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서운 그림 - 아름다운 명화의 섬뜩한 뒷이야기 무서운 그림 1
나카노 교코 지음, 이연식 옮김 / 세미콜론 / 2008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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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에 프로이트의 마지막 학설이었던 죽음본능에 관한 책을 접한 적이 있었는데 인간에게는 죽음을 향한 본능적인 충동이 있다는 학설이다. 가끔 스릴러를 읽거나 잔인한 공포영화를 보며 왠지 모를 짜릿함을 느끼는 나 자신을 보며 마치 내 안에 무의식적으로 공포나 무서움을 느끼고 싶어하는 숨겨진 본능이 꿈틀대고 있는 것을 자각하기도 한다. 그런 공포나 무서움에 대한 갈망때문이었을까. 왠지 무서운 그림을 읽고 싶다는 생각이 든 것은.....

사실 이 책은 그림보다 그 그림이면에 숨겨진 진실에 더 무서운 책이다.또 고백하건대 나는 그림에는 문외한이라 명화를 보며 이야기를 즐기고 싶은 마음이 더 강한 유혹이었다.하지만 조금 충격적인 것은 고전을 읽을 때 우리가 작가의 숨겨진 의도와 작품이 품고 있는 역사를 이해하려고 하는 것처럼 그림도 마찬가지의 목적을 가지고 있다는 것이다. 그림에서 시대의 역사와 화가가 느끼는 감정을 이해한 후 그림을 보는 기분은 무척이나 놀랍고 황홀하다.

 

예를 들면 에드가 드가 의 [무대 위의 무용수]라는 그림을 보면 그저 아름다운 발레리나가 춤을 추고 있는 것으로 보이지만 사실 그림 안으로 들어가보면 검은 그림자가 숨어 발레리나를 보고 있는 것을 보게 된다. 드가가 검음 그림자를 그린 이유는 무엇일까. 그리고 그 검은 그림자는 누구일까. 아마도 저자는 검은 그림자의 정체를 당시 시대의 풍조를 비판한 것으로 보고 있다. 일하던 여성이 경멸당하던 시대에 더군다나 조신한 여자는 긴 스커트를 입어야 했던 시대, 무용수를 지망하던 소녀들 거의 전부가 노동자 계급출신이었던 것은 당연하다. 그런 계급의 사다리에서 올라가려면 어쩔 수 없이 좋은 후원자를 만나야 하는 방법밖에 없었으니 점점 무용수들은 후원자에게 잘보이려 하였고 자연적으로 후원자가 모든 공연에 관여하게 된 것이다. 그렇게 화려하고도 아름다운 발레역사의 시작은 이 그림하나로 설명이 된다.

 

그리고 그림처럼 비극적인 삶을 산 주인공 뭉크의 이야기도 무서운 그림에는 빠질 수 없는데 뭉크의 [절규]를 볼 때마다 느끼는 거지만 붉은 하늘과 뒤틀린 풍경에서 느껴지는 뭉크자신의 혼란스러운 감정과 존재의 불안이 느껴지는 그림을 볼 때마다 항상 무섭다. 그가 느끼는 고통이 그림에서 고스란히 느껴지기에.....

 

그리고 정말 무서웠던 그림은 고야의 [제 아이를 잡아먹는 사투르누스] 그림이다. 사투르누스는 로마신화에 등장하는 신이다. 아버지의 저주 ‘너도 네 자식의 손에 죽을 것이다.’라는 저주로 태어나는 아이를 모두 잡아먹었지만 결국 여섯 번째 아이에게 죽음을 당하는 사투르누스는 누벤스도 그렸지만 둘의 그림의 극명한 차이를 보여주는 부분이 있다. 바로 눈동자이다. 이 눈동자를 보며 정말 깜짝 놀랐는데 공포의 광기를 그대로 보여주는 눈동자를 그린 것이 바로 고야의 눈이다. 비정함과 냉정함이 번득이는 지배자의 눈, 고야가 이 그림을 그릴 당시 나폴레옹전쟁군의 침공이 있었는데 그때 고야는 고문,강간,총살,교살,사지 절단... 하는 행위들을 지켜보게 되었고 또 그림으로 그렸다. 눈앞에서 지옥을 경험한 그는 이후 청력이 소실되자 모든 신경을 눈에 쏟아 부었다. 고야는 자신이 경험한 지옥에서 빠져나오기 위해 사투르누스를 그려야 했으며 그림을 완성한 후 지옥에서 벗어나게 되었다. 고야는 자신의 모든 공포와 고통과 분노를 사투르누스의 눈을 통하여 완성한 것이다.

 

 



 

보티첼리의 [나스타조 델리 오네스티의 이야기]는 네 개의 패널로 나위어져 있는데 그림만 봤을 때는 참 이상한 그림이다라는 생각을 했다. 네 개의 패널에 공통적인 것은 알몸의 여자를 사냥개가 허벅지를 물고 있는 것이고 그리고 그 여자를 따르는 백마탄 기사이다. 근데두번째 패널에서는 죽은 여자의 창자를 꺼내 사냥개에게 주는 그림을 보고 더 이상한 생각이 들었다. 이 그림에 숨겨진 이야기는 더욱 놀랍다. 알몸의 여자와 백마탄 기사는 [데카메론]에 나오는 나스타조와 파올라의 이야기인데 사랑하는 여자를 향한 사랑의 표현은 이러헥 가학적이고 피학적인 이루 말할 수 없이 무서울 지경으로 까지 표현되어 지는 것이다.

 

죽음과 광기를 품고 있는 그림들, 그리고 그 그림을 그린 화가들, 공포와는 무관해 보이지만 공포가 될 수 있는 그림들을 보고 나니 간담이 서늘해지기도 한다. 평생을 광기에 사로잡혀 살았지만 광기가 사라지자 그림 한점 못그린 뭉크, 강간을 당한 분노를 실어 홀로페르네스의 목을 베는 그림을 그린 아르테미시아를 통하여 화가의 개인사를 관통하여 들려주는 숨겨진 이야기들에서 진정한 공포가 무엇인지를 느끼게 된다. 그것은 저자의 말처럼 무엇보다 공포스러운 것은 육체의 죽음이 아닌 정신적인 죽음 바로 ‘광기’라는 색다른 공포를 체험하기 때문이리라. <무서운 그림>은 그림을 보는 것만이 아닌 그림을 느끼기의 진수를 알려주는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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