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탈진 음지 - 조정래 장편소설
조정래 지음 / 해냄 / 2011년 7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우리 부모님은 충청도가 본적이시지만 서울에서 자리잡으신지가 얼추 40년이 되어간다.바로 이 책에서 보여주는 ‘무작정 상경 1세대’가 우리 부모님께 해당되지 않을까 생각해보았다. 내가 자라면서 아버지는 언제나 신세를 한탄하고 돈 없어 괴로워하고 자식이 많아 괴로워하셨는데 어렸을 적에는 그런 아버지의 모습을 무척이나 싫어했다. 그러나 내가 커서 부모가 되어보니 이제서야 내 부모님의 심정을 헤아려본다. 삶이란 것이 원래 그런것이더라 , 돈이 없으니 신세가 처량하고 돈 없어 보니 사는 게 녹록치 않음이다. 가끔씩 나와는 먼 이야기로 느껴졌던 ‘유전무죄 무전유죄’라는 세상이라는 것이 이해가 가고 있으니 말이다.

 

이 책의 화자는 복천영감이다. 복천영감은 아픈 아내가 죽고 나자 목구멍이 포도청이라고 입에 풀칠하기에 바쁜 시골을 버리고 서울가면 무조건 쌀밥을 먹는다는 꿈을 가지고 두 아이를 데리고 서울로 무작정 상경한다. 그러나 서울에 꿈을 안고 왔지만 막상 서울은 눈감으면 코베갈까 걱정을 해야하는 두려움의 도시였다. 서울 사람들의 몰인정에 치를 떨고 냉정함에 질려가며 복천영감은 고향사람을 만나 도움도 받고 의지를 하는데 그네들의 삶 또한 복천영감보다 더 못하면 못했지 나은 사람은 없다.

 

서울에 올라오자마자 만나게 된 떡장수 아줌마로부터 먹고 사는 방법을 모색하게 되고 막노동판을 전전해보고 지게꾼일을 해보려다가 영역침범이라며 몰매맞고 땅콩장사를 하다가 리어카를 눈앞에서 도둑맞고 결국 밑천없이 장사하는 칼가는 일을 하게 된다. 그러는 사이 정들었던 떡장수 아줌마가 연탄가스 일가족이 죽었지만 너무도 허망한 죽음에 슬퍼할 틈도 없이 칼을 갈러다닌다. 그러던 중 같은 고향 식모아가씨를 만나지만 그 아가씨 또한 온다간다 말도 없이 사라진다.

 

하루하루 벌어 먹고 살면서도 복천영감이 희망을 가지고 사는 이유 그것은 바로 자식들 때문이다. 가난하지만 자식이라는 희망으로 살아가는 반면에 가진 자들은 자신들이 가진 것 하나 더 움켜지려 더 표독스럽게 더 악랄함으로 살아간다. 쓰레기통을 뒤지며 줏은 벽지로 아들의 사과궤짝 책상을 발라준 복천영감과 영수의 기쁨을 가진 자는 겪을 수 없는 기쁨이다. 가난하다는 이유로 남의 삶을 함부로 짓밟을 권리를 가진 자들의 권리 앞에서 없는 자들은 그렇게 삶의 밑바닥을 전전하게 되는 것을 빈민이라는 사회계층을 형성하게 과정에 대한 이야기들을 복천 영감에게 들을 수 있다.

 

우리 부모님의 세대는 그렇게 가난이라는 긴 터널이 지나왔다. 그러나 그 터널이 지난 뒤 밝은 빛은 잠깐이며 우리는 또 한번의 긴 터널을 지나고 있다. 여전히 무전유죄 유전무죄의 세상이고 여전히 가난에 허덕이며 빈민의 삶을 견뎌내고 있는 음지의 세상이 존재하고 있다. <비탈진 음지>는 우리부모님 세대의 가난과 아픔을 너무도 생생하게 드러내어 애잔한 감동과 함께 마지막 복천영감의 말은 귓가에 울려 떠나질 않는다.

 

비렁뱅이 짓거리 혀서 묵고 살아도 비렁뱅이 짓거리 허는 사람만 비렁뱅이제 그 자석들은 비렁뱅이가 아닌 법잉께. 비렁뱅이 되라고 비렁뱅이 짓거리 혀서 멀여살리는 것이 아니랑께.평생얼 넘 발 밑에 깔려 비렁뱅이 진배웂이 산 한얼 풀게라도 훌륭한 사람이 돼야 써.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