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령 하는 밤
강영숙 지음 / 창비 / 2011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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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시는 내게 공포의 존재이다. 사람보다 더 높은 빌딩 사이에 서 있을 때마다 알 수 없는 불안과 공포에 잠식되었던 젊은 날이 있었다. 불안과 공포에 견디지 못할 때 네온사인 사이를 배회하는 것이 일상이었던 시절,. 텁텁한 공기, 답답한 공간 속에서 벗어나고자 몸부림쳐도 다음 날 눈을 뜨면 언제나 제자리였다는 것이 너무 슬퍼서 견딜 수가 없었던 그 날들을 떠오르게 하는 책을 만났다. <아령하는 밤>을 읽고 밤새 몽유병환자처럼 꿈속을 헤집고 다닌 느낌에 사로잡혀 몽롱함 속에 한참을 멍하니 있게 만든 책이다. 강영숙 작가가 무척 생소하게 다가왔는데 현대문명속에서 불안과 공포를 느끼고 사는 도시인들의 심리를 섬세하게 그려내고 있으며 색다른 방법으로 도시인들의 아픔에 다가선다. 책은 일곱편의 단편으로 엮어져 있는데 일곱가지 단편들이 제각각의 매력을 발산하고 있으며 모두가 도시를 방랑하는 순례자의 모습을 하고 있다.

 

<문래에서>는 김유정문학상 수상작으로서 구제역을 소재로 하여 문명의 진보가 자초한 재앙의 모습을 서늘한 감각으로 느끼게 해준다. 구제역으로 인하여 새들이 죽고 돼지들을 살처분하는 피냄새가 진동하는 곳에서  "네바퀴로 굴러가는 자동차가 이렇게 많은데, 북극의 얼음은 계속해서 녹고 있는데, 건물들은 수시로 붕괴되고 전쟁은 여기저기서 터지는데, 암환자 천지인 세상인데, 그런 세상에 아이들을 남겨두고 싶지는 않았다. " 라고 말하는 것으로 현대 문명의 이기를 비판하면서도 생명력이 가득한 한 여자애를 통하여 아직은 문명의 때가 묻지 않은 순수를 가지고 있는 예술가가 존재하는 한  "지금이야말로 사랑할 시간이라고 " 말한다. 그것은 구역질, 악몽, 진땀 , 냄새 등 온갖 고통스러운 기억속에서 타인과의 소통의 모습으로서 치유가 가능하다는 것을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것이기도 하다.

 

<아령하는 밤>은 조금 몽환적이 느낌이다. 언니의 죽음이후 언니의 기억만이 존재하는 외로운 한 노인의 고립된 삶을 통하여 도시의 불안과 공포가 어떠한 것인지를 무척 세세하게 표현하고 있다. 노인이 살고 있는 인근 공장지대에서는 노동자들이 원인 모를 병에 죽어가고 10대 소녀들이 연쇄성폭행을 당하여 살해사건이 일어나고 있는 가운데 자신이 일하는 김밥집 건너 철판볶음집의 노인의 건장한 팔뚝을 본 순간 얼굴과 몸의 비대칭적인 모습에 호기심과 동시에 선망이 된다. 공원을 지나다가 우연히 본 아령하는 남자, 그리고 그와 있던 어린 여자, 그리고 그 다음 날 한 소녀의 죽음, 노인은 아령하는 남자에게 두려움과 공포를 느끼지만 한편으로는 아령하는 남자와 환상을 꿈꾼다. 기괴함과 공포속에서 소통의 상대가 없던 노인은 매일 김밥을 싸고 매일 김밥을 먹고 날이 새면 김밥을 싸는 것으로 일상을 보내고 두려움과 공포의 대상이었던 타자에게 김밥을 던져주고 오는 것으로 타인에게 조심스레 다가간다.

 

<라디오와 강>에서는 친한 킴의 죽음을 잊기 위해 배회하는 모습의 주인공을 통하여 기차가 수시로 오고가는 것 말고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 곳에서의  일주일 휴가는 죽은 킴을  회상할 수 있는 자유를 준다. 그리고 그곳에서 킴의 시신이 발견된 아트센터 지하의 벽에서 복원된 그림을 바라보는 장면은 자신의 기억속에서 킴을 복원해 주인공의 상처의 기억을 재생시키는 것으로 치유해낸다.

 

<죽음의 도로>와 <재해지역버스투어>의 주인공들은 일상과 악몽사이에서 방황하며 끊임없이 죽음을 생각한다. 자살을 꿈꾸지만 자살하지 못하는 여자, 삭막하고 고단한 현실을 회피하는 수단으로 재해지역버스투어에 몸을 실은 주인공들은 평온함 일상 뒤에 숨겨져 있는 재난의 풍경속에서 느껴지는 통각의 상상력으로 인해 현실을 대면하게 된다.

 

<그린란드>,<불안의 도시>는 실종과 배회가 모티브이다. 패기만만한 젊음 속에서 의기투합한 남자들 여섯이 사회에서 느끼는 불안감으로 인하여 배회를 시작하다가 실종하게 된 모습속에서 도시인들의 상실감이 진하게 배여있다. 나이가 들면서 느끼는 일종의 불안감을 섬세하게 그린 작품이다.

 

<프랴파트>와 <문래에서>는 예술적 소통의 희망을 공통적으로 보여주고 있다. 스스로가 암에 걸렸다고 생각하는 주인공은 원전사고로 인한 체르노빌의 아이들과 같은 두려움을 가지고 있다. 그러나 '아케이드'예술가들의 동참으로 프랴파트의 버려진 창고에 버려진 물품들은 예술작품으로 탄생하게 된다. 작가는 이러한 작업을 통하여 인간이 가지고 있는 원천적인 두려움을 예술의 감각과 활기로서 새롭게 살아나는 모습으로  일곱편의 단편 주인공을 통하여 표현한다.

 

 

일곱 편의 주인공들은 모두 현대인들의 고단함을 가지고 각자의 상처속에서 살아간다. 현대문명의 이기로 인한 병폐들 속에서 눈꼽만큼도 없는 희망가운데에 희망을 찾아내는 방법은 바로 그 상처속으로 걸어들어가는 것이다. 작가가 그려내는  현대인의 불안과 공포는 결코 낯설지 않다. 소름끼치도록 그로테스크한 매력을 뿜어내는 이 소설은 현대인의 실존을 둘러싼 불안에 깊은 공감을 느끼게 되는 동시에 강영숙 작가의 이름을 기억하게 되는 소설이다. 또한 소설들의 소재가 되는 자연재해와 환경오염에 직면한 황폐한 도시의 모습과 구제역, 원전사고, 도시개발, 홍수, 살인이라는 소재는 도시인들이 체감하지 못하는 불안의 요소이자 잠재된 의식의 공포로서 도시인들이 체감하는 모호하고 불안한 위기의 삶을 예리하고 사려깊은 시각으로 그려내고 있다. 따라서 일곱편의 주인공의 모습을 통하여 불안과 공포를 체집하는 고독한 순례자들의 모습이 바로 곧 우리들의 모습과 다르지 않다는 것을 깨닫게 된다. 무척 독특하면서도 사실적인 주제의식을 가진 탁월한 소설이다. 최근 읽은 국내문학 중에 가장 인상깊게 다가온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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