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노보의 집
새러 그루언 지음, 한진영 옮김 / 도서출판두드림 / 2011년 10월
평점 :
절판


보노보의 집을 난 정말 보노보노의 이야기로 알았다. 사실 사람이란 늘 자신의 생각과 관점에서 사물을 판단하는 것이기에 나 역시 늘 그런 생각의 오류를 가져온다.보노보에 무지했기에 보노보에 관한 자료를 검색하고 무척 흥미로운 사실을 발견했다. 보노보가 매춘하는 동물이란 것이다.  하지만 무엇이든지 관점의 차이이다. 보노보가 자유로운 성생활을 하는 것만을 두고 명명한 관점이고 사실 보노보는 폭력적이고 살인적인 침팬지의 무리들과는 달리 아주 평화로운 모계사회를 형성한 유일한 유인원이라는 긍정적인 측면은 무시한 정의이다. 게다가 보노보는 인간과 가장 닮은 유인원이다. 직립보행을 하고 인간처럼  행동하고 인간의 유전자와는 99% 동질이고 단 1%미만의 차이만 있을 뿐이다. . (침팬지, 보노보, 네안데르탈인 , 인류 모두 같은 조상에서 갈라져 나온 종이다. ) 그러나 그런 보노보가 현재 멸종위기에 처해 있다. <보노보의 집>은 새러 그루언이 멸종위기인 보노보의 이야기를 통해 사람들이 보노보에 대한 경각심과 사랑을 가지길 원하는 마음에 집필했다고 한다. 거의 사실에 근거한 이야기로 집필된 이 이야기는 다양한 사건들을 무척 생생하게 다루는 동시에 가족의 사랑과 부부간의 사랑, 다양한 삶의 이야기와 동시에 동물학대에 관한 경종을 울리는 메세지를 담고 있는 책이다.

 

기자인 존이 보노보의 취재를 위해 켄자스대학교 영장류언어연구소 이사벨 박사를 만나게 되는데  그곳에서 이사벨과 가족같이 지내는 여섯의 보노보들과 핑크머리염색의 조교 실리아와의 만남이 이들의 첫만남이다. 그러나 이 만남이후 존은 매력적인 이사벨 박사에 흥미를 느꼈던 존은 이사벨 박사를 오랫동안 다시 만나지 못할 줄은 몰랐다. 다음 날 영장류언어연구소가  지구해방연맹이라는 테러집단에 의해 동물의 자유를 위한다는 명목에 가해진 테러로 연구소의 여러사람이 죽고 이사벨 박사는 크게 다친데다가 보노보들은 행방이 묘연해진다.

 

보노보의 취재를 한 기사를 동료 캣에게 빼앗기고 신문사에서는 짤리고 소설가를 꿈꾸는 아내 아만다는 실업상황인 상태에서 존과 아만다의 애정관계와 더불어 그들을 더 괴롭게 하는 것은 다름 아닌 존의 부모님과 아만다의 부모님,  가족관계의 대립과 갈등속에서 존은 철없는 아내 아만다가 지구 반대편에 있는 뉴욕에 직장을 구해 떠나게 되자 점점 지쳐가는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마음속에서는  보노보에 대한 생각을 저버리지 못하고 있는데 ,어느 날  텔레비젼에서 보노보의 집이 상영되는 것을 보고 보노보의 취재를 다시 하고 싶어 한다.

 

턱관절이 나가고 코뼈가 부러지고 이빨이 부러져서 임플란트 치료를 받고 화상을 입은데다가 얼굴엔 수술자국, 머리카락은 하나도 없고 온 몸에는 멍을 단 채로 생활하게 된 이사벨은 보노보의 행방을 알수 없자 초조해지고 불법해킹까지 하며 보노보를 찾지만 소식을 알수 없어 슬픔의 나날을 보내고 있는 가운데 어느 날 포르노 방송사에서 방영하는 <보노보의 집>을 보고 경악을 금치 못한다. 보노보의 모계사회에서 수컷들을 통제하기 위해 성행위가 자연스럽게 자리잡게 되는 과정에서 보노보의 끊임없는 성교하는 모습은 사람들에게 엄청남 호기심을 유발시키고 보노보의 집이 선정성으로 인해 방송비를 지불해야 함에도  보노보의 집은 엄청난 인기를 얻는다. 결국 그들이 수화로 대화를 하는 것을 눈치챈 방송관계자들은 그들의 수화를 말풍선을 만들어 방영하기까지 한다. 임신한 마케나는 아기가 나올 때가 되자 본지에게 이사벨을 불러달라고 애원하고  이사벨은 방송을 통해 보노보들이 자신을 애타게 찾는 것을 보고 눈물을 흘린다. 

 

불법해킹을 하는 친구들로부터 포르노 방송사와 약혼자 피터가 공모하여 보노보들을 빼돌리고 영장류연구소를 테러한 장본인들이라는 정보를 입수하게 된 이사벨은 약혼자 피터에게 배신감을 느끼고  현재 방영되는 보노보의 집의 심각한 위생상태와 함께 변호인단을 구성하여 보노보를 되찾기 위해 고군분투하는데 이사벨은 그들의 비리를 삼류잡지기자가 된 존에게 모든 정보를 제공한다.

 

필라델피아 동물원에 화재가 일어나 침팬지 우리안에 아이가 떨어지자 한 고릴라가 아이를 주워 건네주었다는 뉴스가 보도되었을 때 사람들은 고릴라의 행동이 동물원에서 배운 안전교육에 의한 행동으로 사건을 마무리했다. 법으로 규정해도 절대 하지 않는 것이 안전교육인데 설마 동물들에게 엄청난 수고를 하면서까지 안전교육을 한다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일 것이다. 보노보는 인간과의 친화를 위해 인간의 언어를 배웠지만 인간은 만물의 영장이라는 우월함과 거만함으로 보노보에게 배우려 하지 않는다. 침팬지와 같은 종이지만 새끼를 갈갈이 찢어죽이는 수컷의 잔인함을 다스리기 위해 모계사회를 구축하여 평화라는 공존의 방법을 터득한 보노보는 미국에서는 평화의 상징으로서 표현되기도 한다. 인간적인 것이 무엇이고 동물적인 것이 무엇인지는 모르지만 사람들은 자신의 기준에서 보고 싶은 것만 보고 듣고 싶은 것만 듣는다. 보노보를 매춘하는 동물로 보든 평화를 상징하는 동물로 보든 그것은 우리가 보고싶은 것에 달려 있다.. <보노보의 집>은 동물과 인간의 사랑뿐만아니라 가족이라는 테두리안에서의 내면갈등을 섬세하게 다루고 있는 가족소설로 볼 수도 있는 아주 재미있고 매력적인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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