깊은 슬픔
신경숙 지음 / 문학동네 / 2006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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슬픔에는 더 큰 슬픔을 부어넣어야 한다. 그래야 넘쳐흘러 덜어진다. 가득 찬 물잔에 물을 더 부으면 넘쳐흐르듯이, 그러듯이, 이 괴로움은 더 큰 저 괴로움이 치유하고, 열풍은 더 큰 열풍만이 잠재울 수 있고.

 

깊은 슬픔의 심연 속에 빠진 느낌이다. 슬픔에는 더 큰 슬픔이 치유되듯이 은서의 이야기를 듣는 동안 가슴 깊은 무언가를 자꾸 건드린다. 마치 내 슬픔 전부를 쓸어가버리듯이 ..... 그렇게 은서의 이야기는 내 슬픔보다 더 큰 슬픔으로 나를 치유해 준다.

 

기다림의 계절 봄. 삶이란 기다림만 배우면 반은 안 것이나 다름없다는데......

 완은 그렇게 은서를 기다리게 한다. 완을 은서는 기다리고 또 기다리지만  완은 오지 않고 은서에게 온 사람은 옆방 여자 화연이다. 상처투성이인 옆방 여자 화연은 은서보다 더 깊은 슬픔을 앓고 있었고 화연으로 인해 은서는 그 기다림을 견딜 수 있었다.

 

그리고 여름, 세에게서 들은 아름답고 따뜻한 말을 완에게 간절히 들려주고 있는 것,

그것이 바로 은서의 모습이다.  은서는 자신이 자신도 모르게 완에게서 받은 서러움이나 야속함 같은 걸 그대로 세에게 쏟아내고 있다는 걸 어느 날 문득 깨닫고  완에게 주고 싶은 것들은 세가 자신에게 해주었던 것들이고, 세에게 자신도 모르게 툭툭 내뱉게 되는 말과 행동들은 또 완이 자신에게 했던 것과 닮아 있음을 은서는 느낀다. 그렇게 완과 세와 은서는 반복된 일상을 보내고 있었다. 완은 은서가 살아가는 이유이기도 전부이기도 하지만 완에게 은서는 그냥 .. 세에게서 뺏고 싶은 여자, 그저 수도 없이 많은 여자 중의 하나일 뿐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은서는 완을 사랑한다.그리고 세는 은서를 사랑한다.

 

 

그리고 가을 ,사랑이란 서로에게 시간을 내주는게 아깝지 않은 것.

 언제부턴가 완은 은서에게 시간을 내주지 않는다. 은서는 절망하지만 그래도 화연이 있기에 살아가기를 계속하고 있었다. 자신보다 더한 슬픔을 가진 화연이 있었기에 완의 결혼에도 살 수 있던 것이다. 미칠 것 같았는데 미치지 않았던 것은 화연때문이다. 그러나 그런 화연이 죽고 홀로 된 은서에게 손을 내밀어준 세가 있었기에 그래도 살 수 있었다. 세는 은서에게 고향같은 친구이니까.

 

사랑이 아픈 겨울, 한번도 화내지 않는 세, 언제나 기다려주던 세를 이제는 사랑할 수 있을 것 같은 은서, 그러나 이제 세는 은서를 사랑하지 않는다.

 완을 사랑하는 동안 세를 너무 외롭게 했던 벌을 받는 것이라고 자조하지만 은서는 세의 집요한 의심과 집착으로 인해 상처받는다.자신을 언제나 믿어주던 세의 변한 모습을 한 번도 생각해 본 적이 없었기에 ... 상처가 독이 되어 은서를 갉아먹고 있는다.

 

너는 너 너이외에 다른 것에 닿으려고 하지 말아라.오로지 너에게로 가는 일에 길을 내렴. 큰길로 못 가면 작은 길로 그것도 안되면 그 밑으로라도 가서 너를 믿고 살거라. 누군가를 사랑한다 해도 그가 떠나기를 원하면 손을 놓아주렴. 떠났다가 다시 돌아오는 것. 그것을 받아들여. 돌아오지 않으면 그건 처음부터 너의 것이 아니었다고 잊어버리며 살거라.

 

늘 완의 등만 보던 은서, 은서의 등만 보던 세, 사랑이란 이름이 얼마나 부질없는 것인지. 사랑은 그렇게 낯설은 이름일 뿐이다. 서로 마음을 다해 사랑하려 하지만 언제나 내가 사랑하는 사람은 다른 사람을 사랑하는 관계의 연속이다. 기다림으로 시작했던 은서의 사랑은 결국 모든 것이 부질없었음을  이야기한다. 사랑 그것이 전부였던 여자의 이야기는 사랑이 전부여서는 안되었다는 것, 그리고 그저 스쳐가는 하나의 부분으로서 사랑할 것을, 그리고 그저 사랑은 수많은 만남중의 하나라는 사실을 너무 늦게 알았다고 말한다. 사랑이 전부여서 슬펐던 여자 은서, 내가 사랑하는 사람이 나만을 사랑하는 것을 바라는 것이 부질없는 꿈같다고 말하는 은서,

 이 소설에 나오는 여자들 모두가 깊은 슬픔을 가진 사람들이다. 화연이 그렇고 유혜란이 그렇다. 그들의 사랑이 바로 우리들의 사랑이야기이기도 하고 그들이 말하는 슬픔은 바로 내슬픔의 모습이다. 목련이 흐드러지게 피는 봄날 아련하게 시작한 사랑이야기는 결국 나를 울리고 나서야 끝이 났다. 사랑을 잊으라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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