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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랑 - 왕을 움직인 소녀
이수광 지음 / 네오픽션 / 2011년 7월
평점 :
품절
내가 좋아하는 책 중의 하나가 <세익스피어의 세상을 보는 지혜>라는 책이 있는데 그 책중에는 될 수 있는 데로 송사에 휘말리지 않는 것이 좋다. 라는 말이 있다. 어렸을 적엔 이 글귀가 이해되지 않았는데 나이가 드니 어쩔 수 없이 송사에 휘말리는 일이 생긴다. 나이가 들어 옳고 그름의 판단을 법을 통해 처리해야 하는 일은 몹시도 씁쓸한 일이지만 사람이 그 시대를 살면서 법이라는 테두리 안에 살아야 함은 어쩔 수 없는 일인것 같다. 로마에 가면 로마의 법을 따라야 한다고 속담을 보아도 알 수 있듯이 사람은 어느 시대에 살던지 그 시대의 관습과 규칙을 따라야 한다. 그것은 인간은 사회적 동물이기 때문이다.
<차랑>은 특히 조선시대의 송사를 볼 수 있는데 [조선왕조실록]의 기록에서 유추한 이야기이다. 이 이야기는 숙종때부터 시작하여 이후 영조까지 이어진 괴이한 사건이다. 왕들이 관심을 가질 정도의 사건이었으니 조선시대에 괴이하긴 무척 괴이한 사건이었던 것 같다.
경상도 상주의 엄청난 부자 박수하의 집은 임금만 짓는다는 아흔아홉칸이다. 당시 임금만 지을 수 있는 아흔 아홉칸을 임금의 허락을 받고 지었으니 박수하의 집을 얼마나 부자였는지 짐작할 수 있다. 그러나 그에게는 십년전 아들 박제구가 집을 나가 소식이 없고 딸만 둘 있다. 그나마 문랑과 차랑이 총명하여 그래도 마음의 위안을 삼고 있지만 어느 날 갑자기 나타난 아들 박제구의 정체로 인해 집안은 풍비박산이 난다.
십년만에 나타난 박제구는 사실 진짜가 아니라 박수하의 며느리의 오빠 이창래가 어느 날 우연히 길을 가다가 조석술을 보게 되었는데 박수하의 재산을 가로챌 욕심으로 조석술에게 박제구의 행세를 하게 한 것이다.
박제구가 나타난 시점과 같이 하여 절에 간 차랑이 산적을 만나게 되는데 겁탈을 당하기 전 산적이 떨어뜨린 칼로 산적을 찌른 후 실신한다. 절에 공부하던 박원규에 의해 무사히 집에 가게 된 차랑은 자신의 정절을 지키기 위해서라도 박원규에게 시집가야 한다고 생각한다.당시 조선시대의 법은 양반이 천민에게 희롱당하여도 정절을 잃었다고 여겼기 때문에 이웃의 한 아녀자가 천민이 손을 잡았다는 이유로 손을 자른 일이 있다는 이야기를 차랑도 들어서 알고 있었다.
조선시대에는 산송사건이 유독 많았다. 연암 박지원도 산송사건에 휘말려 상소를 올린 적이 여러번 있었던 것이 기억이 난다. 그만큼 조선시대의 묘자리는 가문의 영광과 사대부의 명예와 관련하여 아주 중요한 문제라고 볼 수 있다.
조석술이 가짜라는 것이 밝혀지자 이창래는 차랑과 혼담이 오고가는 박원규의 부친 박경여에게 가서 박수하의 산에 부의 묘를 쓰라고 종용을 한다. 박경여는 현감으로 벼슬을 하고 있는 사대부로서 평소 박수하의 선산을 마음에 두고 있던 터라 박수하의 아들이라는 말만 믿고 다짐장을 받아둔다.그러나 박수하의 산에 묘를 쓴 이후로 두 집안은 혼담이 오간 사이가 아니라 원수집안으로 대립하게 된다.
사실 이 모든 사건의 발단은 차랑이 [탁씨일가전]을 이창래가 훔쳐가게 한 사건으로 인해 발생한 것이다. 이어 송사의 결말은 너무 많은 희생을 가져왔음을 볼 수 있다. 아이러니 했던 것은 여성이 정절을 잃었다고 손목을 짜르는 극단적인 모습을 보여준 반면에 한량이었던 양반 이창래는 여자만 보면 가리지 않고 오입질을 하는 것을 보며 조선시대가 얼마나 남성우월주의였는지 !!!! 이어 송사로 인해 두 집안이 한치의 양보도 없이 목숨 걸고 싸우는 걸 보며 사소한 일에 목숨건다는 말이 생각이 나기도 했다. 세익스피어의 말처럼 우리가 살면서 가장 조심해야할 일 송사에 휘말리지 말라는 말이 처음으로 이해되는 시간이었다. 조선시대의 송사가 궁금하다면 ^^ <차랑>을 ^^