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삿갓 - 방랑시인, 정해 홍신한문신서 29
권오석 / 홍신문화사 / 2001년 5월
평점 :
품절


김삿갓, 이름은 익히 들어 알고 있으나 정확히 어느 시대의 사람인지 확실히 알지 못하고 있었는데 책으로 만난 김삿갓의 파란만장한 일생을 읽는 동안 계속 웃음이 났다. 그것은 그리스인 조르바를 읽을때와 같은 기분이었는데 일반인인 우리의 삶에서 가장 부러운 자유라는 이름의 상징때문이다. 도덕과 사회적규범에 얽매여 있는 우리와는 다르게 그런 것과는 구애받지 않는 자유인들이 한 편으로는 얼마나 부러운 삶이던가. 그러나 김삿갓 시인의 삶이 자유로운 반면에  자신의 전생을 바쳐 자학과 방랑으로 한 생을 살았으니, 가슴깊은 곳에 맺힌 한 또한, 그누구도 짐작조차 할수 없는 것이리라...

 

안동 김씨의 세도정치가 극에 달하고 있던 순조때에 안동 김씨 일가였던 김삿갓이 이름없는 가문이 된 것은 홍경래의 난을 만나게 되면서이다. 홍경래의 난을 진압해야 했던 김삿갓의 할아버지 김익순이 홍경래에게 항복하면서 행한 파렴치한 행위로 인해 김익순의 가족은 폐족되게 된것이다.당시 6세였던 김삿갓은  어릴 적의 기억을 하지 못했고 삼형제를 이끌고 어머니는 강원도 영월에 숨어지내고 있었다. 출생을 숨긴채 이름모를 농부로 살던 김삿갓은 백일장이 치러진다는 소식을 듣고 자신에게도 기회가 왔음을 기뻐하며 백일장에 참여한다. 하지만 시제는 바로 김익순의 죄를 통탄하는 것이었으니 김삿갓은 김익순이 자신의 조부인지는 모른채 신랄한 비판을 하고 이어 그 시는 장원에 당당히 뽑히게 된다. 이 황당한 현실에 어머니는 통곡하고 비로소 자신의 핏줄을 알게 된 김삿갓은 밝혀진 출생의 비밀앞에 좌절하여 길을 나선다. 이때부터 김삿갓의 방랑생활이 시작되었는데 그가 삿갓을 쓰고 다니는 이유는 스스로를 죄인이라 생각하고 큰삿갓을 쓰고 다녔기 때문에 붙은 별명이다.

김삿갓이 자신의 슬픔을 노래한 시에서  김삿갓의 슬픔을 느낄수 있는데

산에 아들을 묻고 울었는데 또 아내를 장사지내니

바람 마저 시고 햇볕은 얇으매 돌아보니 처절한 기분이로다.

문득 집에 돌아와보니 절간 같고,

홀로 닭이 우는 새벽녘까지 차디 찬 이불을 두르고 앉아 있는 신세로다.

김삿갓의 상실감이 아들을 묻고 아내를 장사지내고 난후의 기분을 떠올려 보면 사뭇 그의 절망감이 어떠했는지 알 것도 같다. 안동 김씨의 세가 절정에 다다른 시대에 김삿갓은 안동 김씨라는 이유로 벼슬을 할수 없는 떠돌이가 되었으니 김삿갓에게 다가온 현실은 얼마나 가혹한 것인지...

 

전국을 다니면서 그자리에서 즉흥시를 남겼는데 참으로 우스운 것은 한량처럼 사는 김삿갓이 여복이 많았다는 사실이다.  어쩌다 만난 기생과 하룻밤을 보내고 과년한 처녀와 엉겹결에 혼사를 치르고 이름 자를 남겨달라는 과부의 부탁까지, 김삿갓은 실로 많은 여자를 만난다. 그러나 그런 방황속에서도 그가 느끼는 것은 오로지 불평과 불만의 세월을 보내는 것 뿐이었다. 계속된 여자와의 탈선행위는 심중의 울화의 발산으로서 시에서 표현되는 김삿갓의 울분은 현실을 자포자기하며 세상을 조롱하는 것 외에는 별다른 방법이 없었다.

 

네다리 소나무상에 죽이 한 그릇인데

하늘빛과 구름 그림자가 함께 떠돌고 있구나.

그러나 주인이시여, 부끄럽다고는 하지 마시오.

나는 본디 물에 푸른 산이 드리워져 있는 것을 사랑한다오.

 

방랑을 하며 지내는 동안 어머니가 돌아가시고 아들이 장성하였고 형님도 돌아가셨고 철종이 죽고 헌종이 즉위하였다. 헌종시대에 들어 나라 안팎이 매우 어수선하였으며 천주교 대탄압이 계속되는 와중에도 김삿갓의 방랑생활은 여전했는데  가슴속에 산을 들어 뽑고 바다를 덮을 만큼의 재주를 품고 있으면서도 때를 만나지 못한 가슴속 깊이 맺힌 한을 시에 다 쏟아부으려는 것처럼... 그러는 사이 김삿갓은 자신에게도 늙음이 찾아왔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책에는 한문시를 저자가 해석으로 달아놓았는데 시가 무척 발랄하다. 신선하다는 표현이 맞겠지만 발랄하다라고 표현하는 것은 김삿갓의 성격에서 느껴지는 분위기 때문이다. 정처없이 무작정 걷기를 평생을 한 김삿갓, 자신의 한 생을 다바쳐 부조리한 사회를 풍자하는 것이 인생의 전부였던 그에게서 또다른 시대를 초월한 자유를 느꼈다. 또한 그의 이야기속에서 보여지는 사회분위기에서  조선시대후기가 얼마나 부정부패와 탐관오리가 많았는지를 잘보여주기도 한다. 그리고 그런 사태를 꼬집는 그의 시를 읽으면 감탄이 절로 나오는 풍자와 해학이 있다. 조선후기 권문세가의 세를 누렸던 안동김씨 중에 이렇게 불행하게 살다간 또다른 안동김씨, 김삿갓은 시대가 낳은 비운아였다는 사실을 기억해주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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