흑산 - 김훈 장편소설
김훈 지음 / 학고재 / 2011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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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은 격동하는 시대 ,19세기 초 조선의 천주교박해를 다룬 소설이다. 서학은 서양학문으로 받아들여져 서양문물이 흘러들어오면서 주로 지식층들이 학문으로서 받아들이기 시작한 것인데 정조때 이르러서 노론벽파가 자신의 정치세력을 제거하기 위한 목적에 의해 본격적인 박해가 시작되었다. 그리고 그 집권자들의 정치에 의한 박해는 1만의 백성들의 피가 산천을 다 적시고 나서야 끝이 났다.
 

 소설은 정약전을 중심으로 그와 더불어 조카사위 황사영이 주가 된다. 소년등고를 한 황사영은 총명하고 맑고 순수하였는데 정약현의 사위로 처가집에서 삼형제 정약전, 정약종, 정약용과 어울리는 것을 좋아하였다. 그 중 정약종에 의해 천주교를 받아들인 뒤 조정에 나가는 것을 포기하고 조선천주교회의 지도자가 된다. 배교의 조건으로 유배형으로 끝난 약전과 약용은 두번 다시 서학을 입에 담지 않는다. 또한 둘째 약종이 하늘을 바라보며 죽은 일도 마음엔 남아있어도 절대 기억하지 않으리라 한다.

 천한 신분이지만 아전노릇을 하며 횡령과 비리로 공명첩을 사서 포도청의 비장이 된 박차돌은 서학을 했다는 고발로 모진 고문을 받지만 떠돌이 새우젖장수를 하며 천주교 신자들을 밀고하는 이중첩자를 하는 조건으로 산다. 이중첩자를 하는 동안 어렸을 적 헤어진 동생 박한녀가 서학죄인으로 포도청에 잡혀와 있다는 것을 알게 되고 동생이 자신의 이름을 대면 자신에게도 죽음이 찾아올까 싶어 박한녀를 죽이기 위해 찾아간다. 어렸을 적 오빠를 부르던 목소리가 귀에서 맴돌지라도... 정약현의 노비였으나 면천된 김개동과 육손이, 기침이 들어 궁에서 쫓겨난 늙은 길갈녀, 마포나루에서 술과 음식을 팔았던 강사녀, 말을 끌고 길을 걸어간다고 해서 이름이 마노리, 상전인 교하현감과 아들에게 몸을 뺏긴 뒤 무작정 도망쳐 나온 아리, 모두가 서학죄인이다.


 흑산에 들어간 정약전은 새들이 높이 짖는 소리를 들으며 흑산에 살기로 한다. 섬에서 유일하게 글을 읽은 창대를 벗삼아 물고기를 관찰하기도 하고 스스로를 스스럼없이 섬마을 사람들과 섞여 살아간다. 창대의 아버지가 고등어 다섯마리로 모진 매를 맞고 세금부담으로 섬을 몰래 떠나고 정약전은 섬과부 순매의 살에 몸을 실고, 그렇게 살수 없는 자리에서 눌러 앉아 살아가기로 한다.

 

 박웅현이 인문학 강의때 김훈을 미친 표현이라 말하는 것을 보고는 고개를 갸우뚱 했었는데 정말 김훈은 미친 작가이다. 어떻게 이렇게 사람속에 깊은 울음을 심어놓아 흐르게 할 수 있는 것인지... 글 한줄이 이해가지 않아 두번 읽어야 했고 의미를 알수 없어 세번 읽어야 했다. 사실 시간의 흐름과 사건의 진상을 정확히 표현하지 않음에도 어떻게 글 한줄에 이토록 많은 감정을 담아낼 수 있는 것인지 마음이 혼란스러웠다. 정약전이 흑산에 유배가서 처음으로 게를 관찰하게 되었는데 게의 다리를 자르자 새다리가 돋아나는 것을 보고 혹독한 고문으로 다리뼈가 떨어져  나간  서학죄인들의 다리도 지금쯤이면 새다리가 돋아나기를 바라는 글귀에서 순간 멍해왔다. 삶의 고통과 아픔이란 것이 사람의 다리가 떨어져나가  다시 새다리가  돋아나는 것처럼  치유될 수 있는 것이라면 얼마나 좋을까 싶었다.아니면 서학이라는 권력과 정치 틈바구니속에서 죽어나간 서학인들이 게다리처럼 다시 살아나올 수 있으면 얼마나 좋을까 싶었다. 삶이 온통 검을 흑黑에 둘러싸여 있어도 빛이 존재하는 자玆가 되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울음이 흐르도록 내버려두면 언젠가는 물고기가 되어 삶이라는 바다에 닿으리라는 마음으로 책을 덮었다.  자산어보 속에서 물고기들은 솟구쳐서 날아오르고 다른 이름밑으로 숨어들었다. 온통 검은 빛에 둘러싸여 있던 섬 흑산에서 물고기들의 사는 모습에서 빛이 된 자 玆의 이야기는 김훈의 아픔과 고통이 소설 속에 절절히 배여있다.

 

생선 내장에는, 땅의 꽃이나 잎이나 햇빛이나 노을과는 전혀 다른 수많은 색깔들이 포개져 있었다. 영롱한 원색도 있었고 뿌옇고 먼 색깔도 있었다. 순매는 그 내장들을 들여다보면서 물고기 세상은 인간이 범접할 수 없는 낯선 곳이겠거니 여겼다. 한 줌의 내장과 한 뼘의 지느러미를 작동시켜서 바다를 건너가고, 잡아먹고, 달아나고, 알을 낳고 정액을 뿌려서 번식하는 물고기들의 사는 짓거리가 순매는 눈물겨웠다.

 

흑은 무섭다. 흑산은 여기가 유배지라는 걸 끊임없이 깨우친다. 자玆 속에는 희미하지만 빛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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