 시대이며 동서양을 막론하고 새로운 움직임이 꿈틀거리기 시작하는 태동의 세기이다. 19세기의 프랑스 철학 또한 독일의 관념주의를 중심으로 많은 철학이 대두되었는데 자본주의와 공산주의, 사회주의와 아나키즘같은 사상의 대두와 영국의 철학이었던 공리주의를 바탕으로 프랑스의 철학사상에 영향을 주고 있었다. 공리주의는 공리성을 가치판단으로 하는 사상으로서 어떤 행위의 옳고 그름은 그 행위가 아니라 인간의 이익과 행복을 늘리는데 얼마나 기여하는 가에 결정되어진다고 보는 사상이다. 따라서 19세기 반철학사는 대표적 철학자로서는  칸트, 헤겔 , 윌리엄 고드윈과 제레미 벤담, 존 스튜어트 밀과 로버트 오언, 샤를 푸리에와 바쿠닌으로서 이들의 사상은  공통적으로 '사회적 행복주의'를  추구하고 있다.   

 

목사였던 윌리엄 고드윈은 프랑스의 계몽사상을 접하고부터 목사직을 그만둔다. 지극히 낙천적이면서도 골수 칼빈주의자요 철저한 평화신학주의자인 고드윈은 이성을 "우리의 자연적 활동에 상응한다."고 단언하고 , 진보는 존재한다고 믿으며, 이 항구적인 운동은 돌이킬 수 없이 최상을 향해 천천히 ,틀림없이, 감지할 수 없을 만큼 조용하게 , 그러나 진정으로 안내해 간다고 말한다. 고드윈은 사유재산의 부정과 생산물 분배의 평등분배에 입각한 사회정의의 실현을 주장하였으며 , 무정부주의의 선구자이자 급진주의의 대표로서 그의 사상은 감옥을 예를 들자면  , 감옥은 그 자체로 좋은 것도 나쁜 것도 아니지만 그것이 제시하는 목표들-  범죄자가 최대 다수의 최대 행복의 힘을 감소시키는 행동을 누적하지 못하도록 막고자 하는 - 에 비추어 좋은 것이기도 하고 나쁜 것이기도 하다. 전쟁도 마찬가지로 악도 선도 아니고 다만 그것이 추구하는 목표에 따라 좋은 것이거나 나쁜 것이다. 전쟁이 예방적이고 방어적일 때 국민의 불행을 미연에 방지함으로써 국민의 행복에 기여하는 또 다른 방식이 될 때 좋은 것이요, 영토의 확장이라는 제국주의적 논리에서 진행되면 나쁜 것이다.

 

공리주의는 쾌락의 계량가능성을 주장한 벤담의 양적공리주의’와 쾌락의 질적 차이를 인정한 존 스튜어트 밀의 ‘질적공리주의’로 나뉜다. 벤담은 3살에 이미 문자를 터득하고 열다섯 살에 교회법학사, 열여덟살에 변호사 자격증을 획득한다. 이후 벤담의 명성은 공리주의라는 용어와 함께 형성되는데 <도덕 및 입법원리의 서론>에서 공리주의 사상의 핵심 원리들을 체계화하여 공리주의를 대표하는 사상가가 되었다.기상천외한 발상으로 벤담은 공리주의적 죽음만이 아니라 사후 공리주의적 운명까지 계획하는데 철학의 역사상 유래가 없는 중요한 개념인 '오토 아이콘'으로 자신을 만들어 자신의 유용성 원칙의 강력한 관념을 상기하게 한다! ... (벤담의 머리를 지바로 방식으로 압축시키고 위는 비워서 시신의 연한 부분으로 채우고 해골은 깨끗이 닦아서 장갑을 끼우고 모자를 씌우고 옷을 입힌 다음, 이서을 여닫이 문을 붙이 장에 넣어 극장처럼 만들어서 공리주의적 장치를 런던 대학의 회의실에 설치한다.)  그는 쾌락을 추구하고 고통을 피하려는 인간의 자연성에 따라 행동하는 것이 개인은 물론 개인의 집합체인 사회에도 최대의 행복을 가져다 준다고 보았다. 그러나 벤담의 공리주의는 제자 존 스튜어트 밀에 의해서 잘못된 공리위에 세워진 사상이라는 결론을 내리게 된다.

 

존 스튜어트 밀은 엄격한 아버지 아래서 엄격한 교육을 받고 자라며 아버지는 하나의 거대한 컴플렉스로 자리잡게 된다. 아버지는 존에게 법의 화신이자 전지 전능한 신과 동급이다. 그것은 존의 어린 시절, 아이시절을 아이답지 못하고 소년다운 시절이 없이 성장하여  연애경험 없이 청년이 된 후 자신의 모습을 바라보았을 때  뇌만 발달하고 관능에 무관심한 성인 남자가 자신이라는 자각을 한 후부터 시작된 컴플렉스이다. 존은 공리주의자였던 아버지의 영향으로 벤담과 자주 만나게 되고 자연적으로 공리주의의 영향을 받게 되지만 끊임없이 마음속에서는 소리없는 반란이 일어나고 있었다. 그러 던 중 운명의 여인 해리엇의 만남과 아버지의 죽음으로 인해 존 스튜어트 밀은 새롭게 다시 태어나게 된다. 아버지라는 트라우마를 극복하게 해 준 동시에 해리엇으로 인해 공리주의적인 삶을 추구하게 된 밀의 상황은 공리주의 실습이라는 탁월한 기회가 된다.

 

존 스튜어트는 해리엇을 사랑하는데 해리엇은 테일러의 부인이고, 해리엇 부부는 슬하에 세 아이를 두고 있으며, 해리엇을 사랑하는 두 남자 중 한 명은 독신에 자식이 없고 다른 한명은 기혼자로서 두 명은 모두 열렬히 한 여자를 사랑할 때, 최대 다수의 가능한 가장 큰 행복을 생성하게 하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가? 달리 부정적으로 말하여 최대 다수에게 가능한 최소 고통과 최저 번민을 주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다? 어떠한 상황이 속은 남편과 부정한 아내와 사랑에 전율하는 독신자에게 최소 불쾌를 느끼게 할까?

 

존 스튜어트 밀은 기본적인 공리주의적 근거들에 대해 벤담과 동일한 생각을 가지고 있다. 요컨대 최대 다수의 최대 행복을 목표로 삼아야 한다. 행복은 고통의 부재로 정의되고 불행은 쾌락의 부재로 정의되며, 쾌락은 유용한 것과 동일시 될 수 있고 유용한 것은 쾌락과 동일시 될 수 있다는 것이다. 벤담과 밀은 이 점들에서 의견이 일치한다. 그러나 밀은 벤담과는 달리 쾌락은  양이 아니라 질이 더 중요하다는 것과  법률에 의한 정치적 제재를 중시한 벤담과는 달리 양심의 내부적인 제재로서 인간이 가지는 인류애를 중시하였다. 

 

"배부른 돼지이기보다 배고픈 인간인 것이 더 낫다. 배부른 바보이기보다는 배고픈 소크라테스인 것이 더 낫다."

 

반철학사를 통해 본 19세기의 공리주의 철학사들의 이야기는 비록 조명받은 철학가들은 아니지만 프랑스 사회에 감도는 분위기를 이해하는 데에는 사상만한 것도 없다. 19세기에는 수많은 혁명이 일어난 혁명의 세기이다. 그 혁명을 받침해 주는 사상은 언제나 존재해 왔고 또한 존재한다. 반철학사가 무척 흥미로왔던 것은 마치 고전을 읽는 기분처럼 철학사들의 개인사와 함께 사상이 성립되는 과정을 추적하는 여정이 지루함 없이  재미있게 다가오는 책이다. 공리주의는 '최대 다수의 최대 행복' '국가의 번영'이 개인의 행복에 대한 보장과 함께 성취되기를 바라고 공동체 설립을 통해 사회적 행복주의를 실현하고자 하였으며 후에 ‘다수결의 원리’에 기초한 민주주의적 정치제도와 사유재산보호의 틀 안에서 점진적인 분배의 평등을 강조하는 복지 사상의 발달에 큰 영향을 끼쳤다. 프랑스의 철학자 미셀 옹프레의 <사회적 행복주의>는 아주 재미있는 사상의 역사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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