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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버지의 길 1 - 노몬한의 조선인
이재익 지음 / 황소북스 / 2011년 10월
평점 :
절판
운명이라는 말과는 상관없이 살아온 것 같이 생각했었는데 어느 덧 내 나이도 운명처럼 살아왔다는 자각이 드는 불혹이란 나이가 되어 있구나 . 운명은 그런 것 같다. 눈에 보이지 않고 느껴지지 않지만 어느 날 길을 걷다보니 운명이란 어떤 상황에서도 멈춤없이 받아들여야만 하는, 내 의지와는 상관없이 계속 가야만 하는 길이라는 사실로 다가온다는 것을 깨닫게 될때, 그것이 바로 운명이란 단어의 뜻이라는 것을 , 이 책 <아버지의 길>의 주인공 아버지 김길수는 전쟁이라는 운명의 소용돌이 한 가운데에서 일본군에 강제징집되었다가 소련군의 포로로, 독일군의 포로로, 다시 미군의 포로로 붇잡히게 되는데 실제로 그의 이야기는 'SBS 스페셜-노르망디의 코리안' 으로 방송되기도 했다. 역사적인 사실때문인지는 몰라도 읽는 내내 가슴이 두근거리는 전쟁의 긴박감과 참혹한 일본의 만행에 분노를 느끼다가 우리 민족의 비극에 괴로움을, 또한 친일파들에 대한 분노까지 많은 감정의 변화를 마주하는 경험을 하게 된다.
세계 제2차대전, 독일의 히틀러의 광기와 제국주의 앞에서 약소국이 강대국의 먹이가 되던 던 시대, 한국을 먹이로 삼고 중국으로까지 일본의 전쟁의 광기는 뻗어나가 바야흐로 태평양전쟁의 중심가운데에서 중국을 침략하기 위해 계속된 징집에 백주대낮에 조선출신 일본장교 스기타에게 강제로 착출당해 끌려가게 된 아버지 김길수는 결국 여덟살 된 아들 건우를 두고 먼 중국땅으로 가는 기차에 몸을 실게 되는데 길수는 일본인에게 맞은 아픔보다도 더 가슴이 아프다. 만주에서 독립투쟁을 하는 '붉은 여우'라는 별칭으로 더 유명한 엄마 월화가 건우가 다섯 살때 떠났기 때문이다. 아들과 길수를 두고 떠난 월화에게 야속한 마음보다도 아버지로서 건우를 잘 키우고 싶었던 길수는 아들의 생일에 주려고 깍은 피리를 건네주지도 못한채 끌려가는 마음이 오죽하랴... 홀로 남은 아들을 위해서 길수는 꼭 살아남으리라 다짐한다.
열네살 꼬마 영수와 허황된 꿈에 사로잡혀 있는 짜즈보이 경식, 힘이 세고 우직한 정대, 그리고 주인공 길수는 제 23사단, 조선인부대소속이다. 조선인부대를 통솔하는 스기타대위는 조선인출신으로 서자라는 출생의 컴플렉스를 벗어버리기 위해 전쟁이 준 기회를 이용하기로 한다. 일본인처럼 말하고 일본인처럼 행동하면서 조센징을 비웃는 것이 그가 누릴 수 있는 신분상승의 도구의 행위였기에 스기타는 잔인하다 못해 사악하고 조선인들을 괴롭히는 것에 말할 수 없는 만족감과 희열을 느낀다. 그 중에 유독 말이 없고 영수를 가족처럼 챙기는 길수의 애틋한 모습을 보자 이상하게 그를 망치고 싶어하는 파괴욕이 자리잡고 이에 길수를 눈엣가시처럼 생각하게 된다.
위안부여성들의 이야기는 참혹함 그 이상이다. 위안부여성의 이야기를 다룬 역사소설은 많았지만 이 책처럼 사실적으로 표현하지는 않았던 것 같다. 정대가 사랑했던 명선아씨가 같은 장소에서 위안부에 끌려온지는 모르고 명선아씨를 위해서 살아야한다는 정대의 말이 가슴을 울리고 노몬한 전투에 나가기 이틀 전 끌려온 '붉은 여우'가 알몸으로 23사단에 전시된 것을 바라보는 길수의 텅빈 눈동자는 굳이 설명하지 않아도 아픔이 전해온다.
이재익 작가의 첫 역사소설, <아버지의 길>은 과거 일제강점기를 배경으로 한 역사소설 여명의 눈동자가 떠오르기도 하고 태백산맥이 떠오르기도 하지만 더욱 애잔하게 느껴지는 이유는 바로 아버지의 마음, 가족이란 이름의 애끓음때문이다.아버지와 아들의 만남이나 어떤 표현은 없음에도 큰 파도가 오면 번쩍 들어서 파도를 피하게 해줄거라는 약속을 지키기 위해 살아야만 했던 그 마음이 소설 전반을 읽는 동안 마음속에서 떠나지 않은채 가슴에 맴돌아 남아있어 읽는 내가 괜히 아들걱정에 눈물이 난다. 가슴 졸여가며 읽다가 결국 책 위로 눈물한방울이 떨어진다. <2권에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