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음식문화박물지
황교익 지음 / 따비 / 2011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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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서른이 되기까지 밥을 할 줄 몰랐다. 워낙 바빴던 탓도 있었고 한편으로는 요리하는 것에 많은 시간을 투자해야 하는 것이 싫어 사먹거나 사내식당을 선호하는 편이었다. 그러던 내가 음식을 제대로 배워야 하는 이유가 생긴 것은  프로그래머인 남편이 뜬금없이 식당을 운영하고 싶다고 선언했기 때문이다. 남편을 도와주어야 했기에 밥 한 번 해 본적 없던 내가 요리를 배워야했다. 그러면서 한식을 공부하게 되었는데 음식문화라는 것이 결코 쉽지 않음을 알게 되었다. 봄여름가을겨울마다 자연에서 나는 것들에 관한 요리가 다 틀리고 한식은 마치 기다림의 미학을 인간에게 깨닫게 하려는 것처럼 아주 오랜 시간을 들여야만 완성되는 요리도 무척 많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서양의 음식들은 즉석에서 바로 해먹을 수 있는 요리가 대부분이지만 한식은 봄에 담궈 가을에야 먹을 수 있는 음식이 있는가하면 여름내내 햇볕에 말려두었다가 겨울에야 먹을 수 있는  음식도 있다. 사계절이 뚜렷하고 계절마다 나는 산물이 풍부한 한국의 지리상특성은 어찌 보면 자연이 주는 축복이라 할 수 있다. 이렇듯 음식은 자연에서 온다. <한국음식문화박물지> 이 책은 자연에서 나는 음식이 수천년을 흘러오면서 형성된 음식문화가 어떻게 이루어졌는가를 보고 한국음식의 진정한 가치를 알아보고자 하는 의도로 집필되었다. 따라서 이 책은 거창한 음식에 관한 이야기들이 아니라 바로 우리들이 즐겨먹는 음식에 관한 이야기이다.

 

우리가 먹고 있는 밥상 문화의 기본은 밥과 반찬이다. 이런 밥상의 모양새를 갖추기 시작한 것은 고려시대로 추정하고 있는데 밥과 반찬이라는 조합 앞에서는, 한국인의 모든 밥상을 평등하다라는 사상을 만들어 내었다. 그러나 이것은 실상 수천년을 이어온 계급사회에서 평민들이 밥 한 그릇이라도 편하게 먹기 위한 마음을 반증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또한 식민지 시대 일본이 한국의 많은 것을 변화시켰듯이 한국의 음식문화도 식민지시대를 전후하여 많은 변화가 있음을 볼 수 있다. 그 대표적인 것이 한정식문화이다.

 

읽는 동안 저자의 촌철살인으로 날리는 말로 인하여 웃게 되는데 이천쌀이 조선시대 임금에게 진상한 쌀이라는 믿음에 많은 사람들이 이천 쌀을 먹고 있지만 이천 진상미의 근원을 거슬러 올라가면 가장 일찍 수확할 수 있었던 벼의 품종때문이지만 그래도 한국인에게 중요한 것은 조선 왕이 받았을 수라를 연상하며 밥 먹는 것이 중요하다고 말한다. 또 삼겹살이 생겨난 배경을 따져보고 한국인에게는 삼겹살이라는 부위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삼겹살이라는 그 이름이 중요한 것이고  닭갈비가 소갈비의 짝퉁이라는 것을 , 축산물 중에 달걀이 유독 브랜드 혼란이 심한 것은 달걀이 서민의 식품이기 때문이라는 것을, 호떡이 한국인에게 원래부터 한국음식인 듯한 착각을 주는 것처럼, 우리는 우리가 먹고 있는 음식에 관하여 너무도  무지함을 말한다. 한 예로 2000년대 후반에 한국 정부가 떡볶이를 세계화하겠다고 나섰지만 우리가 먹는 떡볶이가 아닌 세계인의 입맛에 맞게 개조한 떡볶이를 내놓았다. 그러나 우리는 여전히 벌건 고추장 떡볶이를 열심히 먹고 있지 개조한 떡볶이는 누군가 먹겠지 할 뿐이다. 그리고 또 누군가 떡볶이의 세계화를 외치면 환호할 것이라는 저자의 말에 무척 동감하며 읽었다.

 

우리나라가 잘 먹고 잘 살기 시작한 것은 얼마 되지 않았다. 우리 민족은 먹고 살기 힘든 시기를 지나왔고 일제 시대에는 농사를 지어도 쌀을 모두 상납하고 먹을 것이 없어 감자와 고구마를 먹고 살았던 시절도 있다. 먹고 사는 것이 힘든 시기를 지나오면서 이제는 그래도 잘사는 나라축에 속하지만 우리가 하나 잊고 있는 것이 있음을 저자는 말하고 싶은 것이다. 잘사는 것도 좋지만 어떻게 잘 살게 되었으며 우리의 음식의 진정한 가치를 어디서 찾을 것인가에 대한 물음이 있는 것이다. 고추장,된장,김치라는 우리 고유의 음식문화가 있음에도 일본에 한발 뒤쳐진 것도 모자라 진정 가치있는 것임에도 세계화에 맞추려 하다보니 그 진정한 맛을 살리지 못하는 것에 안타까워 하며  한국의 진정성을 찾기를 바라는 간절함이 엿보인다. 우리의 것이 소중한 것이라는 자각이 필요한 시대인 것 같다. 외국에 나갔다가 들어온 사람들은 하나같이 우리나라가 그렇게 좋은 나라일 수 없다는 말을 한다. 우리의 것을 지키고 우리의 자연에서 나오는 좋은 식재료를 활용하여 세계속의 진정한 한국음식문화가 형성되기를 희망해보는 계기가 되어주는 아주 좋은 책이었다.  

 

 

한국인은 자신이 즐겨 먹는 음식을 직시하지 못하는 버릇이 있다....p172

한국전쟁 후 고난의 시대를 이겨 낸 당당함이 부대찌개 냄비에 끓고 있는 것이다.p190

도토리 향 하나 없는 물컹한 식감의 도토리묵을 앞에 놓고 고향의 뒷산을 추억하고 있을 뿐인 것이다.p200

한국인은 두부의 맛보다는 두부의 포장지에 찍힌 브랜드를 너무나 사랑하기 때문이다.-p202

한국인은 이제 전통의 콩 된장 맛을 더 어색해하고 있다.-p205

고추‘장’이 아니라 그냥 단맛이 나는 고추‘소스’인 것이다.-p211

매운 짬뽕이 번창하고 있다는 것은, 한국인의 미각 수준이 그다지 높지 않다는 반증일 것이다.-228

한국인이, 고종보다야 낫지만, 불쌍한 것이다.-p2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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