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하일기 1 - 새 번역 완역 결정판 열하일기 1
박지원 지음, 김혈조 옮김 / 돌베개 / 2009년 9월
구판절판


내가 연암 박지원에 대해 관심을 갖기 시작한 것은 근래에 들어서이다. 안대회 저< 천년 벗과의 대화>에서는 연암 박지원의 한 글귀가 내 마음을 사로잡았던 것이다. 사람은 원래 자신이 관심하고 있는 것만을 보기 때문에 아마도 박지원의 글들이 내 관심사였던 모양이다. 참으로 희한한 것은 어렵게만 생각했던 고전 속의 위인들이 자꾸 내 마음에 들어오는 모양이 마치 천년 벗을 사귀는 기분이니 연암 박지원의 말처럼 인연으로 만난 벗이라 할지라도 그와 나는는 대화가 무료하고 함께하는 행동이 구차하다면 차라리 홀로 책 속에서 벗을 찾는 것이 낫다는 말이 십분 이해가 간다. 한 편으로는 연암 박지원의 모든 것이 궁금해진 이유도 있다. 자유롭고 호방하며 뛰어난 문장가임에도 출사하지 않고 자신의 뜻을 굽히지 않으며 살기가 쉽지가 않았을 터인데 평생을 가난에 허덕이면서도 비굴하지 않으며 성리학을 하는 양반들에게 비난을 받아도 전혀 꺼리김없이 살았던 연암 박지원의 진정함을 알길 바라며 책을 펼쳤다.



[열하일기]는 모두가 알 듯이 중국기행문이다. 1780년 청나라 건륭 황제의 70회 생일을 축하하는 사절단으로 연암 박지원도 가게 되었는데 이 때까지 연암은 이렇다할 벼슬을 하지 않은 상태이다. 삼종형 금성위 박명원에게 부탁하여 사절단에 오르게 된 연암은 말 등에 앉아 중국의 모든 것을 관찰하여 기록하였는데 열하일기를 가지고 조선에 오자 열하일기는 사대부들에게 비난을 받게 된다. 이 비난의 이유는 여러 가지 였는데 열하일기가 비난의 대상이 되자 정조에게 까지 불려가게 되지만 정조의 뜻에 의해 서민들도 읽기 쉽게 한글로 번역되기도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비난을 받게 되는데 이유는 열하일기 안에 당시 사회 제도와 양반사회의 모순을 신랄하게 비판하는 내용을 독창적이고 사실적인 문체로 다루었기 때문이다. (심지어는 정약용 같은 일부 지식층에게도 비난을 받는다.)



읽는 동안 나 역시 실학파였던 연암 박지원에 대한 몇가지의 오해를 하고 있었음을 발견하게 되는데 그것은 박제가가 북학의를 저술할 때 한 말 때문이다. 박제가는 청나라에 박지원보다 먼저 다녀왔는데 그 중에 청나라의 문물을 받아들여야 한다며 언문을 쓰지 말고 모든 백성이 청나라 말을 배워야 한다고 주장했기 때문에 실학파들이 지나치게 청에 치우쳐 있다고만 생각하고 있었던 것이다. 가끔 나는 한가지로 많은 것을 판단하는 오류를 범하곤 하는데 바로 그런 오류를 범하고 말았던 것이다. 박제가의 지나친 격정의 말을 실학파 모두의 뜻이라고 생각하게 되었던 것이다. 하지만 열하일기 안에서 만나는 연암 박지원의 생각들은 무척 사리에 밝고 생각이 깊으며 조선을 사랑하는 마음이 느껴져 나의 잘못된 생각을 바로 잡아주었다.



열하일기를 번역한 김혈조는 책의 앞머리에 열하일기를 읽는 방법을 알아야한다고 말한다. 그것은 열하일기에는 연암 박지원의 진정성, 책을 집필한 진정한 의도가 담겨져 있기 때문이기도 한데 그것은 열하일기를 읽으면서 꼭 참고해야할 것 같다.

첫째가 미지의 세계에 대한 정보의 제공이다.

두 번째가 선진 문화 문물을 본받아야 한다는 북학의 내용이다.

세 번째가 천하대세를 어떻게 전망했는가? 하는 주제이다.

네 번째가 각계각층의 다양한 인간 유형에 대한 묘사와 인물의 창조이다.

다섯 번째가 선비 곧 지식인의 역할과 처신에 관한 문제이다.

“조선의 지독한 가난은 따지고 보면 그 원인이 전적으로 선비가 제 역할을 못한 데에 있다.”



역사는 현재의 역사를 대변해준다고 했다. 그리고 그 역사를 움직이는 주체는 인간이다.현대를 살아가는 우리에게 위 다섯가지의 주제로 보는 열하일기는 연암 박지원의 진정성과 함께 열하일기가 세계 유수의 고전 반열에 편입시켜야 하는 지에 대해서도 사유하게 될 것이다.



책의 시작은 압록강을 출발하여 요양에 이르는 <도강록>부터 시작하는데 중간중간 연암의 재치있는 언변에 웃음이 나기도 하며 넓디 넓은 요동 벌판을 마주하며 한바탕 통곡하기 좋겠다는 대목에서 연암의 깊은 생각을 알 수 있다.



<성경잡지>는 심양의 이모저모를 다루고 있는데 심양에서 체류하며 겪은 내용을 중심으로 구성되어 있다. 이 장은 내가 제일 재미있게 읽은 장인데 연암이 촉과 오나라의 젊은이들과 함께 밤을 새워가며 이야기를 꽃피우는데 젊은 사람들이 연암의 깊은 학식과 재치에 반하여 외국인임에도 인연을 소중히 하는 모습이 사뭇 정겹다. 더욱 재미있는 장면은 연암이 장사하는 사람들에게 자신의 필력을 뽐내려고 글씨 써주는 대목에서는 왜 그렇게 웃음이 나는지... 연암의 호기심은 거기에 그치지 않고 중국의 상가집을 구경하고 싶어 몰래 들어가 보기도 하고 청나라 여인들의 모습을 살펴보기 위해 곁눈질로 살펴본 후 글로 쓰는 모습이 떠올려지기도 한다. 모르는 사람이 봤으면 아마 오해하기 딱 십상이다.



<일신수필>에는 청나라의 풍물과 체험을 쓴 내용인데 서문과 수레에 관한 관찰이 들어있다. 7월 15일의 일기에 연암은 중국의 장관에 대해서 이야기하는데 많은 사람들이 중국의 경관에 대해 경탄하지만 스스로를 삼류선비라 칭하며 중국의 장관을 이렇게 말한다. “ 정말 장관은 깨진 기와 조각에 있었고, 정말 장관은 냄새 나는 똥거름에 있었다고.” 여기에는 연암 박지원이 조선 선비들이 농공상을 천시하여 회피하지만 중국의 법이 농공상을 발달시키기 위한 법과 제도가 잘 발달되었을 뿐 아니라 백성들이 농사짓기 위한 기본적인 틀을 잘 마련해 놓았음을 보여주는 것이다.



<막북행정록>이 1권의 마지막인데 북경에서 열하까지 가는 동안의 체험, 특히 고생하면서 가는 길의 여정을 기록하였다. 여기에서는 사절단의 한명이었던 박래원과 이별을 하며 이별에 대한 괴로움을 생각하는 장면이 있는데 산문형식으로 되어있다. 연암은 이별과 함께 소현세자를 떠올리며 시를 읊는데 소현세자를 생각하는 연암에게서 신하의 충정이 느껴지기도 한다.



책에는 그 시대에 사용되었던 물건들에 대한 설명과 과거의 모습과 오늘날의 모습, 중국의 역사에 등장했던 인물들의 사진설명과 함께 연행의 전 코스를 답사하여 요동의백탑의 사진, 근년에 새로 복원한 광우사의 모습등의 사진을 수록하여 열하일기를 더욱 생생한 기행문으로 만들어주고 있다. 책을 읽으면서 최근 열하일기를 세계 유수의 고전 반열에 편입시켜야한다는 주장은 무척이나 타당한 주장이라고 느꼈다. 또한 열하일기가 기행문의 형식뿐만이 아니라 산문형식을 띄고 있으며 연암의 창작방법은 무척이나 참신하다. 어렸을 적 국사시간에 열하일기의 일부분이라도 수록되어 공부하였더라면 조금은 실학파에 대한 긍정적인 사고를 하고 있었을 텐데 하며 우리나라 교육에 아쉬움을 토로해본다. 그러나 지금이라도 열하일기를 읽게 되어 감사한 마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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